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애플을 빛내주던 ‘시총 1위’ 타이틀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뺏겼고, 특허침해 소송에서 패소한 애플워치는 재개됐던 수입 및 판매가 다시 중단됐다. 2020년부터 계속된, 에픽게임스와 벌여온 반독점 소송도 그대로 종료되면서 앱스토어의 외부 결제를 전면 허용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애플의 악재가 단지 운이나 타이밍 문제가 아닌, 그간 누적됐던 애플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 “혁신이 사라졌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애플의 신제품 전략에서 ‘새로운 것’을 찾기 힘든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애플의 가장 큰 실책은 지난해 업계를 강타한 인공지능(AI) 열풍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성형 AI 열풍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출시한 아이폰15 시리즈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능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결국 생성형 AI에 올인해 승승장구한 MS에 시총 1위 자리를 내준 최대 원인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 최대 경쟁사 중 하나인 삼성전자가 AI 기능을 강조한 ‘갤럭시 S24’ 시리즈로 빈틈을 파고들면서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아이폰 시리즈보다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갤럭시 S24 시리즈는 인터넷 및 클라우드 연결 없이 단말기 자체에서 생성형 AI 기능을 구사하는 ‘온디바이스 AI’의 기준을 제시했다. 애플은 향후 생성형 AI 기능을 자사 제품에 탑재하더라도 “경쟁사의 좋은 기능만 따라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애플을 지탱하던 ‘프리미엄 마케팅’에도 금이 가고 있다. 애플은 그간 아이폰을 중심으로 고가 정책을 유지하며 막대한 영업이익을 달성해 왔다. 하지만 미국 달러화 강세가 계속되고,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통화가치 하락,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박, 경기 둔화 등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글로벌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크게 위축됐다.
이는 미국 다음으로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중국과 인도 등지에서 아이폰15 시리즈 판매량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애플은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출시한 지 반년도 안 된 아이폰15 시리즈의 추가 할인을 단행하는 ‘굴욕’을 겪었다.
애플의 짭짤한 수입원 중 하나였던 ‘앱’ 장사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에픽게임스와의 소송전이 종결되면서 애플은 ‘독점 기업’이란 오명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대신 앱스토어에서 외부 결제를 전면 허용하게 되면서 30%에 달하는 인앱 결제(앱 내 구매) 수수료 이익이 감소하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반독점 위반 위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5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 법무부가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법무부의 소송은 앱스토어뿐만 아니라 애플의 폐쇄적인 생태계 전반에 걸쳐 독점 여부를 조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애플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차별화된 감성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던 애플의 제품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이폰15 시리즈는 이미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고, 최신 ‘애플실리콘 M3’ 칩을 탑재한 신형 맥(Mac) 제품들은 향상된 성능에도 불구하고 시장 반응이 미지근하다.
특히 애플을 대표하는 3대 제품 중 하나인 ‘아이패드’는 지난해인 2023년 신제품이 전혀 없었다. 이는 삼성이 다양한 크기의 ‘갤럭시탭’ 시리즈 태블릿 라인업을 꾸준히 선보이며 존재감을 키워온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애플은 다음 달 출시 예정으로 알려진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에만 집중하는 모양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비전 프로의 초기 반응이 좋을 경우, 올해 출하량을 50만∼60만 대 수준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초기 출시 가격만 3000달러가 넘는 고가에다 AI 열풍에 밀려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관련 기술 관심도가 뚝 떨어진 지금 상황에서 비전 프로가 위기의 애플을 구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