이는 이들 법안이 제시하는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IRA에는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 중 50% 이상을 북미에서 제조하거나 배터리 핵심 광물을 40% 이상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조달하면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핵심은 이 기준이 매년 올라간다는 것이다. 핵심 광물은 2027년까지 80% 이상, 배터리 부품은 2029년까지 100%를 북미에서 조달해야 한다.
소재 다변화 위해 세계를 누비다
소재 다변화 움직임은 배터리 업계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배터리 3사는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며 시작된 IRA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소재 확보에 주력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미국 컴파스 미네랄, 독일 벌칸에너지, 호주 라이온타운 등 총 11곳과 소재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구체적으로 컴파스 미네랄과는 2025년부터 6년간 컴파스 미네랄이 연간 생산하는 탄산리튬(약 1만1000t 예상)의 40%를 공급받기로 했다. 또 캐나다 광물업체 일렉트라로부터 황산코발트 7000t, 아발론과 스노우레이크로부터 수산화리튬 25만5000t, 호주 라이온타운 수산화리튬 원재료 리튬정광 70만t 등을 공급받기로 했다. SK온은 호주 글로벌리튬·레이크 리소스, 칠레 SQM 등과는 공급 계약을, 미국 소재 제조 업체 우르빅스와 배터리 음극재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특히 국내 배터리 3사는 호주 흑연 전문업체 시라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시라는 세계 최대 흑연 매장지로 불리는 아프리카 모잠비크 광산을 소유해 운영 중이다. 업체별로 LG에너지솔루션은 시라와 오는 2025년부터 양산하는 천연흑연 2000t 공급을 시작으로 양산 협력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삼성SDI는 2026년부터 연간 최대 1만t의 천연흑연 음극활물질을 공급받을 계획이며, SK온은 지난해 7월 천연흑연 수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IRA 충족 위해 북미 등 해외 거점 확대
국내 기업들은 미국·캐나다·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해외 생산 거점도 빠르게 늘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 국내와 유럽에 국한됐던 해외 생산 거점을 미국·캐나다·인도네시아 등으로 확대했다. 각각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현대차그룹과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GM, SK온은 포드·현대차와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배터리 업체의 경우 IRA로 인해 세계 생산 거점망 지도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IRA가 시행되기 전 이들의 생산시설은 국내 및 헝가리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북미에 더 많은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국내 태양광 기업 한화솔루션도 IRA 대응을 위해 미국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한화솔루션은 북미 태양광 시장 공략을 위해 총 3조2000억원을 투자, 잉곳·웨이퍼·셀·모듈 등의 현지 생산을 위한 태양광 통합 생산단지 솔라 허브를 구축한다. 이는 미국 태양광 에너지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금액이자, 북미 지역에 태양광 핵심 밸류체인별 생산라인을 모두 갖추는 것 또한 최초다. 이구영 한화큐셀 대표는 "한화솔루션은 미국에서 기초 소재인 폴리실리콘부터 완성품인 모듈까지 태양광 밸류체인 5단계를 모두 완성하는 최초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도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시에 150만 평 규모의 신규 부지에 대규모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건설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착공한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은 내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170억 달러(약 22조원)가 투자될 예정이다. 이 금액은 삼성전자의 미국 단일 투자 건 중 역대 최대 규모로 삼성전자는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에 9개의 반도체 팹(공장)을 건설해 5세대(5G) 통신,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영상면담에서 SK그룹 차원에서 통합 220억 달러(약 29조원)를 미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150억 달러(약 19조96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연구개발(R&D)과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 시설 설립 등의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 3월 말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부회장)는 정기주주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첨단 패키지 공장의 위치 선정을 위한 분석이 끝났고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IRA·칩스법 시행으로 인해 1년 동안의 북미 투자액이 약 400조원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3000억 달러(약 399조5100억원)에 육박하는 기업 투자 발표가 이뤄졌다. 구체적으로 IRA 시행에 따른 전기차·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 금액 800억 달러(약 106조5360억원), 반도체 칩스법 관련 투자 금액 2100억 달러(약 279조6570억원) 등이다.
김정희 장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h13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