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압도적인 건조 능력과 수업료 크게 낸 해양플랜트 경험으로 재도약 가능성 충분
[글로벌이코노믹 김국헌 기자] 조선업계가 통곡의 계곡을 건너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는 올 상반기에만 5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냈다. 대우조선해양이 올 상반기에 3조3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냈다.이에 따라 조선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비핵심 자산과 계열사를 매각할 예정이고, 삼성중공업도 인원 감축 조직 통폐합, 자산 매각 등에 나설 방침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1분기에 임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퇴직을 단행했고,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임원인사를 통해 세대교체까지 완료했다.
수조원 대의 영업손실 앞에서 무너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조선업계. 침몰할 위기의 한국 조선산업에 희망의 불씨는 정녕 없는 것일까.
◆ 모든 손실 원인은 처음 해본 해양플랜트 사업
희망을 얘기하기 전에 조선 빅3가 올 상반기에 왜 그토록 많은 영업손실을 기록했는지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원인은 해양플랜트 사업 실패 때문이다.
약 10년 전 해양플랜트 사업은 선박 수주로 돈을 벌던 조선사들에게 향후 100년을 책임질 차세대 조선업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2008년 리만 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빠져들면서 상선 발주가 대폭 줄어들었다.
조선업계는 선박 수주 외의 새로운 활로가 필요했다. 당시 국제 유가가 매우 높은 시세를 형성하면서 땅의 기름이 아닌 바다의 기름(심해저유전)이 각광받을 것이란 예측이 난무했다. 실제 심해저유전 개발 사업이 세계 곳곳에서 활발히 일어났다. 해양플랜트 발주물량이 넘쳐날 것이란 예측도 쉽사리 가능했다. 해양플랜트는 해저에 묻혀있는 석유와 가스 등을 발굴하고 생산하는 설비다.
해양플랜트는 선박 건조보다 훨씬 건설하는 것이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규모 건설사업이다. 전 세계에 국내 빅3만이 해양플랜트를 건설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설계능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해양플랜트를 발주하면 설계는 외주로 맡기고 해양플랜트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설계능력이 없다보니 제대로 된 비용계산을 하지 못했다.
설계 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젝트 운영도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미숙한 점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수주를 해놓고도 공기가 연장되기 일쑤였고, 설계도 자주 변경되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해양플랜트 수주경쟁이 붙으면서 저가 수주전도 불사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조선업계의 처참한 모습이다. 해양플랜트를 처음 지으면서 발생한 시행착오는 조선 빅3로 하여금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게 만든 것이다.
◆ 희망의 전조 ① 압도적인 세계최고의 선박 건조능력
하지만 희망의 불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조선업계가 처한 현실이 혹독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내 생존하기만 한다면 다시 호황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우선 우리 조선업계가 가진 기술력은 어디 도망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내 조선 빅3의 선박 건조능력은 세계 최고로 추앙받는다.
지난 5개월 동안 세계 상선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44%로 20%인 중국을 크게 앞서면서 세계 상선시장을 주도했다. 한국 조선사들의 경쟁력이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도 한국 조선사들은 현재의 점유율을 유지하거나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을 위협하는 경쟁상대라던 중국 조선업체들은 한국을 따라오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상선 트랜드는 벌크선 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초대형 컨테이너선, 탱크선, 가스선 발주가 증가하면서 상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선종들은 한국 대형 조선사들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선종들이다.
중국은 벌크선 비중이 높고 우리의 주력 선종시장인 컨테이너선과 가스선에서는 경쟁력이 없다. 실제 중국은 올해 들어 벌크선 발주 침체로 수주가 급감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해운사 지원정책을 연장했지만 수주증가로 이어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생산 효율성이 우리의 1/5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상선분야에서 엔저를 앞세운 일본이 오히려 경쟁상대지만 아직 우리에 비해 많지 않은 건조 경험과 높은 인건비, 고급 설계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부가가치 창출력이 우리보다 낮다.
