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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17)]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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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17)]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의 대부분이 사람을 마주하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즈음, 나는 내가 사람살이에 꽤 서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찍이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깊이 통찰한 안도현 시인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것을 일러주었건만, 나는 아직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 적당한 간격이란 게 얼마만큼을 의미하는 것인지 선뜻 가늠하기가 어렵다.

마음만 앞서서 상대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무조건 가까이 다가가 본의 아니게 생채기를 만들거나, 때론 상대방의 온기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멀찌감치 떨어져 홀로 냉기를 견뎌야 했던 기억. 그러나 따뜻하고 보드라우면서도 서로의 개인적인 공간을 지킬 수 있었던 참 좋았던 간격도 경험했기에, 그러한 만남을,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자꾸만 찾게 되는 것 같다. 더불어 나는 누군가에게 어떠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나의 삶 속에서 함께 걷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러한 모습을 단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한 해를 더해갈수록 사람살이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외딴섬처럼 고립되어서는 멀리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와 보조를 맞추어 가는 일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려면 내가 버리고 내려놓아야 할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 중 누구와 함께 걸어가야 하는지, 그 누군가와는 어떻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지가 우리네 삶의 큰 고민이며 번민인 것 같다. 좋은 사람과 함께 걸어갈 때 울려 퍼지던 포근함, 헤매던 손을 잡아준 고마운 마음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곁에는 삶의 순간마다 늘 향기로울 만큼 좋은 사람들이 동행해주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람에게 다치는 일이 있으면 금세 또 다른 사람이 다가와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곤 했다. 또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때론 도움을 주기도 하며 함께 걸어왔다. 그런데도 어느 상황에서 나는 가끔씩 외딴섬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역시 ‘따로 또 같이’의 균형 잡기가 쉽지만은 않다. 이 책 '인생에 가장 중요한 7인을 만나라'를 집어들었을 때는 이 균형 잡기에 실패하여 ‘외딴섬’처럼 혼자 있고 싶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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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읽게 된 계기가 조금 특별했다. 서평을 쓰며 책을 소개하는 교사인 내게, 반대로 학생이 읽어보라며 권한 책이기 때문이다. 새 학기에 새 각오로 진심을 다해 가르쳐보겠다고 의지를 다지던 내게 예상치 못한 한 학생이 제동을 걸었다. 익숙하지 않은 수업 방식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딴에는 마음을 다해 정성을 쏟던 일인데 진심을 몰라주자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의욕을 잃어 혼자 침잠하려던 내게 3학년 학생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평소와 다른 기색을 알아챘던 지, 가던 길을 다시 돌아와서는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건넨다. 두 시간 이상의 발품을 들여 사온, 아직 개시도 안한 책이었다. 힘들 때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인데, 사람으로 아파하는 내게 어떻게 알았는지 즉시처방을 해주고는 빙긋이 웃으며 돌아선다. 교사도 때로는 학생에게 이렇듯 큰 위안을 얻는다. 이런 맛에 교사를 하는 거라며 속도 없이 웃어버린다. 속 깊은 녀석.

사실 제목만 보고는, 인간관계에 대한 처세술을 담고 있는 책인가 싶었지만, 기우였다.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 대학교 때 만나는 멘토, 직장동료, 상사, 사업 파트너, 평생지기, 배우자. 어떠한 사람을 만나는지는 삶을 바꾸어 놓을 만큼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는 데 동의한다면 이 책이 던지는 물음표의 파동은 꽤나 클 것이다. 한 사람이 일생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일곱 부류의 사람관계. 처세술적 접근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자못 진지하게 성찰하며 자신의 삶이 진실하고 정직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지금까지 우리가 삶속에서 경험한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관조하며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여유까지 가져다줄 것이다.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삶의 좋은 순간들을 만들고 싶은,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고 서툰 나와 같은 당신이라면, 이 시와 더불어 읽어보기를 슬며시 권해 본다.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서-
한소진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덕신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