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은산분리 원칙에 은행 사업은 법으로 엄격히 정해져
총선 앞두고 은행 때리기·횡재세 몰두하다 금융위기 우려도
총선 앞두고 은행 때리기·횡재세 몰두하다 금융위기 우려도
정치권, 금융당국이 은행 이익에 대해 혁신이 없다며 횡재세 도입까지 거론하며 공세를 이어가자 은행들은 강한 규제로 혁신은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허가 산업인 은행업의 특성상 상당 부분 사회에 환원하는 게 맞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기업들의 혁신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엄격한 은산분리 원칙 때문에 은행들이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은 법으로 엄격히 정해져 있는데 혁신을 요구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내년 4월 총선 앞두고 은행 때리기와 횡재세를 들먹이다가 오히려 은행 위기와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7일 정부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은행에 대해 금융당국이 국내 주요기업들과 같은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전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회계법인 대표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3분기 영업이익을 비교해보면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을 다 합친 것보다도 은행권 영업이익이 크다"면서 "은행들이 반도체·자동차에 비해 어떤 혁신을 했기에 60조원에 달하는 이자이익을 거둘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은행권을 비판했다.
이는 국내 은행권이 정부가 부여한 라이선스로 과점체제를 형성하고 고금리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이자놀이'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당국의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예대업무는 은행업의 본질이지만 해묵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수출기업들은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입하고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지만 은행들은 일정한 예대마진을 유지하면서 경기 변동에 따른 리스크 조차 없이 절대 망하지 않는 수익 구조를 가진 탓이다.
하지만 은행권은 업의 본질이 다른 수출기업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또 디지털 전환으로 은행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오히려 정부의 규제 완화 속도가 너무 느린 탓에 신사업을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아직도 이자이익에 기댄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안전한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이 나오지만 은산분리 원칙 때문에 은행들이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은 법으로 엄격히 정해져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결국 금융시장 안전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은산분리를 엄격하게 유지하면서 이자이익에 의존한 수익구조를 탓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행법상 은행이 할 수 있는 업무는 엄격히 제한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고유업무, 부수업무, 겸영업무라는 개념을 정해 놓고, 은행으로 하여금 그 범위 안에서만 사업을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은행업 본질이 아닌 업무는 당국의 부수업무 허가가 필요한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또 당국이 부수업무로 지정해주더라도 특혜논란 시비가 일기도 한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KB국민은행이 규제샌드박스 형태로 4년간 영위해 온 알뜰폰 사업을 부수업무로 인정해줬다. 하지만 지난 국감에서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금융위가 자의적으로 법령을 해석해 금산분리를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이자이익을 뺏어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시장원리를 훼손하는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대부분의 은행들은 엄연한 민간기업인데 이들을 압박해 이익을 소상공인들과 나누라고 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위배된다"면서 "정부가 압박할 때 마다 은행들이 곳간을 열어야 되는 상황이 된다면 경영 불확실성은 커지고 금융산업 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