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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도 '갑질' 양진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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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도 '갑질' 양진호가 있다

세계 공옹어로 떠오른 갑질 'Gapjil'…직장 갑질 제보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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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이정선 기자] ‘갑질’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신조어’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우리말을 그대로 풀어서 ‘Gapjil’이라고 벌써 보도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그 뜻을 ‘과거의 영주처럼 임원들이 부하 직원이나 하도급업자를 다루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랬으니 갑질은 이미 세계공용어(?)로 떠오른 셈이다.
갑질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시민단체는 ‘24시간 갑질 피해 신고 콜센터’라는 것을 운영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갑질 피해보호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갑’의 경우는 계약서 등에서 ‘갑을’이라는 말을 아예 없애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갑을 관계’를 바로잡겠다는 일종의 ‘양심선언’이었다.

갑질을 일삼는 ‘갑’은 망신을 톡톡히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몸까지 망칠 수 있다. ‘채근담’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부귀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은 욕심이 사나운 불길과 같고, 권세도 사나운 불길과 같다. 맑고 서늘한 기운을 조금이라도 지니지 않을 경우, 그 불길은 다른 태우지 않더라도 반드시 자신을 태워버릴 것이다(生長富貴叢中的, 嗜慾如猛火, 權勢似烈焰. 若不帶些淸冷氣味, 其火焰不至焚人, 必將自爍矣).

그런데도 갑질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근 여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갑질은 ‘갑질의 극치’라고 부를 만했다.

양 회장은 강원도 홍천의 회장 별장 겸 회사 연수원에서 직원들과 워크숍을 하던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백숙용’ 닭을 석궁으로 쏴서 잡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회장이 지시하는데, 따르지 않을 재간은 없었다. 직원들은 마지못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석궁을 발사해야 했다.

한 직원이 활시위를 제대로 당기지 못하며 머뭇거리자 “지랄한다, 장난하냐”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닭은 결국 양 회장이 직접 석궁을 쏴서 잡았다고 했다.

양 회장은 직원들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닭을 잡도록 하기도 했다. 남자 직원 한 명에게 일본도를 들게 하고, 다른 한 명에게는 닭을 날려 보내도록 했다. 닭이 날아오르자 일본도를 든 직원이 닭을 내리쳤고, 몇몇 직원은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한 직원은 이 끔찍한 장면 때문에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 다른 워크숍에서는 직원의 신체 부위에 거머리를 붙이는 ‘유사 의료행위’를 했고, 자신의 눈 밖에 난 직원에게 회식 자리에서 안주로 생마늘 한주먹을 강제로 먹이기도 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 바람에 직원들은 양 회장과 함께하는 워크숍을 ‘공포의 워크숍’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양 회장은 또 술자리에서는 토할 때까지 술을 강제로 먹이고, 토하더라도 화장실이 아닌 술자리에서 토하도록 했다고 한다. 양 회장은 그런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술을 먹는 도중에 화장실에 가는 직원에게는 5만∼10만 원의 ‘벌금’까지 물렸다고 했다.

양 회장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개조한 총으로 직원들에게 비비탄을 쐈다는 증언도 있었다. ‘황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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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정감사 때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모 주류업체의 영업총괄 전무는 결재서류를 들고 온 직원에게 “집 청소를 해주러 언제 올 거냐. 토요일에 올 거냐”하고 요구하기도 했다. 직원이 “토요일 말고 일요일에 가겠다”고 하자, “그래 알았다”고 했다고 한다.

여직원에게는 성희롱 발언도 거리낌 없이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왜 애가 없는 거야.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해야 하는 거야” 했다.

‘콩국수 갑질’이라는 ‘독창적인(!)’ 갑질도 있었다. 르 메르디앙 서울(옛 리츠칼튼 호텔) L 회장의 갑질이다.

L 회장은 자신이 실소유주인 레이크우드CC의 그늘집에서 콩국수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면발이 문제였다. 레이크우드CC 주방에는 마침 콩국수용 ‘중면’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보다 조금 굵은 면으로 콩국수를 만들었다. L 회장은 조리원 A(여·58) 씨를 불러서 “면발이 왜 이렇게 굵은가” 지적했다. 이후 A 씨는 직업을 잃어야 했다.

‘냄새 갑질’도 있었다. L 회장은 레이크우드CC에서 운동을 마친 뒤 서울 서초동 자택으로 출발하기 직전, 운전기사 B 씨에게 “몸에서 냄새가 난다. 제대로 씻은 것이냐. 차에서 내려라” 하고 면박을 줬다고 했다.

면박은 이후에도 3∼4차례나 계속되었다. B 씨는 더 이상 운전기사로 일할 수 없다고 생각, 퇴사하고 말았다고 했다.

이재환 CJ 파워캐스트 대표의 갑질도 대단했다는 보도다. 전직 수행 비서는 “직원이 아니라 하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 비서는 회사가 아닌 이 대표의 집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이 대표 방에 있는 바가지를 씻는 것이었다고 했다. 화장실에 가기 힘들어서 요강처럼 사용하는 바가지다.

