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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쉬이 ~ 물렀거라" 외치던 거덜에서 건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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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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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쉬이 ~ 물렀거라" 외치던 거덜에서 건달까지

도와주는 사람에서 신세망친 사람으로 의미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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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하다 거덜 났다’, ‘사업하다 거덜 났다’ 등의 이런 말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말뜻은 분명 ‘노름이나 사업으로 망했다’라는 것인데, 망한 것과 ‘거덜’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거덜은 포괄적 의미로 거들어 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특별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관청이나 양반집에 소속되어 평상시 말에게 먹이를 주거나 잡일을 돕고, 주인이 행차하면 길잡이 노릇을 하던 하인들을 거덜이라 부른 것이다. 사극을 보다 보면 가끔 가마행렬 장면을 접하게 되는데, 선두에서 고압적인 목소리로 “쉬이 물렀거라~ 대감마님 행차시다”라며 목청을 길게 빼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거덜이다.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거덜이지만, 행차 때만큼은 자신의 외침에 사람들이 길옆으로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 우쭐하는 마음에 가슴을 쭉 내밀고 팔자걸음을 하곤 했다.
이러한 거덜의 모습을 빗대어 사람들은 남 앞에서 으스대거나 허풍떨 때 ‘거드름 떤다’ 또는 ‘거들먹거린다’라고 말했다. 이때의 거드름이나 거들먹이 바로 거덜과 연관 지어 파생된 말이다.

그런데 앞에서 ‘거덜 났다’하면 경제적으로 망한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딱하기만 하다. 쪼들리는 거덜 생활에도 높은 양반 호위하며 배인 겉멋에, 싼 술집은 마다하고 양반이나 다니는 고급 술청에 가서 기생에게 허세부리다가 얼마 되지 않는 가산을 탕진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런 한심한 거덜이 한 두 명이 아니어서 사람들은 이 후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날리면 ‘거덜 났다’고 말했다. 따라서 거덜 났다 하면 거덜처럼 무일푼이 되었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거들어 주다’에서 거덜이 파생되고, 거덜에서 ‘거덜 나다’로, 다른 한 편으로는 ‘거들먹거리다’로 가지를 치게 되는데, ‘거들먹거리다’에서 ‘건달’이란 단어도 만들어 진다. 사람들은 거들먹거리거나 하는 일 없이 건들거리며 노는 사내들을 통해 거덜을 떠 올렸고 그런 부류를 자연스레 건달로 부르게 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불이 경복궁 향원정 주변에 켜졌는데, 이 당시 발전상태가 좋지 않아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하며 건들거린다 하여 ‘건달 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본래 남을 도와주는 사람 ‘거덜’이 분수를 모르고 허세를 부리다가 거덜 나거나, 더 고약하게 폭력을 휘두르며 남을 괴롭히다 신세를 망치는 건달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