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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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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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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연산군 제거 거사 모임에서 유래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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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근거로 한 유래어 중에는 당시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다소 어색한 것이 많이 있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도 그중 하나인데, 국어사전에는 여럿이 모여 웃고 떠드는 가운데 혼자 묵묵히 앉아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조선 연산군 때 몇몇 신하들이 연산군의 폭정을 참지 못해 거사를 꾸미려고 우두머리 박원종의 집에 모였다. 주변에 눈들이 있어서 방에는 불을 켜지 않아 컴컴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자 성희안이라는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확인하고, 몇 시쯤에 궁궐로 들이닥치자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만이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성희안이 이상하다 싶어 사람 수를 세어 보니 놀랍게도 한 사람이 남는 것이 아닌가. 성희안은 순간 머리끝이 쭈뼛해져 옆에 있던 박원종에게 귓속말을 했다. “박 대감, 여기에 염탐꾼이 있소.” 그러자 박원종도 놀라며 “대체 누굴 보고 그러시오?”라고 속삭였다.

“박 대감 어깨너머에 있는 사람이 아까부터 아무 말도 않고 우리 얘기만 듣고 있었소. 사람 수도 하나 더 많은 걸 보니 틀림없는 염탐꾼이오”라며 턱으로 박원종의 뒤를 가리켰다. 박원종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사람이 아니라 이번 거사에 쓰려고 얻어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보릿자루 위에 박원종의 갓과 도포를 얹어 놓았는데 어둠 속이라 보릿자루가 마치 사람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하여 그 뒤부터 모임에서 아무 말 않고 한쪽에 앉아서 듣기만 하는 사람을 가리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했다고 한다.
말의 유래는 누누이 말하지만 오랜 기간을 통해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사실을 적확하게 밝히기는 힘들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의 유래에서 어색한 점은, 거사를 위해서 모인 장소가 박원종의 집이란 사실이다. 박원종은 당시 한성부윤 겸 경기도 관찰사의 높은 관직에 있었는데 지금으로 보면 서울부시장이나 경기도지사였던 것이고, 집도 서울 한복판(관인방)의 대궐 같은 집이었다. 이러한 집에서 모의했다는 것도 정황상 맞지 않고 거사를 위해 보리를 꿔다 놓은 것도 이치에 안 맞는다.

역사 기록에는 거사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야음을 틈타 지금의 남대문(양생방) 어느 중인의 허름한 집에서 몇 번 모였다고 한다. 따라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의 유래 장소는 한적하고 허름한 중인의 집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보릿자루도 곤궁한 이 집의 분위기와 걸맞을 것 같다. 그러나 유래어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앞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선에서 그치고 다만 이 글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유래어를 빨리 그리고 확실하게 익히는 수단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참고로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사건 이후에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연산군은 강화도로 쫓겨나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