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앞서서 상대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무조건 가까이 다가가 본의 아니게 생채기를 만들거나, 때론 상대방의 온기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멀찌감치 떨어져 홀로 냉기를 견뎌야 했던 기억. 그러나 따뜻하고 보드라우면서도 서로의 개인적인 공간을 지킬 수 있었던 참 좋았던 간격도 경험했기에, 그러한 만남을,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자꾸만 찾게 되는 것 같다. 더불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떠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나의 삶 속에서 함께 걷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러한 모습을 단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 중 누구와 함께 걸어가야 하는지, 그 누군가와는 어떻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지가 우리네 삶의 큰 고민이며 번민인 것 같다. 좋은 사람과 함께 걸어갈 때 울려 퍼지던 포근함, 헤매던 손을 잡아준 고마운 마음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곁에는 삶의 순간마다 늘 향기로울 만큼 좋은 사람들이 동행해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람에게 다치는 일이 있으면 금세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와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곤 했다. 또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때론 도움을 주기도 하며 함께 걸어왔다. 그런데도 어느 상황에서 나는 가끔씩 외딴섬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역시 ‘따로 또 같이’의 균형 잡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 책 '인생에 가장 중요한 7인을 만나라'를 집어들었을 때는 이 균형 잡기에 실패하여 ‘외딴섬’처럼 혼자 있고 싶을 때였다.
평소와 다른 기색을 알아챘던 지,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서는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건넨다. 두 시간 이상의 발품을 들여 사온, 아직 개시도 안한 책이었다. 힘들 때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인데, 사람으로 아파하는 내게 어떻게 알았는지 즉시처방을 해주고는 빙긋이 웃으며 돌아선다. 교사도 때로는 학생에게 이렇듯 큰 위안을 얻는다. 이런 맛에 교사를 하는 거라며 속도 없이 웃어버린다. 속 깊은 녀석.
사실 제목만 보고는, 인간관계에 대한 처세술을 담고 있는 책인가 싶었지만, 기우였다.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 대학교 때 만나는 멘토, 직장동료, 상사, 사업 파트너, 평생지기, 배우자. 어떠한 사람을 만나는지는 삶을 바꾸어 놓을 만큼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이 책이 던지는 물음표의 파동은 꽤나 클 것이다.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일곱 부류의 사람관계. 처세술적 접근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자못 진지하게 성찰하며 자신의 삶이 진실하고 정직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우리가 삶속에서 경험한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조하며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여유까지 가져다줄 것이다.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삶의 좋은 순간들을 만들고 싶은,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고 서툰 나와 같은 당신이라면, 이 시와 더불어 읽어보기를 슬며시 권해 본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서-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