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업계의 오랜 숙원과제인 'OTT 영상물 자율등급제(이하 자율등급제)'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를 통과하면서 사실상 9부 능선을 넘었다.
국회 문체위는 지난 25일 자율등급제 내용을 포함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로써 자율등급제는 이제 국회 본회의만 남겨두게 됐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OTT업계의 콘텐츠 제작에도 '활기'를 띌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법안은 OTT사업자가 자체적으로 등급을 분류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OTT콘텐츠들도 기존 방송프로그램이나 극장용 영화와 마찬가지로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사전등급분류 절차를 거쳐야 했다.
시장 트렌드가 즉각 반영되는 OTT 플랫폼의 특성상 이 같은 사전등급제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큰 장애물로 지적돼왔다. 특히 영상물 사전등급분류 절차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업계에서도 꾸준히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자율등급제 사업자 지위는 지정제로 3년간 시행한다. 이후 제도 안정화와 부작용 등을 평가해 신고제로 전환하는 등 추가 규제 완화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자율등급 기준 등은 대통령령으로 위임했다.
자율등급제 전환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OTT시장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자율등급제 전환으로 가장 먼저 기대할 수 있는 점은 심의 기간이 사실상 사라지게 되면서 제작한 콘텐츠에 대해 곧장 마케팅을 진행하고 공개 일정을 빠르게 잡을 수 있다. OTT 이용자들의 트렌드 변화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신작 콘텐츠를 적절한 시기에 공개해 이용자들을 더 오래 붙잡아둘 수 있다.
또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도 트렌드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웨이브 관계자는 "사전에 등급 심의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시의성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어려웠다"며 "자율등급제가 시행되면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이용자들도 콘텐츠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콘텐츠 사전심의 절차가 사라지면서 OTT들은 더 많은 콘텐츠를 수급할 수 있다. 기존 사전심의에서는 제목만 바뀌어도 심의를 새로 넣어야 하고 극장용으로 심의를 받은 콘텐츠라도 비디오물로 재심의를 받아야 한다. 앞으로 이 같은 절차가 사라지게 되면 OTT들은 콘텐츠 수급에 역량을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웨이브의 경우 방송사용 드라마를 재편집해 OTT용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검은 태양'이나 '러브 씬 넘버' 등이다. 이들 드라마는 방송사용 외에 OTT용으로 재편집되거나 추가 에피소드가 공개된 바 있다. 이 경우 심의를 새로 진행해야 한다.
OTT가 더 많은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 소비자들도 원하는 콘텐츠를 찾기 위해 여러 OTT를 이용할 필요가 사라진다. 왓챠 관계자는 "사전심의에 대한 부담이 줄면 각 OTT별로 더 많은 콘텐츠를 수급할 수 있고 소비자들 역시 하나의 OTT 안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업체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최근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 오리지널 예능까지 전략적으로 육성하기로 한 만큼 트렌드에 맞춘 예능을 더 많이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디즈니플러스 역시 '무빙', '카지노' 등 대작 드라마들을 제작하는 만큼 공개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됐다.
전체적으로 자율등급제가 시행되면서 이용자들이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고 선택의 폭도 더 늘어날 거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등급제가 도입되면 이용자들은 하나의 플랫폼에서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며 "다만 기준이 엄격해진다면 법안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콘텐츠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대통령령에 의해 결정되는 자율등급 기준이 엄격해진다면 자율등급제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하고 있다. 지나치게 기준이 강화되면 자율등급제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나치게 기준이 느슨해질 경우 자칫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OTT의 경우 불법복제가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고 청소년들의 접근도 쉬워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가 쉽게 유통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최영진 문체부 영상콘텐츠산업과장은 "규제를 풀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 특히 청소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정부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며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에 맞춰서 정부가 등급분류를 하고 있었던 건데 규제가 풀린다면 부작용이 없을 거라는 장담은 아무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문체위에서 통과된 법안에는 자율등급제 사업자 지위를 지정제로 3년간 유지하면서 부작용을 살펴보고 신고제 전환 및 추가 규제 완화 여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