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싱크탱크 호주전략정책연구소(Australian Strategic Policy Institute, ASPI)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학술 논문을 분석한 결과 중국이 인공지능(AI), 5G, 사물인터넷(IoT), 반도체, 양자컴퓨팅, 바이오메디컬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총 80%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13%), 유럽(3%), 일본(2%)을 크게 앞선다.
특히, 중국은 극초음속, 수중 드론, 인공지능 기반 무인 전투기 등 군사 분야에서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ASPI는 중국이 2030년까지 세계 첨단기술 분야의 선두 주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과 중국 과학기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주로 앞선 분야가 주로 국가 안보 관련 핵심 기술이어서 글로벌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극초음속 탐지·추적·특성화는 중국 압승…인공 지능·양자 기술은 미·중 첨예한 대립
ASPI 보고서는 2018년부터 2022년 사이에 출판된 220만 개의 학술 논문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된 10%를 기반으로 한 순위를 제공했다. 이 순위에 따르면 ASPI가 분석한 23개 기술 중 19개 분야에서 중국이 연구를 주도했다.
중국은 극초음속 탐지, 추적 및 특성화에 대한 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의 73.3%를 차지하며 미국, 영국, 독일보다 크게 앞서 있었다. 또한 자율 수중 차량 분야에서 중국은 중요한 연구의 56.9%를 차지했으며, 미국의 9.5%보다 월등히 높았다.
인공 지능과 양자 기술 등에서는 미국과 중국 경쟁이 첨예한 양상이었다. 인공 지능 관련 6개 분야 가운데 드론을 포함한 4개 분야에서 중국이 1위였고, 첨단 집적회로 설계 및 제조 분야에서는 미국이 선두였다.
미국은 양자 컴퓨팅과 의학에 응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감도 양자 센서 분야에서 근소한 차이로 앞섰고, 중국은 포스트 양자암호 분야에서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중국 외 다른 나라들은 일본이 양자 컴퓨팅, 포스트 양자암호 등 7개 분야에서 상위 10개국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고,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에서 중국과 미국에 뒤처져 있지만,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중국, 국가 안보 분야 과학기술 경쟁력 미국 추월·압박
ASPI는 이 조사에 앞서 매년 실시하는 각종 과학기술 분야의 경쟁력 조사에서도 중국은 주요 과학기술 논문 인용 빈도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번 조사와 흐름이 동일하다.
영국 클래리베이트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일본 문부성이 생산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동안 조사한 결과 중국은 과학 연구 논문의 양과 질에서 세계 선두다. 2020년 중국은 세계적으로 발표된 논문의 24.6%를 생산했으며, 미국보다 8.5%포인트 더 많았다.
가이던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연평균 40만 7181건의 과학 논문을 발표해 미국의 29만 3434건을 앞지르고, 전 세계 연구 생산량의 23.4%를 차지했다.
또한, 중국은 전 세계에 가장 많이 인용된 출판물 가운데 상위 10%와 1%에서 모두 거의 30%를 차지했다. 이는 중국이 발표한 과학 연구 논문의 양과 질이 모두에서 성과를 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2년 발표자료에서 미국은 인용된 상위 1% 연구의 24.9%를 차지했으며 영국은 5.5%로 3위를 차지했다.
일각에서 중국 내부에서 논문 참고 및 인용이 많아 연구의 글로벌 수준에 아직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 중국은 10년 전 48%에서 최근 61%로 자국 내 인용 비율이 놀라울 정도로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중국 논문 인용의 상당 부분을 다른 중국 연구자들이 인용했고, 다른 국가에서 인용하는 비율이 저조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경우 논문 인용의 29%가 미국 연구자들이었고, 일본, 한국, 영국, 독일, 프랑스는 국내 동료들의 인용 비율이 20% 미만이다.
하지만, 중국의 높은 국내 인용 비율이 중국 연구 역량을 과소평가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이미 중국은 권위 있는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약 20%가 실리고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미국, 영국, 독일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에 소개되는 횟수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 중국이 국가 안보 분야 과학기술 경쟁력에서 미국을 추월하거나 압박하고 있는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경쟁력의 배경
ASPI 전무이사인 저스틴 바시(Justin Bassi)는 중국이 국가 안보와 관련된 핵심 기술에서 이점을 얻는 데 관심이 큰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실제 중국은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통해 첨단 산업육성을 주도하고 있다.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 중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이를 밀어붙이고 이다.
시진핑 주석은 반도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정보 기술 분야, 스마트 제조, 3D 프린팅, 로봇 공학 등 첨단 제조 분야, 자율주행, 항공우주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대해 정부 주도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첨단 기술 연구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가 주도다. 중국 정부는 첨단 기술 기업 보조금 지급, 세제 혜택, 인재 양성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둘째, 해외 기술 흡수다. 해외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과 기술 협력 등을 통해 첨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셋째, 국제 규범을 활용한다.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규범을 활용해 자국 기업의 첨단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국가 안보 분야 과학기술 성과는 정부의 공격적인 투자와 인재 유치 및 육성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의 미래
미국과 중국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은 핵심 기술 분야에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도발에 긴장하고 ‘미국 재건 계획’을 통해 과학기술 분야에 2조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또한, 쿼드, G7 등 동맹국들과의 과학기술 협력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특히, 첨단 기술 분야의 핵심은 결국 반도체에 있다고 판단하고 중국에 최첨단 반도체 장비나 소재, 기술, 칩 수출을 금지했다. 미국인의 경우 관련 기술이나 정보를 가진 경우 중국 기업에 취업을 금지하는 조치도 내렸다. 칩이 제공하는 정보의 저장과 로직 흐름을 첨단화하지 않으면 과학기술 발전 과정에서 중국이 한계에 봉착하는 점을 주목한 조치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 이니셔티브를 통해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기술 자립을 높이고 있다. 또한, 천인·만인 계획 등을 통해 미국이나 EU, 대만 등에서 최고급 과학기술인력을 영입해 기술 발전과 인재 육성을 진행 중이다.
특히, 중국은 첨단 칩 기술 확보가 미래 과학기술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보고, 미국의 첨단 칩 수출금지에 대응해 자체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전략 아래 천문학적 R&D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첨단 기술 경쟁은 향후 세계 경제와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은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무역 제재, 기술 스파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첨단 과학기술은 한국에게도 생존의 문제
한국은 수출경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보유해야만 미래 생존이 가능하다. 우리의 산업 기술이 중국과 겹치는 분야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수출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의 GDP는 1.7조 달러 내외이고 중국은 약 17.7조 달러다. 중국이 우리의 GDP보다 10배가 된다. 이 비율이 5년이나 10년 뒤에 15배나 20배로 우리 경제가 추락하지 않으려면 과학기술에서 독보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
중국은 물론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를 최대한 예우하고 꼭 필요한 존재로 취급할 수 있도록 하려면 반도체나 배터리 외 미래 첨단 기술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다른 국가와 한국의 국력도 감안해야 한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와 나토 회의 옵저버 참석 등으로 EU와의 관계 강화가 이뤄지고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 선진국과 첨단 분야에 대한 공동 투자와 함께 인력 육성도 더 강력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은 협력과정에서 더 크게 발전하고 혁신이 나올 수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