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 슬프다. 아주 슬프다. 왜냐하면 칼럼을 쓰는 오늘이 바로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칼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바로 태양의 후예 얘기다. 국민 드라마이자 송송커플, 구원커플이 함께하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오늘 팀 회식이 있다는 것이다. (헐!)
그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존댓말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극존칭에 가까운 예의 바른 남녀의 절제된 사랑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신선하게 느껴지고, 많은 호응을 이끌어 냈다고 생각한다.
존댓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쓰는 소통 방식이다. 주로 말을 통해 상대에게 존경과 경외심을 보이는 것을 넘어, 서로의 높고 낮음을 비교할 때 쓰인다. 사실 존댓말은 그것의 본질인 ‘상호 간 존중’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강요하고, 아래에서 위로 떠받드는 결코 예의(?) 바르지 않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스승 또는 연장자라는 이유로, 지위가 높은 이유로 심지어 남자라는 이유로 존댓말을 강요해 쓰기도 한다. 소개팅에 나온 이성에게 다짜고짜 몇 살인지 묻고(사실 나이를 묻는 것은 궁금해서가 아니라 내가 더 많아 보이니까, 그걸 관계의 우위로 어떻게든 써보겠다는 찌질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의 높고 낮음이 곧 존재가치의 高下를 나눈다고 믿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우위 겨룸이 아닌, 상호 존중을 위해 사용 되어야 하는 존댓말.
남녀 간에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고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람은 회사나 조직 내에서만 통용되어야 할 자신의 능력이 조직 밖 사적 영역에서도 유지되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특전사 중대장 출신의 여성들에게 막연한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한 유시진 대위와 대학병원에서 성공가도를 꿈꾸며 승진과 오직 커리어만을 위해 살고 있는 강모연 의사는 사실 그 어떤 상황에서 만났든 잘 될 확률보다 충돌이 날 가능성이 큰 조합이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는 군대 장교와 왠지 드세고, 너무 똑똑해 위축감을 줄 것 같은 여의사가 만난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려고 나이 등과 같은 어설픈 근거를 빌어 반말을 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강하게 의견을 주장했다면 과연 이 드라마는 16부작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송송 커플뿐 아니라, 구원 커플은 더욱 존댓말이 서로의 인연을 강력하게 이어준 케이스다. 유시진 대위와 강모연 선생은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구원커플은 군 부대 직속 상하관계에 있는 사이다. 그것도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계급이다. 어쩌면 송송 커플보다 현실적으로 더 보기 힘든 구조임에는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은 다 공감할 것이다.
서상사(진구)가 윤중위(김지원)에게 하급자라는 이유에서 오는 자격지심에 무리하게 ‘야. 너. 오빠가’ 등과 같은 호칭을 사용했다면, 상대 역시 아무리 콩깍지가 씌었어도 어느 순간 작은 다툼으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줄 말을 하고 말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은숙 작가를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항상 내가 ‘다시 보기’ 유료 결제를 하게 한다. 사실 태양의 후예에는 남녀 간의 달달한 사랑과 존중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법도 제시한다. 바로 유시진 대위와 서대영 상사라는 설정이다.
군대 장교들과 부사관들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많으며, 관계 정리가 생각보다 껄끄럽다는 것은 예비역이라면 다 알 것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같아도 군대 계급으로 위아래가 바뀌면 피차 불편할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일반 회사처럼 노력하면 승진을 통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게 아닌, 태생적으로 장교 출신과 부사관 출신은 상하관계의 계급구조가 불변한다.
이런 두 상남자의 관계가 유지되고 친해질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대화 중에도 극존칭을 쓰면서 소위 지킬 건 지키면서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계급이 높다고, 혹은 나이가 더 많다고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나 행동이 없기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었고 그런 존중이 결국 두 사람의 사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둘은 폭탄을 맞아도, 지진이 나도, 심지어 술은 3일 동안 마셔도 반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남녀관계는 일반적인 인간관계와는 다른 것이 많지만 수많은 인간관계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행복한 관계유지를 위해서는 예의와 상호존중은 필수이고, 이러한 올바른 상호 존중의 측면에서 존댓말은 분명 서로 간의 예의를 위해 쓰일 필요가 있다.
최근 연상연하 혹은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커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경제력이 전제된 관계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서로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더욱 존중과 예의를 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상대방은 당신이 연상인 것을 비롯해 자신과의 차이가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나이 많은 오빠가 자신의 의견을 잘 따라주고 늘 존중해준다면 연인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관계에 주도적인 자신의 행위와 존재에 대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애정과 사랑으로 전이될 수 있다.
반말을 해야 친해진다는 생각은 버려라, 가까울수록 말을 편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라. 모든 인간관계는 정치든 연애든 서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야 유지되고,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