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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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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한국인가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이미지 확대보기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미국의 동맹국들이 충격에 빠졌다. 그가 장사꾼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의 이득을 위해 오랜 동업자를 하루아침에 경쟁업체에 팔아넘기려들 줄은 잘 몰랐던 모양이다.

미국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사설에서 “트럼프가 크렘린과 딜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팔려고 한다”고 직격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뒤 지난 3년 동안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군사적·경제적으로 지원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제 나토는 러시아를 지원하는 미국과 우크라이나를 지키려는 유럽 국가들로 양분되는 사태를 맞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를 넘기면서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등 광물 자원을 챙기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에 희토류 등을 의존하지 않으려고 우크라이나로부터 약 5000억 달러(약 721조원) 규모의 광물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광물 협정 초안을 제시할 때는 미군이 휴전 후 안전보장을 위해 우크라이나에 주둔할 테니 그 대가로 희토류 자원을 달라고 했다.

트럼프는 동맹 관계나 안보 지원도 거래 대상으로 여긴다. 트럼프는 지금 거대 기업이 하청업체에 부리는 횡포처럼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면 돈으로 그 대가를 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기존 관계(또는 거래)를 끊겠다는 게 트럼프의 일관된 메시지다.
트럼프가 유럽의 안보 틀인 나토 체제를 뿌리째 흔들면서 그다음은 아시아 차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의 안보 우산 속에 있던 한국과 대만이 밖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최근 한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태평양 지역에 집중할 것이고, 그가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면서 '한국 패싱'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시 정상회담을 할 수 있고, 이때 이해 당사국인 한국을 배제할 수 있다는 게 스티븐스의 경고다. 미 국무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기자에게 “트럼프가 집권 1기 시절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만날 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끼는 것을 매우 꺼렸다”고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대만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논의하는 미·러 협상이 향후 미·중 간 거래의 예고편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이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넘겨주려는 태도를 지켜보면서 대만 침공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언론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내일의 대만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와 시 주석이 두는 체스판에서 대만은 버려지는 말이 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트럼프를 상대할 때는 그가 ‘가치’가 아니라 ‘가격’을 따진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미동맹과 같은 가치에 매달리면 헛발질하게 된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주고, 챙길 것은 챙기는 철저한 거래를 해야 한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