이 말은 상선 분야에서 국내 조선업계가 가진 경쟁력이 여전히 세계 최고이며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올해 기록한 막대한 영업손실은 모두 해양플랜트에서 나온 것이지, 상선 건조에서는 충분한 수익을 냈다. 최근 상선 시황이 회복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 빅3는 세계 최고의 선박 건조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지금 기술력만으로도 롱런이 가능하다"며 "올해 들어서도 일본, 중국과 달리 한국은 수주량이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벌크선 위주로 많이하는 반면 우리는 대형 탱커 위주로 하는 등 시장이 차별화 돼있어서 중국은 한국에 위협적인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희망의 전조 ② 고전의 원인 해양플랜트도 조선 빅3 경쟁력
비장의 무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해양플랜트다. 국내 조선 빅3는 값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면서 얻어낸 해양플랜트 건조 경험이 있다. 국내 조선 빅3는 향후 해양플랜트 발주가 나올 경우 독식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일본 조선업체들이 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미 시행착오를 경험했다는 것.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설계능력을 보유하기 위해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양플랜트 설계도 직접 해내고, 건조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과거보다는 훨씬 합리적으로 책정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9월부터 TF팀을 구성해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다.
수입 기자재도 국산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연간 18억달러의 수입 기자재 중 54%에 해당하는 165개 핵심 기자재에 대해 2018년까지 국산화한다는 목표다. 현재까지 디젤엔진발전기 등 106개 품목 국산화가 이미 완료됐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 수주를 하고 있지만 기술이 많이 성숙하지 못해 국산화가 안 됐다"며 "공정 중 일부는 아웃소싱을 하고 있어 정부차원에서도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고, 설계인력, 엔지니어링 핵심 인력 등을 해외 유명 대학과 함께 양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부 역량을 강화해 수주가 본격적으로 발생했을 때 승부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낮은 유가다. 해양플랜트가 활성화되려면 유가가 올라야 한다. 지금으로서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난해부터 북미지역 셰일 오일 메이저와 중동 산유국간 에너지시장 패권 다툼으로 인해 저유가 기조가 시작됐다. 최근에는 미국의 세일가스 생산량 증가와 중동의 산유량 증가로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2014년 6월 100달러 근처였던 국제유가는 현재 45달러까지 추락한 상태다. 셰일업체들의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원가는 더 낮아지고 엄청난 셰일 석유 매장량이 예상되는 중국, 체코 등도 기술을 습득하면서 자국내 소비나 수출을 하게 되면 유가는 중장기적으로 하향 안정세를 그릴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즉, 해양플랜트는 단기적으로는 발주량이 미미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기적으로 봐야하는 프로젝트다. 그렇다고 아예 해양플랜트 발주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초 약 7조원 대의 해양플랜트를 수주했는데 이 수주로 올해 수주목표의 60%까지 달성했다. 쉘의 40억 달러 규모 나이지리아 봉가 FPSO에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국내 조선 3사의 독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향후 해양플랜트 시장은 선주가 아닌 조선소들이 주도권을 가능성이 높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악성수주는 하지 않겠다는 학습효과다. 거제 해양플랜트 국가산단이 2020년 준공되는 점도 국내 조선사들의 해양플랜트 사업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단기간에는 힘들겠지만 국제 유가가 조금이라도 반등을 시작하면 해양플랜트 발주 역시 조금씩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사 건이 워낙 커서 2조~3조원 만회하는 것은 순식간"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해양플랜트를 국내 빅3가 독식할 수 있고, 학습효과로 인해 과거처럼 저가수주는 피할 것이 분명해 보이므로 한국 조선업을 살릴 미래 성장동력이 되어줄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해양플랜트 역풍을 맞은 지금은 특수한 상황인 만큼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해내면 국내 조선업이 다시 비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해양플랜트의 경우 유가 시장이 이벤트성으로 떨어지고, 올라가는 부분이 있어 지금은 투자에 대한 장기적인 시각을 갖는 시간으로 보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해양플랜트 건조 경험을 가진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공업협회 관계자는 “두 번 다시 이번 해양플랜트로 인한 대규모 손실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값비싼 수업료를 치뤘지만 우리 조선업계가 가진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이므로 이번 기회에 확실히 내실을 다져놓고 때를 기다리면 다시 비상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국헌 기자 k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