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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12)] 큰짐도 번쩍, 강인한 핀란드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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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 (12)] 큰짐도 번쩍, 강인한 핀란드女

6월 17~18일, 소단퀼라 백야영화제 보고 이나리로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 북부, 원주민인 라프족(스스로는 사미족이라고 부른다)의 주 거주지인 라플란드 지역으로 들어서면 버스밖에 이동수단이 없다. 핀란드에서는 산타마을이 있는 로바니에미가 핀란드 기차 VR의 종착역이다. 이후로는 에스켈리센 라핀 린야트(Eskelisen Lapin Linjat)라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한다. 내가 움직이기로 한 로바니에미-소단퀼라-이나리, 그리고 노르웨이로 넘어가 카라쇼크-호닝스버그-노르카프로 올라가는 라인에는 하루에 버스가 한 대밖에 없다. 여름철에는 구간별로 증편이 되는 것도 같으나, 겨울에는 카라쇼크에서 유럽 최북단인 노르카프로 향하는 노선은 폐쇄된다. 이걸 놓치면 계획이 완전 다 어그러진다. 노르웨이는 핀란드와 1시간 시차가 나는데 이를 계산 못해서 버스를 놓쳐 버스터미널에서 하룻밤을 지샜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큰 짐도 척척, 강인하고 멋진 핀란드 여성

6월17일은 소단퀼라에서 열리는 백야영화제 마지막날. 드디어 로바니에미에서 소단퀼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딱 2시간 거리. 새로운 경험을 언제나 마음이 설레인다. 여기서 내 편견을 깨는 쇼킹한 경험을 했다.

일요일이라 버스역 매표대는 문을 닫았고 버스 안에서 직접 표를 구입해야했다. 나는 버스내에서 이동계산대를 들고다니며 돈을 받는 금발의 젊은 여성이 매표원이나 차장 쯤 되는 줄 알았다. 탄탄하고 늘씬한 몸매로 남색 제복이 정말 잘어울리는 미녀였다. 밖에서 짐 싣는걸 도와주던 아저씨가 버스기사인줄 알고, 그에게 내가 내릴 역에 도달하면 알려달라고 미리 얘기해놓으려 기다리는데 그는 어느샌가 사라졌고 그녀가 운전석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이동계산기기를 운전석 옆쪽에 고정시키길래 그때까지도 기기를 놓아두려 잠깐 앉아있는 줄 알았다. 근데 그녀가 버스운전사였다. 뒤쪽에 화장실까지 달리고 짐칸도 커 작은 화물 운반 구실까지 하는 1.5층 구조의 대형버스를 운전하는 것이 그 젊은 미녀일리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나의 고정관념이 뒤통수를 맞았다.

게다가 내가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해 휘청대던 24인치 캐리어 역시 양팔로 번쩍 들어 다루는 것이었다. 소단퀼라에는 시외버스정류장이 2개인데 중심가에 앞서 잘못 알고 내렸다 탈 때도 번쩍 들어 내려놨다가 다시 실어올렸다가 다음 정류장에서 또 혼자 들어 내려주는 것이었다. 버스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기 위해 훈련된 것이겠지만 그녀의 멋진 위용에 거의 넋을 잃고 말았다.

다음날인 18일에는 사미족 문화의 중심지인 이나리로 역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이나리 호텔에 묵었는데 역시 파워 넘치는 금발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2층방을 배정받았는데 3개나 되는 짐을 이고 걸고 질질 끌고 가다보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었다. 리셉션으로 다시와 엘리베이터가 없냐고 물으니, 젊은 여성이 “100년씩 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 같은 건 없으니 도와주겠다”며 역시 내 캐리어를 잡아끌고 계단을 올라 내 방 앞에 놓아줬다. 정말 놀랍고 감탄이 나와서 바쁘게 돌아서는 그녀를 불러 남대문시장에서 마련해간 작은 자수장식물이 달린 지갑을 선물로 줬다. 얼마 안하는 물건인데도 한국적 향취가 나는 공단지갑에 다들 좋아한다. 취재상 만나는 이들에게나 주려고 조금 챙겼는데 더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뭐 그리 줄 일이 있겠어, 했는데 역시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값싼 기념품 하나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친절을 되받게 된다.

