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에 올랐다. 비영어권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작품상 유력 후보작에 올랐던 ‘1917’ ‘조커’ 등을 제친 4개 부문에서의 수상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쾌거라고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일본 언론들도 영화 ‘기생충’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한 영화의 강점을 재조명해 일본 영화계와 비교해 문제점을 살피거나 영화계에 대한 한국의 국가적 지원, 마케팅기법에도 주목하고 분석하는 등 이번 수상에 적잖은 자극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사실적으로 그려진 한국 저소득층의 생활이다. 영화에서는 실업상태의 가족 4명이 ‘반 지하’로 불리는 한국특유의 주거환경에서 사는 모습이 가차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극찬하고 있다.
반 지하에 사는 주인공들에게 당연하게 스며든 지하실냄새, 역류하지 않도록 바닥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된 변기, 곰팡이가 핀 벽지, 폭우가 올 때마다 거듭되는 침수 등 한국 저소득층의 생활환경 묘사는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영화 속에 그려진 ‘저소득자의 환경’ ‘격차 사회’라는 사회적 구조에만 치중하는 것 같다. 사실 이 영화 속에는 한국인 이외의 관객이라면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은 또 다른 리얼함도 녹아 있다.
영화 속에서 화제가 된 장면 중 하나로 주인공 남매가 둘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있다. 사칭하는 학력, 경력, 인간관계를 기억하기 쉽도록 노래선율에 담아 흥얼거리고 암기하는 장면이다. 영화속에선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대학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이라는 가사다.
이 선율을 듣는 순간 이것이 한국의 국민가요 ‘독도는 우리 땅’의 개사곡이라는 것을 곧 깨달닫게 된다. 이 부분의 가사는 원곡에서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서 200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원곡의 가사 자체가 독도(독도)의 지리, 역사 등의 정보를 단순히 나열한 것으로, 한국인의 독도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은 거의 모두 이 가사와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는 이 노래를 남매가 암기하기 위해 따라 부른다. 이 노래의 한국적 위상을 명확하게 그린 장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자라면서 이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 이 가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다. 원곡도 그렇지만 한국인이면 다 아는 선율에 단순한 단어나열만으로 개사하기 제격이라 운동회나 국제경기 등에서도 응원가로 자주 쓰이는 노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히트 때문에 이 노래의 패러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이 노래는 ‘제시카 송’ 혹은 ‘제시카 징글’로 불리며 수십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 중에는 이 노래를 직접 흥얼거리거나 패러디를 만드는 사람도 생겨났다.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 그리고 세계적 히트로 인해 지금까지 상상도 못했던 유행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 노래가 영화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해서 영화나 제작진을 반일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빗나간 억지다. 감독인 봉준호는 영화 ‘괴물’ 등을 반미적 요소가 포함된 영화를 만들었다가 반미감독이라는 비판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동안 그의 언행에서 반일적인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일본만화와 영화에 경의를 표해 온 감독이다.
즉 영화 속에서 이 노래가 사용된 것은 이 노래의 한국의 위상, 국민 속에 얼마나 당연하게 녹아 있는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고 평가해야 한다. 감독이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았든, 자칫 놓쳐버릴지도 모를 짧은 장면 속에서도 우리사회의 현주소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