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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변화의 진정한 성공은 사람과 문화가 판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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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변화의 진정한 성공은 사람과 문화가 판가름

[우형록 교수의 변화를 넘어 미래로(3)] 조직변화는 강요대상이 아니다

GE 잭 웰치 주도 6시그마 한국서는 ‘껍데기’만 들여와

성공적 변화관리 첫 단추는 현실 분석과 정당성의 확보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조직 변화에 임함에 있어 자신과 변화를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변화와 혁신을 시도했던 많은 기업들의 시행착오와 성공담이 이미 회자되는 터라 뒤늦은 감도 있다. 그러나 조직변화는 지금도 진행형이고 미래에도 추구해야 할 대상이므로 여전히 유효한 격언이다. 향후 직면하게 될 변화와 혁신을 제대로 준비한다는 측면에서 조직변화의 이유 및 속성을 심도 있게 짚어볼 계제를 마련하는 일은 우리 기업에 특히 유효해 보인다. 우리에게 변화와 혁신은 부화뇌동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수용되었고 비판 없이 추종된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변화와 혁신에 대하여 기업의 다른 기능과 마찬가지로 관리할 수 있고, 관리해야 할 실무적인 업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조직 변화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려는 ‘변화관리’는 필수불가결한 경영활동이 되었다. 기업 실무에서도 변화관리라는 용어는 완전히 정착되어 모두가 익숙해졌다. 그러나 재무관리, 마케팅 관리의 ‘재무’와 ‘마케팅’과는 달리, 손에 잡히지도 않는 ‘조직변화’를 관리의 대상으로 간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환경 변화의 급변성이다.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통신의 발전 속도는 상상을 불허하는 가속도로 정보화와 세계화를 견인하고 있다. 인류 500만년의 역사를 30일로 환산하면, 정보화시대는 불과 12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기간 만들어낸 인류의 지적 자산은 그 이전에 축적된 총 지식의 무려 318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 여파로 기업이 기존에 보유했던 자원과 역량이 표준화를 거쳐 평준화 되어버리는 위기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게다가 그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그 충격은 격심해지고 있다.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는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지 않으면 뒤처지고, 다른 곳으로 가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한다." 캐럴(Lewis Carroll)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알려주는 말이다. 붉은 여왕이 다스리는 왕국은 어떤 대상이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열심히 뛰지 않으면 뒷걸음치게 된다. 이 일화에서 차용된 ‘붉은 여왕 효과’는 어떤 생물이 변화나 진화를 추진하더라도 주변의 환경이나 경쟁자 또한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속도에 뒤처지게 되면 생존에 실패한다는 경쟁이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로, 조직 내부의 자원이 변화하는 속도가 동기화되지 않는 점을 들 수 있다. 조직이 보유한 자원 간의 속도 차는 설비, 장치 등의 경성자원(hard resource)과 사람, 문화와 같은 연성자원(soft resource)에서 극명하게 표출된다. 그림과 같이 실제 변화가 실선으로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경성자원은 점선의 계단식 형태로 변화에 적응한다. 변화를 감지하더라도 설비와 장치를 기민하게 최신으로 변경하지 못한다. 변화와의 간극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최신의 설비와 장치를 도입하여 실제 환경변화를 뒤쫓아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성자원에는 설비뿐만 아니라 제도, 정책, 기획 등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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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파선으로 표시된 곡선이 연성자원의 변화이다. 일반적으로 조직구성원들은 새로운 설비, 제도 등의 경성자원이 도입되더라도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과거에 대한 익숙함, 습관, 관습 등이 심리적 전환비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내재되어야 하는 조직의 문화나 가치는 변화가 훨씬 어렵고 더디다. 선행하는 경성자원의 계단식 변화를 더욱 완만한 곡선의 형태로 뒤따라 격차를 보정하게 된다. 그림에서 시점 t1을 보면 바로 이전(t0)에 새로운 제도(경성자원)가 도입되었지만 조직구성원의 문화(연성자원)는 여전히 과거로부터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겨우 새로운 제도에 익숙해질 무렵인 시점 t2에 이르면 이미 외부 경쟁환경에 비해서 운영 중인 제도는 진부화되었으며 새로운 제도 도입을 고민할 시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경성자원의 도입에, 조직구성원들이 흔히 내뱉는 ‘익숙해질 만하면 바꾼다’ ‘그대로 두면 되는데 집적대서 일을 만든다’라는 냉소적인 핀잔은 파선으로 표시된 연성자원의 변화 양식으로 설명된다.