핀란드에도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겠냐마는 북으로 올라갈수록 미녀가 많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생활력 강하고 적극적이고 친절하다. 북극권으로 올라오니 아무래도 호텔 이용객이 적고 한산하다보니 리셉션이 식당이 있는 곳에 같이 있다. 직원이 리셉션과 식당일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러다보니 성수기에 식사시간까지 겹치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빠 보이는데도 척척 일을 해가며 힘쓰는 일도 마다않지 않고 해결한다. 여성도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양성평등 사회의 일면을 목격한 것 같았다. 아직도 약한 여성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둘러쓰고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절어있는 일부 한국여성들이 진정한 평등을 위해 어떤 모습을 갖춰나가야 할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바탕에는 육체적 힘도 있어야한다. 남성들의 시선에 갇혀 다이어트에나 매달리고 있는 여성들이 여전히 많은 한국사회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또 한명 떠오르는 이는 마르카. 이나리는 반경 한 500m안에 모든 주요시설이 다 있는 손바닥 만한 ‘읍내’인데 시다(Siida) 박물관에서 아예 관광안내소까지 겸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마르카도 어찌나 예쁘고 웃는 얼굴로 성의를 다하는지 녹아내릴 지경이라는건 이럴 때 하는 말인가 싶다. 사실 관광안내소에 가보면 가볼 수록 하는 일이 정말 지루하고 짜증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서툰 언어로 알아들을 때까지 단순정보를 매번 설명하는 일이 진빠지고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여인들을 만나고 나니 정말 북극권까지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백야영화제의 러시아인 유학생 나탈리아

역시 여행이 큰 묘미중 하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소단퀼라 공동 빨래터에서 만난 러시아인 유학생 나탈리아도 그 중 한 명이다. 핀란드 북쪽 지역엔 워낙 호수가 많다보니 마을마다 카펫을 빨아 짜는 수동기계와 널어 말릴 수 있는 건조대가 마련된 공동 빨래터가 있다. 6월18일 소단퀼라에서 이나리로 가는 한대뿐인 버스를 기다리면서 전날 사놓은 과일로 점심을 대신하러 강가로 나갔는데, 역시 나처럼 홀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젊은 백인 여인이 있어 말을 건넸다.

템페레 대학에서 핀란드어를 전공하고 있다는 나탈리아는 백야영화제에 자원봉사를 하러왔다고 한다. 전날 끝났는데 왜 아직 안떠냤냐고 물으니 오늘밤에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사우나와 바베큐 파티가 있어서 남았다며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정말 상냥한 여학생이었다.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타르야 할로넨의 초상이 새겨진 붉은 비니를 쓰고 백야영화제의 특별게스트였던 스웨덴 여배우 해리어트 안데르손의 음영이 프린트된 공식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상세한 설명과 함께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허락해줬다.

굉장히 영리하고 배려심있고 눈치까지 빠른 아가씨였다. 이번 영화제 자원봉사자의 수를 물으니 249명이라고 정확히 답하며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데다가 영화도 실컷 볼 수 있어서 홈페이지로 신청하고 왔다고 했다. 잠은 학교 체육관 바닥에서 잤고, 밤새 내내 영화를 틀어대 일이 많아서 정말 피곤했다고는 했지만 핀란드 영화에 대해 잘 몰랐었는데 많이 알게돼서 좋았다고도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게스트로는 앨런 루돌프 감독과 그의 작품을 꼽았는데 공교롭게도 ‘루돌프 사슴코’와 동명이인이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사람’이라고 했다.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포스터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러 다니고, 수기로 쓴 영화 티켓을 나눠주는 등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하는 소박하고 인간적인 방식도 좋았다고 했다. 나도 그녀의 의견에 공감했다. 계속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라 소화도 잘 안되고 피곤에 처질 듯한데 좋은 사람들을 만나니 기분이 절로 고양된다.

나탈리아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에 대해 아는 점을 줄줄 읊는데 나는 러시아에 대해 아는게 없어 미안할 정도였다. 고향인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음식 먹어봤다며, 4년전 헬싱키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이웃에 한국인이 살았는데 자기가 러시아어 인사말인 “빠까빠까”라고 하니 그게 한국어로 ‘바보’라는 뜻이라고 가르쳐줬다고 한단다. 아마 그 한국인이 ‘바가야로’라는 일본어에서 온 단어를 그렇게 말한 듯하다고 말해줬다.


◇소단퀼라 백야영화제 마지막날

올해로 27회째를 맞는 백야영화제(Midnight Sun Film Festival, MSFF)는 이름처럼 한밤의 태양을 즐기며 영화를 보는 비경쟁 영화제다. 핀란드의 유명 감독인 카우리스마키(Kaurismäki)형제에 의해 1986년 시작됐다.

