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그룹은 국민기업이라 불릴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다 정부의 주요 핵심정책 사업들을 도맡아 추진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쏟아지고 있는 외국자본과 글로벌기업에 대항마로 내세울 수 있는, 소위말해 베트남의 대표선수다. 정부를 비롯해 베트남 안밖에서 다양한 지원을 받기 때문에 웬만한 위기로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독보적인 존재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거대 산업군에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한순간에 추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 위기설의 첫 물꼬 자동차가 여나
빈그룹은 지난 2017년 9월 자동차 생산회사인 빈패스트(Vinfast)를 설립했다. 이후 1년 반만에 하이퐁에 생산공장을 완공하다 싶더니 올 하반기부터 자동차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출범에서부터 공장설립과 생산까지 불과 2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짧은 시간에 이 같은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동화'와 '협업'이다. 우선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자동차 공장 생산장비의 95%를 들여왔다. 바디 용접은 1200대의 로봇이 100%자동화로, 56대의 로봇이 페인트 작업을 하고, 23대의 로봇이 95%의 바디 접착 작업을 한다.
차량의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피냔파리냐 스튜디오가 맡았다. 외부 엔지니어링 협력업체는 세계적 부품사인 보쉬, 마그나, 지멘스가 합류했다. 전직 GM의 디자이너 데이비드 라이언을 포함한 많은 기술인재들이 외부에서 참여했다.
어벤져스급으로 구성된 빈패스트는 경차 '파딜'과 세단(LUX A2.0), SUV차종(LUX SA2.0)을 6월부터 공식 출시하며 대대적인 행사와 홍보에 나섰다. 베트남의 유명한 인사들은 자국의 손으로 만들어진 국민차라는 찬사와 함께 사전주문에 참여하고 이를 SNS를 통해 알리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한동안 사전주문만 1만대가 넘었다는 보도들이 온라인을 덮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인기리에 출시된다던 빈패스트의 차량들은 현재 베트남 거리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출시 이후 반년동안 차량이 얼마만큼 판매됐는지 발표된 적도 없다. 모든것이 베일에 쌓여 있다.
반면 이상징후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하노이 근교 하이즈엉의 도로에서 빈패스트의 경차 파딜이 가로수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앞 범퍼가 떨어져 나가고 측면이 심하게 파손될 정도였지만 에어백이 펼쳐지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자 빈패스트는 전문가를 급파해 차량을 신속히 회수해 갔다. 빈패스트는 스웨덴의 'Car-O-Line'이라는 장치를 통해 조사한 결과 에어백이 작동할 만큼 큰 충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가 논란만 샀다.
전기차량을 생산하기 전 시범 생산한 전기오토바이 브랜드인 클라라는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베트남 소비자에게조차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이유는 원인모를 잦은 고장이다.
하노이에 사는 하 탄 쭝씨는 "빈패스트 전기오토바이가 주행을 하다가 아무런 이유없이 멈추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센터에서도 원인을 잘 모른다. 주변 친구들은 위험하다며 클라라 브랜드를 사지 않는다"고 전했다.
전문성과 경험없이 속도만 내세운 결과다. 특히 생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장이나 사고시 수리를 하는 서비스 센터 등 기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지난 10월말 빈패스트 럭스(LUX A2.0)세단을 구매한 소비자가 운행 중 사고로 정비를 받았는데, 수리비 견적이 무려 5억 동(약 2500만 원)가까이 나와 논란이 됐다. SNS상에서는 사고 차주가 찍어 올린 청구서상 수리비의 60% 이상이 잘못됐다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현지 매체 '브이앤프레스'와 인터뷰에서 전국적인 정비 네트워크와 부품공급망이 구축되지 않은 데다 빈패스트 차량에 대한 정비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문제라 판단했다. 향후에는 더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될 것으로 보았다.
자동차 산업은 돈먹는 하마다. 높은 품질의 완성차를 생산하는 것도 힘들지만 전문성과 오랜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리고 브랜드가 알려지기까지 긴 시간동안 꾸준한 판매와 후속 서비스가 톱니바퀴처럼 이어져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야심차게 뛰어들었다가 몇년만에 철수한 삼성의 선례가 있다. 당시의 삼성은 지금의 빈그룹 보다 훨씬 큰 기업이었다.
이미 빈패스트 설립 초기에 합류했던 외국 기술자들이 상당수가 떠나고 해외 부품사들의 투자가 보류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노이의 자동차 관련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빈패스트가 자체적으로도 비용절감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동부 부품연구소 양정직 박사는 "내연기관부터 시작한 완성차 브랜드들도 좋은 차량을 만드는 데는 수십년의 노하우와 시간이 필요하다. 자동화와 협업을 통해서는 시간을 앞당길 수는 있지만 품질을 보장하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정부는 어쨌던 빈그룹을 통해 육성하려던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각종 소재산업과 전기・전자 부품 등 차세대 하이테크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빈패스트와 빈스마트로 이어지는 빈그룹의 핵심 제조사업들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
최근 베트남 언론에는 학계나 전문가 등의 기고를 통해 태국처럼 중앙은행이 나서 자국 생산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제로금리 대출을 해주는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며 분위기를 조성중이다. 실제 베트남 산업 통상부와 관련 부서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제안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수입되는 원료에 대한 세금 면제, 국내에서 구매한 부품에 대해 특별 소비세 면제, 중앙 은행의 협조하에 선보일 자동차 대출 정책 등을 검토중이다.
