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치미', 옛날 사냥용 매 꽁지에 매달던 이름표
감은 본래 ‘산감’ 또는 ‘돌감’이라 해서 작고 그다지 맛도 없다. 그런데 돌감의 씨눈가지를 고욤나무 가지에 붙이면 우리가 흔히 과일 가게에서 보는 크고 맛있는 감이 된다. 이렇게 다른 나무에 가지를 대는 것을 ‘접붙이다’라고 말하며,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붙인 것을 ‘감접’이라고 했다. 처음에 감접을 하면 서로 다른 나뭇가지니까 표시가 났는데, 감 열매가 맺을 즈음에는 접붙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유로 어떤 흔적이 전혀 없을 때 ‘감접같다’라고 말을 했으며 차츰 발음이 치환되어 ‘감쪽같다’로 변했다고 한다.
‘감쪽같다’와 뉘앙스는 다르지만 유사한 의미의 ‘시치미를 떼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알면서도 모른 체할 때 종종 사용한다. ‘시치미를 떼다’에서 ‘떼다’는 어딘가 붙어 있던 사물을 뜯어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시치미’는 어딘가 붙어있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는데, 과연 무엇일까?
‘시치미’는 옛날 사냥용 매의 꽁지에 붙여 놓은 ‘이름표’다. 이것은 다 자란 수컷 소의 뿔을 얇게 조각내어 만드는데, 겉면에 매 주인의 이름과 주소를 적어서 매 꽁지에 달아둔다. 사냥용 매는 훈련이 잘 되어서 하늘을 날다가도 곧장 주인에게 돌아오지만, 짐승인지라 가끔씩 주인을 잃고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시치미를 보고 본래 주인에게 돌려 달라는 의미로 사용된 거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매를 길들여 꿩이나 토끼 등 짐승을 사냥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매사냥은 생업으로 하는 사람(수알치)뿐만 아니라 왕족이나 귀족들의 여가로도 인기가 상당했다.
고려 때 중국 원나라는 해마다 공물로 우리나라 사냥매를 바치게 했다. 처음에는 수알치들의 사냥매를 바쳤지만 수효가 모자라 ‘웅방’이라는 관청을 두고 공물로 바칠 매와 귀족용 매를 사육했다. 그리고 여기서 키운 매에도 어김없이 시치미를 달았는데 더러는 방울도 함께 달아 매가 덮친 수풀 속을 쉽게 알아내려고 했다. 사냥용 매에 시치미와 방울을 달아서 소유를 분명히 한 이유는, 매 한 마리를 사육하는 데 비용도 만만치 않고 가격도 엄청나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하신 사냥매’가 어쩌다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면, 대개는 주인에게 돌려주지만 어떤 이는 날아든 매의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붙여 놓았다한다. 이처럼 슬쩍 가로채고 원 주인에게는 몰라라 해서, ‘시치미를 떼다’는 말이 유래된 것이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