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2017학년도 대입전형에서는 수시모집으로 전체 모집 인원의 70.5%를 선발하고, 그 수시 모집 인원의 85.8%를 학생부 위주 전형으로 선발한다. 수시의 56.3%는 학생부교과전형이고 29.5%는 학생부종합전형이다. 그만큼 대입전형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 결과 수없이 많은 학생, 학부모들이 대입을 위해 학생부에 매달리고 있다. 참 특이한 나라다. 이제 수능과 논술은 구시대 교육의 유물이 되어 버렸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주장해야 공교육정상화와 교육개혁가가 되는 듯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신뢰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광주의 모 고등학교에서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학교생활기록부 조작이 확인되면서 파문이 전국 고교로 확산되고 있다. 사실 이 학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학생부 기록 수정(사실상 일부는 기록 조작)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적지 않은 학교에서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학교 또는 ‘있는 집 부모’들이 자녀의 학생부를 고교 1학년 시기부터 ‘집중 관리’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학생부컨설팅을 위주로 하는 사교육 관계자들이 수능체제를 비판하며 ‘공교육정상화(?)’를 위해 학생부종합전형을 옹호하고 있는 현상까지 증가하고 있다.
고교의 학생부 조작 보도가 불거지자 교육부가 현장조사를 통해 학생부 수정이 잦았던 학교를 추려내 추가 조작이 있었는지 조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자 일선 고교 현장에는 행여 불똥이 튀지 않을까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교육부나 교육청의 조사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서 남아 있는 기록을 가지고 조사하는 건데 심한 경우만 문제 삼겠다고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처음부터 한 과장기록, 거짓기록, 결정적인 부분만 적게 수정한 사항은 이번에도 적발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교사를 신뢰하지만 항상 신뢰할 수 있는 교사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근절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필자는 교육부의 조사를 통해 심각한 추가조작 사례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아주 미세한 수정 사례들만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심각한 추가조작 사례가 드러날 경우 그 모든 학생부 조작에 대한 책임, 대입 공정성 훼손에 대한 책임을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해 온 교육부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부나 교육청의 조사는 과거 입학사정관 전형의 부정에 대한 조사가 그러했듯이 변죽만 울리다가 흐지부지될 것으로 추정된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대입전형을 준비하는 이 땅의 학생, 학부모, 교사로 하여금 과장과 조작, 대필의 유혹에 빠지게 하고 있다. 학생, 학부모, 교사들을 기가 막힌 딜레마의 처지에 몰아넣고 있다. 자신을 위해, 자녀를 위해, 제자를 위해 기록을 좀더 미화·과장하고 사실상 조작일 수도 있는 ‘지나친 스토리텔링’에 힘쓴다면 더 좋은 대입 결과(대학 합격이라는 이익)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교과 기록과 서류를 진실 되게, 정직하게 쓰는 학생, 학부모, 교사는 ‘교과성적 등 다른 조건이 동일한 경우’ 대입전형에서 과장과 미화, 조작, 대필을 일삼는 자들을 이길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은 불합격이라는 어마어마한 손해를 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 정직, 신뢰, 공정이라는 덕목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과장과 미화, 거짓이 자신과 자녀와 제자를 매우 이롭게 하기 때문에 학생부 조작, 서류 대필 등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스스로 거짓을 범하지 않으려면 사교육 업체에 의뢰하여 내용을 조언 받아 그 기록을 학교에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행위를 ‘자식 사랑’ ‘제자 사랑’으로 합리화한다.
과장과 거짓에 참여한 일부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남들도 다 하는데 나도 해도 되는 거라는 ‘피장파장의 오류’에 빠져 자신을 합리화한다. 자기 주장이나 행동이 비록 잘못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잘못해도 괜찮다며 자기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오류를 말한다.
하지만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추천서, 소논문 등의 조작을 통해 누군가 부당한 이익을 본다면 그것을 통해 정직한 다른 학생은 대입에 실패하는 부당한 손해를 볼 것이다. 현재의 대입전형에서의 이런 거짓말 게임은 점차 확대될 것이다. 개개인의 합리적 이기성에 의한 행동이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의 공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중요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의 학생부 조작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나이스)에서의 학생부 수정 기록을 확인하면 될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한 과장기록, 거짓기록은 적발할 수 없고 교육청과 교육부는 학생부 수정 사례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대학에서의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문제는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서류 정성평가는 얼마나 공정할까? 대학 교직원 자녀들에 대한 특혜성 정성평가는 없는 것일까?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자신들이 전형과정을 모두 관장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각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전산시스템에 대한 비공개 로그기록은 사실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 과연 재단이나 학교의 핵심 관계자의 기록 변경 우려는 전혀 없는 것일까? 혹시 대가가 오고가는 부정 사례,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이렇게 학생부종합전형은 고등학교에서의 교사의 과장 또는 조작, 학생과 학부모의 과장 또는 조작, 사교육업자의 관여, 입학사정관의 정성평가(사실상 주관적 평가), 그리고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대학 관계자의 대학전산시스템 침투 가능성 등 너무나 많은 오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의 학생부종합전형 과정은 어떤 불법과 부정도 밖으로 드러날 수 없는 비공개 전형 방식이다. 그래서 학생부종합전형은 블랙박스전형, 깜깜이전형이라고 비판되기도 한다. 겨우 확인되는 것은 고등학교에서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수정 기록일 뿐이다.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인해 학교 교사와 학부모, 학생 모두 조작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면 과연 이 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자는 수년 전부터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 특기자전형, 실기전형의 상세 전형기준과 가중치 공개, 공개한 상세 전형기준에 의한 다수·다단계 평가, 상세평가기준과 가중치에 근거한 평가 결과의 완전한 공개 등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형식적인 다수·다단계 평가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의문과 비판을 해소하려면 모든 대학으로 하여금 감사원이나 교육부 요구 시 일정기간(5년) 내 대학기부자 인적사항(주민등록번호)과 학생부종합전형, 실기전형, 특기자전형 합격자 인적사항을 통보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그러면 실질적인 ‘기여입학제’ 적용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전산시스템에 대한 비공개 로그기록도 완전히 공개되어야 한다. 그러면 전산시스템 개입을 통한 부정을 방지할 수 있다. 부정입학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는 근거 확인 시 학생부종합전형, 실기전형, 특기자전형을 재심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해야 한다.
이것조차 못한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대폭 축소되고 변경되어야 한다. 학생부종합전형 옹호 확대론자들은 이번 학생부 조작 사건을 두고도 또 어떠한 주장으로 학생, 학부모, 국민들을 호도하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이런 부정사건조차 여전히 학생부종합전형 정착 단계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말 것인가?
일부 언론처럼 고른기회입학전형과 특성화고 졸업자, 재직자 전형을 포함한 학생부종합전형 통계를 들고 나와 마치 학생부종합전형이 저소득층을 위한 전형인 것처럼 떠벌릴 것인가? 우리 교육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안선회 중부대 진로진학컨설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