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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바가지 긁다’ ‘바가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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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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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바가지 긁다’ ‘바가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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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중년 남자들이 술자리에 모이면 “우리 마누라 갈수록 바가지 긁어대. 지겨워 죽겠어”라는 볼멘소리를 입에 올리곤 한다. 바가지 긁는 화자의 아내는 분명 욕구불만이 가득 차 있을 터, 그걸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그 남편도 딱하기는 매일반이다.

‘바가지 긁다’의 사전적 정의는 “불평이나 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잔소리를 하다”이다. 바가지는 잘 여물은 박을 반으로 쪼개 속을 비워낸 후 말려서 그릇 대용으로 쓰는 생활용품인데, 무슨 연유로 긁어 댄 것이고 긁는 소리가 어떠하여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된 것일까?
때는 외국에 문호를 개방한 지 얼마 안 된 1886년 7월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로 콜레라가 유입되어 순식간에 전국을 휩쓸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병원인 ‘제중원’에 미국 의사 알렌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알렌은 콜레라의 위험성을 정부에 알리는 동시에 손‧발을 자주 씻고, 익힌 음식은 물론 물도 반드시 끓여 먹을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병에 걸린 사람은 병원으로 속히 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병에 걸린 사람들은 죽어 나가는데, 정작 병원을 찾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의아한 생각에 민가에 들른 알렌은 기절초풍한 광경을 보게 된다.
병든 환자를 마당 멍석에 앉혀 놓고 굿을 한다든가, 아니면 마을 밖 빈터에 초막을 세우고 병자를 방치하여 죽게 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콜레라를 ‘쥐통’ 또는 ‘쥣병’이라고 부르며, 못된 귀신이 쥐를 통해 옮긴다고 믿는 사실이었다.

그러다보니 집집마다 쥐가 무서워하는 고양이 얼굴을 그려 붙이고, 고양이의 털을 태워 병자에게 갈아 먹였다. 그리고 밤낮으로 바가지 속을 숟갈로 박박 긁어서 그 소리로 쥐를 집 밖으로 쫒아 버리려하였다. 심지어 궁궐에서 조차 시시각각 공포탄을 쏘아 도시 밖으로 쥐를 몰아내려 하였다고 하니 알렌으로서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쥐를 쫒는다고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은 바가지 긁는 소리로 정신이 없었고 그러는 사이 인구 20만의 서울에서만 7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한편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바가지 긁는다’의 유래는 이때부터 사연을 가지게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콜레라와는 관련 없이 듣기 싫은 소리의 상징어가 되고 차츰 아내의 잔소리로 변하게 된 것이다.

‘바가지 쓰다’라는 말은 ‘바가지 긁다’와 전혀 연관성은 없지만, 이 말도 우리나라 개화기에 생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화기시절, 외국문물이 유입되면서 많은 종류의 도박도 딸려 들어왔다. 이때 일본의 화투와 함께 유행한 도박 중 하나가 중국의 ‘십인계’라는 것이다. 이 노름은 오야(패 돌리는 사람)가 1부터 10까지 숫자가 적힌 바가지를 이리저리 돌리다 엎어놓은 후 숫자를 호명하면, 도박꾼들은 숫자에 해당된다고 믿는 바가지에 돈을 거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노름이건 간에 따는 경우는 흔치가 않아서 돈을 잃게 되는데, 이처럼 노름으로 돈이 털린 것을 ‘바가지 썼다’로 대신하기도 했다. 이 말이 지금에 와서는 노름과는 연관성이 희박해지고 ‘터무니없이 손해 보는 경우’를 빗댄 말로 남게 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바가지요금’이란 말도 ‘바가지 썼다’에서 비롯된 말이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