이 대표는 비서들의 대기실에 번호가 뜨는 모니터를 두기도 했다. 벨을 누르면 해당 번호의 비서가 쫓아가서 온갖 시중을 들어줘야 했다.

대기업 오너 2세의 갑질도 여전했다. 윤재승 대웅제약 회장의 갑질이다. 윤 회장이 업무 보고를 하는 직원에게 “정신병자 ×× 아니야. 야 이 ××야. 왜 그렇게 일을 해” 등의 막말과 욕설을 퍼부은 녹음파일이 공개된 것이다.

파문이 커지자 윤 회장은 언론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즉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숙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밝히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여승무원이 박삼구 회장을 위해 낯 뜨거운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는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동영상에서는 갓 입사한 승무원 교육생들이 정장을 입고 빨간 하트를 손에 든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교육 수료를 앞두고 박 회장의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를 미리 연습한 것이다. 그 노래의 가사가 희한했다.

“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이제야 회장님께 감사하단 말 대신 한 송이 새빨간 장미를 두 손 모아 드려요.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어떤 승무원은 박 회장이 오면 손을 깊숙이 잡고, 꽉 안으라는 간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는 역할을 맡는 승무원도 지정하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강요된 게 아니라 교육생들이 스스로 준비한 행사라고 해명했었다.

사교육 기업 D 사에서도 비슷한 갑질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장님 찬양행사’다. 방송에 공개된 영상에서는 30여 명의 직원이 50대 남성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여직원들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맞이하기도 했다.

노래는 찬송가 ‘여기에 모인 우리’를 ‘회장님의 직원 사랑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회장님의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등으로 개사한 것이라는 보도였다.

이 ‘찬양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승진에서 누락된다는 협박을 당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계약직 과외교사도 수업을 빼먹고 참석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 임원이 매장 직원을 때리려고 하고, 말리는 직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등 행패를 부리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 TV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창업자의 친척인 권 모 상무(39)의 행패다.

이미 구문(舊聞)이 된 갑질도 적지 않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유명한 갑질’ ▲김만식 전 몽고식품 명예회장의 운전기사에 대한 갑질 ▲정일선 현대비엔지스틸 사장의 운전기사 ‘매뉴얼’ 갑질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의 운전기사에 대한 상습적인 폭언과 구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씨의 ‘주먹질 갑질’ ▲이동우 롯데월드 전 대표의 머리 염색 갑질 등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갑질이다.

뉴욕타임스는 갑질을 알파벳으로 옮겨서 꼬집었지만, 외국 기업의 갑질 사례도 만만치 않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 1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황제’가 아닌 ‘폭군’이었다. 경영 방식이 "내 기업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식이었다.

​ 그 때문에 유능한 인재를 많이 놓쳐야 했다.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모델 T’의 성공에 공을 세웠던 윌리엄 크눗슨을 떠나게 한 것이었다. 그는 연봉 5만 달러를 거부하고 불과 6000달러를 받으며 경쟁 회사인 GM을 택했다. 크눗슨이 옮긴 후 GM은 시보레를 생산, 포드자동차에 큰 타격을 주었다.

‘폭군’ 주위에는 말 잘 듣는 사람만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 해리 베넷이 있었다. 해군 권투선수 출신인 베넷은 포드의 사생활 문제를 처리하는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노조를 탄압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포드는 아들 에드셀이 사망하자 베넷을 사장으로 임명하려고까지 했다. 포드의 오른팔이었다. 그러나 헨리 포드 2세는 경영의 대권을 잡자마자 우선 베넷부터 파면시켰다.

일본 ‘유통업계의 제왕’으로 일컬어졌던 나카우치 이사오(中內功) 다이에 그룹 회장은 카리스마가 절대적이었다. 40년 동안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한 이른바 ‘톱다운’ 경영이었다.

그럴 만했다. 나카우치는 고베의 암시장에서 장사를 시작, 1957년 오사카 변두리에 다이에이 가게를 열었다. 이후 40년 동안 철저한 염가 전략으로 연간 매출액 5조 엔의 그룹으로 키웠다. 그러다 보니 카리스마가 넘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독선 경영’ 때문에 엄청난 적자를 내고 유통혁명에서 뒤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1999년 퇴임했다. 그는 떠나면서 그룹을 장남 대신 아지노모토 사장 출신의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줬다. “이제는 가업(家業)을 물려주는 시대가 아니다”며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것이다. 퇴임하면서 남긴 말은 “권한을 아래로 많이 이양하라”였다.

일본 기업 파낙의 이나바 회장도 소문난 ‘독재 경영’이었다. 미국의 포춘지가 일본의 대표적 독재 경영자 10명을 선정하는 데 포함되었을 만큼 엄청난 독재였다.

이나바 회장은 회의에서 자신이 먼저 얘기를 하기 전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회의의 결론도 미리 결정해놓고 있었다.

그 바람에 1시간을 넘기는 회의가 없었을 정도였다. 회의실은 단지 자신이 내린 결론을 통보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기업을 군대 조직처럼 운영한 것이다.

이 같은 독재 때문에 그에게는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별명이 붙었다. ‘독재자’, ‘나폴레옹’, ‘비스마르크’ 등이었다.


이정선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