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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연 단압밀로 복귀한 동부제철 "게임은 아직 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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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연 단압밀로 복귀한 동부제철 "게임은 아직 안 끝났다"

소재구매 경쟁력 up, 경영실적 대폭 개선…부채 벽 남았지만 구조조정 이후 알짜배기로 거듭난다

[글로벌이코노믹 김국헌 기자]

동부제철 위기의 근원지가 된 전기로 미니밀 제철소. 현재 동부제철은 이 설비에 대한 매각을 검토 중이다,이미지 확대보기
동부제철 위기의 근원지가 된 전기로 미니밀 제철소. 현재 동부제철은 이 설비에 대한 매각을 검토 중이다,
"갈망했던 미래보다 차가운 현실에 마주했던 회사"


기업평가사이트인 잡플래닛에 동부제철의 한 직원이 작성한 회사평가다. 냉연업체로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지만 언제나 상공정의 꿈을 포기하지 않던 김준기 회장은 지난 2009년 7월 1일 총 투자비 1조500억원을 들여 전기로 제철소를 준공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발 수입재와의 경쟁력에서 우위에 서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가동을 중단하고 만다. 동부제철은 채권단 협의 끝에 자율협약 체제로 들어가며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까지 동부제철을 떠난 임직원만 300여명에 이르고 각종 조직들은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여기까지의 사정만 보면 동부제철은 미래가 없는 회사인 모습이다. 하지만 동부제철을 끝까지 지켜온 임직원들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 전기로 제철소라는 암덩어리를 제거한 동부제철이 구조조정만 잘 마무리된다면 경쟁력 있는 단압 냉연업체로써 다시 국내 철강업계의 한 축을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다.

◆ 국내 유일 냉연 단압밀로 복귀..원래 잘하던 냉연도금재 판매


동부제철은 전기로 제철소 가동을 중단한 이후 냉연도금재를 판매하는 냉연업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제 국내에서 냉연단압밀은 동부제철이 유일하다. 열연을 소재로 냉연제품을 생산하는 냉연사들은 과거 현대하이스코, 유니온스틸, 동부제철 등 3개사(포스코는 열연도 생산하므로 제외)가 있었지만 현대하이스코가 현대제철에 합병되고, 유니온스틸도 모사인 동국제강에 합병되면서 동부제철만이 냉연단압밀의 역사를 이어가게 된 형국이다.
냉연단압밀로 돌아오면서 동부제철의 회사 경쟁력은 훨씬 높아졌다는 평가다. 동부제철의 과거 경쟁력의 원천은 냉연사업이었다. 냉연강판(CR), 용융아연도금강판(GI), 전기아연도금강판(EGI), 컬러강판, 석도강판 등 다양한 냉연제품 구색을 갖추고 냉연시장을 호령했다. 실제 동부제철이 2010년 이후 연속 적자를 기록하던 시절에도 사실 냉연사업에서는 충분한 수익이 나고 있었다.

현재 동부제철의 냉연도금재 판매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 40년간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동차, 가전사, 제관사에 안정적인 제품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원료가격 하락으로 인한 제품가격 인하 압박을 최대한 버텨가면서 수출에 집중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동부제철 관계자는 "냉연사업은 원래 우리가 가장 자신이 있어하던 경쟁력의 원천"이었다며 "회사의 규모가 줄어들면서 각종 정책설정에 있어 과거보다 유연해지고 신속해진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 열연 소재 구매경쟁력 대폭 커져


동부제철은 전기로 제철소에서 생산한 미니밀 열연제품을 소재로 냉연제품을 생산해야 했으나 경쟁력과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힘들었다. 큰 돈 들여 투자한 열연이 냉연사업 수익성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해만 됐다. 철스크랩(고철)으로 생산한 제품의 품질이 고로재보다 좋을리가 만무했고, 중국산 저가 열연보다 원가도 높았다. 월 100억씩 발생한 열연사업의 큰 적자폭은 이를 소재로 사용하는 냉연사업의 수익성까지 떨어뜨린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냉연단압밀로 돌아온 동부제철은 소재구매 다변화로 냉연판매로 인한 롤마진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냉연사가 동부제철 밖에 없다보니 열연소재 구매경쟁력도 커졌다. 열연강판 공급초과 시대에서 냉연단압밀이 가치는 생각보다 높다.

국내산, 중국산, 일본산 등을 골라서 살 수 있게 돼 협상력 자체가 커졌다. 국내 고로사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열연을 생산하던 시절에는 포스코, 현대제철과 경쟁자였지만 지금은 소재구매자의 입장이 강조되고 있다. 품질이 과거보다 훨씬 개선된 중국산 열연강판이 넘쳐나는 점도 동부제철 입장에서는 호재다. 동부제철은 중국산 저가 고로재 사용을 적극 늘리고 있는데 롤마진 확대의 원인이 되고 있다.

◆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멀었지만 "게임은 안끝났다"


냉연단압밀로 돌아오면서 동부제철의 경영실적은 확실히 정상화되고 있다. 동부제철은 올해 1분기 K-IFRS 개별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4천307억7천만원, 영업이익 42억4천만원, 당기순손실 309억3천만원의 경영실적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이 46.7%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294억5천만원 손실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당기순손실 역시 전년 동기 653억2천만원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2분기 실적은 한층 더 개선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하지만 동부제철을 아직도 가로막고 있는 큰 벽이 있다. 바로 막대한 부채다. 동부제철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 체결로 총 1436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2018년 12월 31일로 연장되고 이자율도 1%로 낮아졌지만 아직까지 10% 대의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는 회사채들이 남아있는 상태다. 신보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등 총 1800억여원에 달하는 동부제철 여신을 보유하고 있다. 신보는 이 여신에 10% 이상의 고금리를 적용, 지난해 동부제철로부터 연간 이자비용만 200억원 이상을 받았다.

동부제철의 기업경쟁력은 냉연단압밀로 돌아오면서 커진 것은 맞지만 영업을 통해 어렵게 번 돈이 고금리의 이자로 나가고 있는 허무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동부제철의 정상화를 위해 신보가 이자율을 낮춰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높은 고금리가 계속되면 동부제철의 회생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동부제철 측은 논의대로 오는 9월 동부제철의 워크아웃이 결정되면 신보도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해 채권단에 포함되므로 이자율을 대폭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을 기대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동부제철은 우리나라에서 사라져서는 안될 소중한 냉연업계의 살아있는 역사다. 국내 유일의 냉연단압밀로 돌아온 동부제철은 조용히 인내하며 다시 도약을 꿈꾸고 있다.

동부제철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하며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어떻게 보면 원래의 동부제철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기회일 수도 있다"며 "현재의 구조조정을 잘 마무리 짓고나면 알짜배기 기업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김국헌 기자 k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