◇ 자금줄 부동산 '흔들흔들'…돈맥경화 올까
빈그룹의 위기설은 비단 자동차 산업 때문만은 아니다. 그룹의 돈줄인 부동산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빈그룹은 현재의 초석을 부동산 자회사인 빈홈즈의 고급아파트와 빈퍼의 리조트 사업을 통해 다졌다. 올해 9월까지 빈그룹의 총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 증가한 92조7400억 동을 기록했다. 이중 부동산 매출이 절반에 가까운 49조5000억 동이다. 빈그룹은 베트남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23%를 차지하고 48개 계열사와 관련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완성차와 스마트폰 등 제조업은 전체 비중의 4.5%에 불과하다. 부동산으로 번 돈을 완성차 등 차세대 사업에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빈그룹의 하이테크 분야가 자리를 잡으려면 지금처럼 부동산이 자금줄이 되는 것이 전제다. 올 상반기까지만해도 대도시를 위주로 빈홈즈의 고급 아파트들이 인기리에 분양되고, 전세계 여행수요가 베트남으로 몰리면서 빈퍼리조트는 방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문제는 하반기부터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몇해 전부터 제기된 부동산 거품론이 이제 정점을 찍었다고 보고 있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빈그룹의 고급 부동산을 지탱하던 외국인 투자자가 빠지기 시작한 탓이다. 고급 프로젝트의 경우 외국인 물량 30%만 다 팔아도 본전을 뽑고 다른 프로젝트를 건설할 수 있다는 말은 부동산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고급 아파트가 과잉공급 현상이 일어나면서 시세차익이 크지 않게 되자 투자자들이 매력을 못 느끼고 빠져 나가고 있다. 현지 언론에서도 연일 주목하는 대목이다.
하노이에서 건설되는 빈홈즈 스마트씨티가 대표적인 사례다. 5만 여 세대에 백화점, 국제병원, 국제학교를 비롯해 100여 개의 공원이 들어서는 대단지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적은 참담하다. 빈그룹에서 판매 수수료를 대폭 인상했지만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이런 추세는 베트남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호찌민 옆의 칸 지오라는 해안에는 두바이와 비슷한 인공섬을 만들고 고급 아파트와 빌라단지가 들어서는 2870헥타르 규모의 슈퍼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첨단공법이 필요한만큼 건설장비를 비롯한 시공은 외국기업들이 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 프로젝트들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태다.
부동산에서 돈이 돌지 않다보니 다른 부동산 프로젝트는 물론 자금투입이 필요한 사업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18년 4월 빈그룹은 박닌(Bac Ninh)지역에 연구, 생산, 물류 및 기타부문을 국제 표준에 따른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약국체인 프로젝트(VinFa)를 시작하며 의약시장에 뛰어들었다. 올 하반기부터 많은 수의 빈파(VinFa)체인 약국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확장계획도 철회됐다. 빈그룹은 낮은 매출로 인한 구조조정 시기라고 설명했지만 베트남의 제약산업은 대부분의 리서치 기관들이 향후 5년동안 두자릿수의 성장을 전망하는 분야다. 그만큼 빈그룹 내에서 돈이 돌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이 가는 대목일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건설사를 운영중인 김용익 코스카 대표는 "하노이 스마트씨티가 빈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소문이 커지고 있다"며 "신규사업들이 제때 자리를 못잡다 보니 자금운용이 힘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빈그룹 바로보는 시선 '분분'
국제적인 신용평가사들은 이미 빈그룹의 사업구조에 대해 부정적이다. 지난 9월 국제신용평가사인 S&P는 빈그룹의 신용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7월부터 빈그룹에 대한 신용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빈그룹 응우웬 비엣 꽝 부회장은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며 "자금이 많이 투입되는 제조업에 새롭게 진입하는 것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며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의 미래에셋대우 박용대 에널리스트도 "현금 동원력과 현금 흐름이 좋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빈그룹이 내년부터 자동차 산업에 못지 않는 자금이 필요한 통신시장에 뛰어든다는 점에서 우려섞인 시선이 더 많다. 시장진출의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다. '스마트시티'는 빈그룹의 고급 부동산을 중심으로 국제병원, 국제학교, 국제호텔, 48개 계열사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5G'기반의 첨단 생태계로 구성하는 사업이다. 통신사업의 특성상 규모가 크며,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며 연결이 원활한 뒤에야 수익사업을 추구할 수 있다.
이동통신 경영자들은 현지매체와 인터뷰에서 "빈그룹이 비엣텔이나 모비폰 등 다른 모바일 통신사와 경쟁하려면 15억~20억 달러의 자본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인프라 시설에만 해당되며, 판매 채널 시스템, 영업, 마케팅, 판촉, 할인 프로그램 등을 갖추려면 추가 자금의 투입은 필수다"고 말했다.
응웬 티 홍 행 글로벌이코노믹 베트남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