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 파피루스 잎줄기, 수메르인 동물 뼛조각으로 이쑤시개 대용
저는 외가가 충남 안면도여서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자주 들렀는데, 그 당시만 해도 거기는 전깃불이 없어 일찍 자야 했고 칫솔·치약은커녕 이 닦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식사 후에 부엌에서 소금을 한 움큼 내 와 손가락으로 양치질을 하셨는데, 이를 따라 하던 제가 너무 짜서 얼굴을 찡그리면 삼촌이 흰 가루를 주셨습니다. 모래보다 더 고왔던 조개껍데기 가루였습니다. 이 가루에 물을 섞어 강낭콩만하게 반죽하여 이빨에 묻혀 비빈 후 맹물로 입안을 헹구어 내면 그럭저럭 뽀드득 했지요. 여름 방학에는 물기가 남아있는 칡뿌리로도 양치질을 했는데 칡을 사용하면 뒷맛이 달고 박하 느낌이 남아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양치질을 하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 찌꺼기를 빼려는 목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기(육류)를 먹고 난 후 이빨에 묻어 있는 찐득찐득한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도구는 우리말로 ‘이쑤시개’ 즉 ‘칫솔’로 이해하면 되고, 기름기 제거를 위한 것은 일종의 ‘치약’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이쑤시개의 기록은 고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에서 나타나는데 이집트인들은 나일강 주변에 흔히 자라는 파피루스 식물의 잎줄기를 잘라내 그 끝을 돌로 여러 번 짓이겨 붓처럼 여러 갈래를 만들고 그것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했으며 바빌로니아의 수메르인들은 동물의 뼛조각을 날카롭게 하여 이쑤시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혹 이빨 표면에 눌어붙은 기름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달걀껍데기 가루나 미세한 돌가루, 나무의 타고 남은 재를 이용하여 닦아냈으며 파피루스 뿌리나 연한 나뭇가지를 껌처럼 씹어서 기름기를 제거하기도 했답니다.
동양에서도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서양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유추할 수 있지만 특이한 점은 1500년쯤 중국에서 지금의 칫솔과 유사한 이쑤시개가 등장한 것입니다. 대나무 표면에 뻣뻣한 돼지털을 붙여 이것으로 양치질을 하듯 비벼서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했는데, 이것이 사실상 오늘날의 칫솔 효시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국 칫솔의 효율성이 알려져 유럽에도 전파되었는데, 유럽인들은 돼지털보다 좀 더 부드러운 말 털을 선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돼지털이건 말털이건 사용 후 음식물 찌꺼기와 세균이 칫솔에 들러붙어서 자주 끓는 물에 소독을 해야 했으며 고온으로 털이 쉽게 흐무러져 부유층 외에는 쉽게 구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유럽 중국과는 달리 ‘버드나무 가지’로 이쑤시개를 대용했습니다. ‘양치질’이란 어원을 살펴보면 그 뜻을 금방 알 수가 있는데 양치질이란 흔히 알고 있는 良(좋을 양), 齒(이빨 치) 즉 치아를 좋게 하는 질(행위)이 아니라, 버들 양(楊), 가지 지(枝)로 버드나무가지를 가지고 이 닦기를 하는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양치질’은 원래 ‘양지질’이었던 것이지요.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 계림유사에 ‘이를 청소하는 방법으로 버드나무 가지 끝을 잘게 으깬 후 그 갈래로 이와 이 사이를 쓸어내듯 하면 된다’라고 전해지는데 질긴 버드나무 가지 속에는 소독성분도 있다고 하여 이쑤시개로 큰 인기를 모았던 것 같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는 버드나무 가지를 칫솔로, 그리고 소금이나 식초로 반죽한 조개껍데기 가루를 치약으로 하여 동시에 양치질을 한 점입니다.
앞에 열거한 다른 나라 사례는 이쑤시개와 치약이 분리되어 사용되지만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칫솔과 치약을 동시에 사용하는 문화가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이빨 속 찌꺼기도 제거하고 동시에 구강 청결도 유지할 수 있는 ‘양치질’은 우리나라가 ‘원조’인 셈입니다. 이렇게 ‘양지’는 시간이 흘러 음이 치환이 되며 ‘양치’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치질은 일본으로 곧 전파됩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하는데 ‘요지’는 ‘양지’의 일본 발음으로 우리나라 양치질 문화가 전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별로 이쑤시개용 칫솔이 각각의 모습으로 전해져 오다가 하나로 통합이 되는, 다시 말해 지금의 칫솔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때는 1930년대 나일론의 발명 이후입니다. 나일론이 발명되자 인류문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특히 섬유 부문에서는 일대 혁명이었고, 이 소재를 칫솔의 모(毛)에도 적용하게 됩니다.
나일론 칫솔은 단숨에 세계 시장을 장악했으며 여기에 더해 1800년 영국에서 글리세린을 첨가한 화학가루 치약이 빛을 보면서 구강청결과 찌꺼기 제거의 이 닦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1873년 미국 콜게이트사에서 처음으로 향기 있는 치약을 선보였으며 - 이 당시는 병에 치약을 담아 사용했다 - 1896년에는 현재와 같이 짜서 쓸 수 있는 튜브치약이 나왔습니다.
1930년 우리나라도 럭키사에서 처음으로 화학 분말의 가루 치약을 생산합니다. 그리고 1954년 국내 최초로 튜브 안에 있는 연고상의 럭키치약을 생산, 시판합니다. 이 당시의 럭키치약 신문광고를 보면, ‘미제(美製)와 똑같은…’이라는 카피가 눈에 띄는데 이는 마케팅 점유율 1위의 미국 콜게이트 치약을 상대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매일 이를 닦습니다. 그것도 사람에 따라 하루에 세 번 이상 닦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칫솔질을 자주하면 이가 약해지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칫솔·치약이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해도 화학 물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청결하게 할지는 몰라도 건강하게는 하지 못합니다. 소금물로 자주 헹궈주세요. 아니면 치약은 가급적 적게 쓰고 물 칫솔을 하도록 하세요. 사실 우리의 원조방식 ‘양지질’로도 충분히 치아를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