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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내 코가 석자'와 '내 살아야 너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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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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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내 코가 석자'와 '내 살아야 너도 산다'

"지금 내 코가 석 잔데 남의 집 자식까지 챙길 겨를이 어디 있겠어?" 이런 대화, 주변에서 흔히 쓰고 듣는 말이다. 어떤 의미인지는 다 알 것이니까 생략키로 하고 대화 중에 나오는 '내 코가 석자'의 유래를 살펴보자. 이 유래에 대해 관련 책자나 인터넷에서는 하나 같이 신라 때의 '방이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적고 있다. 설화 줄거리는 이렇다.

『신라 때 방이와 그 아우가 살았는데 아우는 못됐지만 부자였고, 형은 착하긴 해도 몹시 가난했다. 어느 날 방이가 아우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좀 꾸어 달라했더니 성질 고약한 아우는 누에와 곡식 종자를 '삶아서' 형에게 주었다. 이를 전혀 모르는 방이는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그 중에 단 한 마리의 누에가 살아나서 날로 자라 소만큼 커졌고, 공교롭게도 곡식 종자도 한 알만 싹을 틔워 한 자가 넘는 이삭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애써 가꾼 이삭을 물고 산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황급히 새를 쫓아 산 속 깊이 들어간 방이는 해가 저 물자 동굴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느닷없이 도깨비들이 굴 안으로 들어왔다. 방이는 급히 몸을 숨기고 도깨비들을 훔쳐보았다. 도깨비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손에든 금방망이로 땅을 두드리며 원하는 것을 말하자 즉시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이윽고 날이 밝자 도깨비들은 금방망이를 굴 속 돌 틈에 놓아두고 사라졌다. 방이는 그 금방망이를 가지고 돌아와 부자가 되었다. 욕심 많은 아우는 사연을 듣고 형이 말한 굴에 숨어 있었는데 그만 도깨비에게 들켜버렸다. 도깨비들은 아우를 지난번 금방망이의 도둑으로 알고, 벌로써 아우의 코를 길게 뽑은 후 돌려보냈다.』

이 설화는 여기서 끝이 나는데, 정작 '내 코가 석자'의 연유는 찾을 수 없다. 아마도 설화가 회자 되며 이야기가 더 부풀려 져, 그 후속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우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아우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가, 아우가 '내 코가 석자다'라고 했다."라면서 이야기가 이어져 왔다면 이 말의 어원은 한층 더 그럴듯하게 설명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내 살아야 너도 산다.'라는 속담도 있다. 얼핏 보면 '내 코가 석자'와 같은 의미로 생각 되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이는 홍만종의 문학평론지 '순오지'에 '我上之火, 兒上之火'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자의 내용 그대로는 '내 발등의 불을 꺼야, 자식 발등 불을 끈다'이다. 즉, 내가 위기에서 먼저 벗어나야 다음으로 자식을 건질 수 있다는 뜻인데, 이 속담의 유래도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더 그럴 듯하게 다듬어 진다. 살펴보자.

『어느 마을에 흉년이 들면서 굶어 죽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만 갔다. 그러는 중 어느 집에 애 딸린 엄마는 젖을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물려 보지만 젖이 나올 리 만무하자 아이를 남겨 둔 채 산으로 올랐다. 소나무껍질이라도 삶아 아이에게 먹여 볼까 해서였다. 그런데 엄마는 산 중턱 풀숲에서 죽은 꿩을 한 마리 발견한다. 꿩도 먹을 것이 없어서 죽었는지 깡말라 있었지만, 엄마는 그나마 웬 횡재냐 생각하며 새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털을 뽑고 삶아 보니 예상한 대로 살은 거의 없고 그 조차도 질겨서 아이에게 도저히 먹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질긴 고기를 혼자 씹으며, 자기도 달라고 울고불고하는 아이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가, 내 살아야 너도 산단다. 내가 먹고 젖을 만들어 주마."』

참으로 가슴 시린 속담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이 속담을 거의 쓰지 않는다.

종종 말하지만 우리말의 유래는 출처가 불분명한 것이 많다. 다만 '그럴듯한 설(?)'일지언정 유래를 통하여 우리말과 더 친숙해진다면 이 글을 쓰는 목적에 부합된다 하겠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