조직변화는 경성자원과 연성자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공을 판가름하는 것은 속도가 느린 연성자원이다. 이는 파괴공학 분야의 최약고리모델(weakest link model)로써 쉽게 설명된다. 여러 고리로 연결된 사슬(chain)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당긴다고 가정해 보자. 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서 결정된다. 양쪽에서 당기는 힘을 견디지 못하는 약한 고리가 제일 먼저 파손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수한 고리가 아무리 많아도 한 조직의 궁극적인 역량은 약한 고리에서 결정된다. 경성자원과 연성자원이 2인 1조로 짝을 이뤄 다리를 묶고 달리는 경기에 비유할 수도 있다. 이 경기에서도 경성자원이 빠른 조직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연성자원이 얼마나 느리냐에 따라 조직의 순위가 정해진다. 조직 변화에서도, 속도가 느린 연성자원의 역량에 의해 조직 전체의 변화 속도와 성공이 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연성자원의 중요성은 등한시되고 변화를 위한 개선과 투자가 경성자원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 일상적 용어로는 경성자원은 표면적인 형식(form)에, 연성자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용(content)에 비유할 수 있다. 아무래도 가시적인 형식의 변화는 사람, 문화, 가치관을 바꾸는 내용의 변화보다는 쉽다. 성공한 유명 벤처사업가의 어머니가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존댓말을 했다고 최근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아침마다 “학교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를 했다는 일화이다. 자식들 성공이라면 세계 최고의 열정을 가진 한국 엄마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었으리라. 너도 나도 따라 하긴 했는데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학원에 결석하면 혼날 줄 아십시오!” “그렇게 생각 없이 놀면서 대학이나 가겠습니까!”

자녀에게 반말을 사용하지 않는 형식은 본받을 수 있었지만 존댓말을 사용한 이유인 속 깊은 마음까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해프닝이다. 아이에게 긍정적인 동력이 될 내용면에서 대학, 공부, 학원 등에 여전히 집착했으니 존대하던 형식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추측건대 벤처사업가의 어머니에게 있어 높임말은 형식이었을 뿐이고 내용은 어린 자식임에도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한다는 마음이었으리라.

기업현장도 다르지 않다. 최근 20여 년 동안 우리 기업은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성과급 및 연봉제, 팀제, 균형성과지표(balanced scorecard), 6시그마와 같은 제도와 프로그램을 통해 조직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벤치마킹 대상이던 선진 기업에서 그 효과가 검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에서의 성과는 반드시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단순히 운이 없었다거나, 미온적이었던 경영진을 탓하거나,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았다고 치부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체험들이다. 지금까지 기업들이 투자한 엄청난 시간과 자원에 대비하여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결과는 시쳇말로 매몰 비용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피지기의 관점에서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여 잘잘못을 성찰함으로써 반면교사로 삼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

예를 들어 6시그마는 국내에 가장 광범위하게 도입된 혁신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제조업에 국한되었던 6시그마를 모든 산업에 적용했던 GE는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중성자탄이라는 별명을 가진 잭 웰치(Jack Welch)회장이 주도했던 6시그마의 성과는 분명히 대단했다. 그러나 GE의 6시그마는 하루아침에 탄생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림과 같이 1980년대 후반부터 품질경영에 주력했던 GE는 다양한 시도 끝에 6시그마를 얹어 놓은 형국이다. 즉 GE의 6시그마는 워크아웃, 프로세스 혁신, 변화 가속화 프로그램 등의 시행착오와 경험이라는 역사적 특수성 위에 구축되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내재화된 역사적 특수성은 조직의 연성자원으로 안착된다. GE의 6시그마 성공은 이러한 연성자원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집중했던 프로젝트의 수, 전담 직원의 수, 투자된 교육비용은 GE 6시그마의 외견상 형식이었다. 가시적인 지표에 해당하는 경성자원은 겨우 형식을 복제한 소산물이다. 쉽다고 단언하지 못하지만 이는 경영진의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쫓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변화의 핵심은 경성자원에 비해 약한 고리인 연성자원, 곧 시행착오와 경험이 통합된 변화 역량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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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의 대상으로 급부상한 조직변화에 함축된 근원적인 속성을, 간명하게 경성자원과 연성자원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러한 속성이 참작된다면 변화관리의 방향과 내용이 한층 명료해질 수 있다. 변화관리를 기획하는 데 있어 급변하는 외부 경쟁환경의 변화 양상을 간파하고, 이를 조직의 현재 상태 및 수준과 비교∙분석함으로써 격차를 구명해야 한다. 그제서야 격차를 줄여나갈 구체적인 변화전략을 수립하면서 변화의 목적을 올곧게 수립할 수 있다. 변화의 목표로서 집중할 내부자원을 선정하면서 동시에, 내부자원 간의 이질적인 변화속도를 동기화하고 단축시킬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변화’를 ‘관리’하는 첫 단추는 시중에 좋다고 소문난 것을 찾아서 가져오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각고의 분석이 요구된다. 따라서 애초에 변화관리의 속성은 짧은 궤도로 기민하게 방향을 조작할 수 있는 자전거보다 큰 궤도로 길게 방향 전환하는 점보여객기에 가깝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일련의 준비작업은 지극히 당연하여 조직변화에 대한 정당성을 내부적으로 인정받고 변화실행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다. 부실한 기초공사로 조직변화가 왜 필요한지 그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기업은 ‘해야 할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에 골몰하게 된다. 또한 내외부의 공감이 형성되지 않았으니 글로벌 표준이나 위기감을 앞세워 강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압에 의한 변화는 연성자원을 견인할 수 없으므로 경성자원을 겉치레로 개조하는 악순환의 덫에 걸릴 개연성이 높다. 심지어 ‘변화를 위한 변화’로 변질되어 연성자원마저도 좀 먹는 폐단이 될 수 있다.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