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명이 한 번에 식사할 수 있다고는 하는데 일반 식당에서 4명이 앉으면 적당할 크기의 식탁에는 철제 다리에 줄기가 뻗어있듯이 의자 6개가 붙어있다. 항해 중 군함이 흔들려도 의자가 고정돼 있도록 했다. 동그란 의자 안장 직경은 30㎝가 채 안 돼 엉덩이를 걸쳐 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전체적으로 좁은 공간의 함 내를 처음 본 기자는 금세 답답해졌다. 대한민국 해군 군인들은 이렇게 좁은 공간을 뛰어다니면서 수개월을 지내며 작전을 수행하고 전투를 한다. 더군다나 정조대왕함의 실내 공간은 미국의 이지스함보다 넓은 편이라고 한다. 상선은 물론이고 군함도 어떻게 보면 건물이나 마찬가지다. 길이 170m인 정조대왕함 함내는 매우 복잡하다.
지난 20일 HD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사실상 최초로 언론사 산업부 취재기자단에 특수선사업본부의 6, 7도크 현장 취재를 허가했다. 그러면서 정조대왕함에 승선할 수 있는 시간도 제공했다. 해군 군함 가운데 가장 큰 정조대왕함은 광개토대왕급 배치-II의 11번함으로 2019년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해 2021년 착공식과 기공식을 거쳐 지난해 7월 28일 울산조선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진수됐다. 현재 시험평가를 진행 중이며 2024년 11월에 해군에 정식 인도될 예정이다.
울산급 배치-III 이지스 호위함 1번함으로 역시 시험평가가 진행 중인 충남함도 볼 수 있었다. 5, 6번함 건조를 두고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그 호위함의 1호선이다. 안벽에 두 군함이 나란히 정박해 있었는데, 임시 다리로 충남함을 지나 정조대왕함에 올라갈 수 있는 경로였다. 시험평가 기간 두 척의 군함이 모두 들어오는 날이라는 설명을 들었으나 왠지 2, 3, 4호선 건조를 따낸 SK오션플랜트와 한화오션을 겨냥해 “두 회사가 건조하는 군함은 이런 모습이다”라고 홍보하는 듯하다.
정조대왕함의 외부는 매우 깔끔하다. 군더더기처럼 뭔가 튀어나온 것이 없는 매끄러운 모습이다. 적군의 레이더에 노출을 최소화한 스텔스 설계 때문이라고 한다. 군함 뒷면에 마련한 헬리콥터 이착륙장도 스텔스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곡면처럼 설계한 뒷부분을 직선으로 바꿨다고 한다. 정조대왕함은 헬기를 두 대 운용할 수 있는데, 어뢰와 미사일 등도 격납고와 선내에서 볼 수 있었다. 역시 스텔스 성능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F-35 전투기가 기내에 미사일을 탑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곳에서 들어본 바로는 항해 중일 때 선내에 차가운 해수를 들여와 군함 온도를 낮춰 적외선 열감지 레이더에 걸리는 것을 최소화했다고도 한다.
시험평가인 관계로 수직 미사일 발사대 팔랑스 대공포 등 중요 시설은 빨간 천으로 가려놨지만, 덮인 외형만으로도 어떤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정조대왕함은 HD현대중공업이 자체 설계했는데, 이지스함을 설계하고 건조할 수 있는 국가는 원조인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뿐이라고 한다.
미국과 일본 이지스함과 정조대왕함 등 한국 이지스함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은 배의 맨 앞부분인 함수다. HD현대중공업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군함의 외모를 멋지고 날렵하게 하기 위해 완성차 업체 디자이너들을 초빙해 공동 연구를 했다고 한다. 미국 해군 고위 장교가 한국 이지스함을 보고는 “훌륭하다”며 완벽한 군함이라고 격찬했단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정조대왕함은 기존 이지스함에 비해 승선감이 높아졌다고 한다. 출렁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군함이 승선감이 높아졌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함내 생활을 할 때 군인들이 육지에서 생활하는 것에 가깝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같은 이지스함이어도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군함과 한화오션이 건조한 군함이 승선감에 차이가 있을까?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군사기밀이라 밝힐 수는 없어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와 대우차의 차이로 생각하면 되냐”는 추가 질문에 어느 정도 맞다고 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통상 현대차가 부드럽고 편안한 승차감이라면 대우차(현 GM)는 단단해서 안정감 있는 승차감으로 특징을 구분한다.
정조대왕함은 해군을 위한 이지스함 구축함 가운데 처음으로 해상에서 적의 탄도탄을 탐지·추적·요격할 수 있는 ‘해상기반 기동형 3축체계의 핵심 전력 역할을 갖췄다. 해상·공중은 물론 탄도미사일 대응능력을 갖춘 최강의 군함이다. 지난 21일 밤에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우리 해군 이지스함이 이를 즉각 포착하고 남해 먼바다로 빠져나갈 때까지 추적하며 활약했다. 내년에 정조대왕함이 취역하면 우리의 대북 대응 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태복 HD현대중공업 이사는 “국가전략자산인 정조대왕함을 자력으로 설계‧건조한 HD현대중공업은 현재 2번함, 3번함도 건조하고 있다”면서 “국가와 방산 기업들이 합심해 도전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울산=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