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전자폐기물이 지구촌의 심각한 환경위기로 대두되고 있다.
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글로벌 전자폐기물은 2000년 2000만 톤에서 2022년 5700만 톤으로 급증했다. 여기에 AI 붐이 초래할 연간 250만 톤의 추가 폐기물이 더해지면서 환경위기가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최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2007년 이후 연간 500만 톤 수준이던 모바일 기기 폐기물은 AI 시대를 맞아 큰 폭의 증가가 예상된다. AI용 반도체와 서버는 일반 전자기기보다 희귀금속 함유량이 높다. 이로 인해 환경오염 위험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학원과 이스라엘 라이히만대학 공동연구팀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2030년까지 AI 관련 전자폐기물이 전 세계 발생량을 최대 12%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아이폰 130억 대를 폐기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현재 대부분의 전자폐기물이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UN의 2023년 국제전자폐기물 모니터링 보고서는 심각한 현실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약 5,400만 톤의 전자폐기물이 발생하지만, 이 중 공식적으로 수거되어 재활용되는 비율은 17.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소각되어 심각한 환경오염을 초래하고 있다.
주요 IT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도 환경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분기당 140억 달러의 데이터센터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오픈 AI는 각 시설당 1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제시했다. 구글의 탄소배출은 2019년 이후 48% 증가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도 2020년 이후 29% 증가를 보고했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 국제사회의 규제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EU는 2003년 전기전자폐기물처리지침(WEEE)을 도입했다. 2021년에는 순환경제실행계획을 통해 전자제품의 수리권과 재활용을 의무화했다. 2025년부터는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도 의무화된다.
금융권의 대응도 구체화되고 있다. 세계은행과 국제금융공사(IFC)는 2024년부터 ESG 평가에 전자폐기물 관리 항목을 추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AI 기업 투자심사에서 전자폐기물 저감 계획을 핵심 평가요소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도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23년 전자폐기물 관리법 개정을 통해 AI 기업들의 폐기물 처리 책임을 강화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데이터센터의 탄소 배출과 전자폐기물을 30% 감축하는 목표를 수립했다. 한국은 2023년 자원순환기본법 개정으로 AI 관련 전자폐기물 관리를 강화했다. 2025년부터는 데이터센터 설립 시 전자폐기물 처리계획 제출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전자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해 규제와 기술혁신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환경 분야의 한 전문가는 "재활용이 쉬운 AI 칩 설계와 모듈형 서버 개발 등 기술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차원 규제 조화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린피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의 AI 개발 경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개발 속도 조절과 재활용 인프라 구축의 선행을 주장했다. 환경단체의 한 전문가는 "AI의 전 주기에 걸친 환경 영향 평가와 대응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AI 기업들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구글은 2024년까지 AI 서버의 재활용률을 9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친환경 반도체 개발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골드만삭스는 "환경규제 강화로 AI 기업들의 설비투자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친환경 AI 기술 개발 능력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시대의 전자폐기물 문제는 기술발전과 환경보호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AI 발전을 위해 개발 단계부터 환경을 고려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