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첫 영화를 시작으로, 알랭 들롱은 금세 세계적인 미남배우로 주목을 받았다. 1960·70년대 라이벌인 장폴 벨몽도와 함께 프랑스 영화의 인기를 할리우드 못지않게 끌어올리는 데 크게 한 몫을 했다.
들롱은 주로 잘생긴 반항아나 갱스터 역할로 캐스팅되었으며, 냉담하고 심지어 다소 음산한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1970년 뉴욕 타임스는 그의 ‘물결치는 푸른 눈’을 "미국의 폴 뉴먼과 같은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X에 올린 게시물에서 들롱을 "기념비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하며, "전설적인 역할을 했고 세계를 꿈꾸게 했다"고 덧붙였다.
비평가들은 그가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영화 '사무라이(1967)'에서 킬러 역할을, '붉은 서클(1970)'에서 도둑 역할을 맡은 것을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했다.
들롱 스스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한 작품 속 역할은 1976년 '미스터 클라인'에서 부도덕한 예술품 딜러를 연기한 것이다. 이 영화는 조셉 로지 감독이 연출했으며, 프랑스의 국립 영화상인 세자르상을 3개나 수상했다.
들롱은 아돌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 중 파리를 파괴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을 다룬 서사극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와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1963)' 등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는 2018년 GQ 매거진의 영국판 인터뷰에서 "나는 잘생겼다. 여자들은 모두 나에게 집착했다. 내가 18살 때부터 50살이 될 때까지"라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 경력이 쇠퇴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파리 매치와 같은 대중 잡지에 꾸준히 등장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은둔 생활을 해온 들롱은 스스로의 삶이 그가 연기한 역할만큼이나 격동적이었다고 회고했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그는 과거에 여성들을 때린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로미 슈나이더와 미레유 다르크 등 여러 여자배우들과 로맨틱한 관계를 가졌다. 들롱은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2005년 파리 매치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몇 년 전 두 자녀의 어머니와의 이별 후 느낀 절망과 외로움 때문에 자살을 고려했다고 팬들에게 알려 충격을 주었다.
알랭 파비앙 모리스 마르셀 들롱은 1935년 11월 8일 파리 외곽의 소도시인 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후, 그는 가정 위탁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가톨릭 기숙학교에 다녔다.
그는 파리의 좌안 지역을 돌아다니며 배우 브리짓 오베르와 친해졌고, 그녀는 그를 1957년 칸 영화제로 데려갔다. 이곳에서 할리우드 프로듀서 데이비드 셀즈닉의 스카우트의 눈에 띄게 된다.
로마에서의 만남 이후, 셀즈닉은 들롱에게 7년 계약을 제안하며 영어를 배울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파리로 돌아온 들롱은 그를 프랑스에서 연기 경력을 시작하도록 설득한 프랑스 감독 이브 알레그레와 만났다.
그해 알레그레의 영화 ‘악마가 실패하면 여자를 보내라’에서 킬러 역할로 데뷔한 들롱은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범죄 스릴러 ‘태양은 가득히’에서 첫 주요 역할을 맡아 스타로 떠올랐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