올해는 6월13~17일 열리는데 나는 프레스신청을 해놓고 마지막날에야 겨우 들러볼 수 있었다. 꼭 가고 싶어서 일정에 무리하게 밀어 넣었다. 이 하루를 오기를 숙소를 구할 수 없어서 이 도시 내 온갖 숙박시설과 관광안내소, 시 홍보실까지 온갖데다 이메일을 보내는 등 공을 있는대로 들인 터였다. 도시 수용인원에 비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드는지라 이웃도시로 가라는 말만 들었고, 결국 체육관 바닥에서 침낭도 없이 잘 각오를 하고 온 것이다.

로바니에미에서 오전 11시45분 출발하는 버스는 이곳에 오후 1시45분에 도착했고, 나는 무거운 진짜 ‘매고 지고 끌고’ 영화제 메인 오피스가 있는 키티센란타 학교(Kitisenranta School)로 급히 갔다. 영화 상영은 거의 자정까지 계속되지만 프레스 오피스는 오후 4시면 닫는다면서 뒤늦게 들이닥친 나를 황당해했다. “하루밖에 못 들러서 미안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이런 영화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의도를 미리 얘기를 해놨건만 전달받지 못한 듯했다. 이미 주요 게스트들은 모두 떠난 상태였지만, 나는 서커스라도 하듯 대형천막을 학교 운동장에 쳐놓고 영화를 트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흥이 났다. 여기까지 와서 정말 이 영화제를 놓칠 수는 없었다.

게스트들이 떠나 빈 방이 생겼으니 페스티벌 호텔인 소단퀼라 호텔에 가서 묵고 집을 두고와서 돌아보라고 알선해줘서 가보니 호텔은 내가 내린 버스터미널 바로 옆이었다. 짐을 부려놓고 건네받은 자료를 살펴보는데 오후3시에 토니 레인즈(Tony Rayns)의 마스터클래스가 마지막 특별 프로그램로 열리는 것이다. 영국인 토니 레인즈는 극동 아시아 영화 평론가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고, 한국영화에도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는 이다.

있는 힘껏 달려 다시 학교로 돌아가니 오후3시10분경. 사정사정해서 들어가니 중국 감독 로예(Lou Ye)의 ‘수주(SUZHOU)’가 상영되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스며들기 시작한 상하이를 흐르는 수주강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젊은 연인들의 죽음까지 이르는 사랑이야기다. 두터운 안내책자를 펼쳐보니 중국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서 감독에게 2년동안 연출을 금지했다는 영화다. 두터운 안내책자를 펼쳐보니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의 영향과 홍콩 감독 왕가위를 연상시키는 시적 멜랑콜리라며 온갖 수사여구를 붙인 토니 레인즈의 긴 주석이 붙어있었다. 중국어 영화를 핀란드어 자막만 덧붙여 상영하니 뭐가 뭔 말인지. 혹시나 토니 레인즈를 만나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기다렸으나, 알고보니 그도 이미 떠났고 그가 선별한 영화만 틀어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번 페스티벌의 마지막 상영작을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영화는 학교 강당, 학교 운동장의 2개의 천막, 시내 중심가에 있는 라핀수(Lapinsuu)라는 400석쯤 되는 규모 정도되는 작은 극장 등 네 곳에서 상영된다. 이 극장에서 오후 9시15분부터 (118분 이거 빼줌, 영화상영시간임) 관객들의 투표로 뽑은 가장 좋았던 작품을 재상영했는데, 올해는 스웨덴 감독 루벤 오스투룬드(Ruben Östlund)의 2011년작 ‘놀이(Play)’가 선정됐다. 점점 이민자들이 늘어나는 스웨덴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백인, 황인, 흑인 3색 인종의 꼬마들이 골고루 나오는데 도둑질을 하고 다니는 이민자 아이들의 모험을 사실을 바탕으로 그렸다.

마지막 상영인 만큼 “영화제의 전통에 따라 관객의 가장 좋아했던 영화를 재상영한다”며 프로그램 디렉터가 관계자들과 나와 인사를 했는데 관중은 남아있는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대다수인듯 했다. 꽃다발을 건네고 한참 축하인사가 건네지는 가운데 일부는 기립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스웨덴어 영화에 영어 자막만 있으니 알아서들 보라”는 말에 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는 영어로 말했는데 나름 영어 잘한다는 핀란드에서도 영어가 안되는 이들이 많은가 보다, 했다. 현지 TV를 틀어보니 거의 미국 방송이나 영화를 원어 그대로 틀어주긴 한다. 핀란드어 자막이 있지만 영어에 더 익숙해질 만한 환경이긴 하다.

영화는 아이러니한 유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 중간중간 웃음이 터져나왔다. 근데 나는 쏟아져내리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꾸벅꾸벅 졸았다. 여행이 지속되면서 피곤이 쌓여서인지 앉기만 하면 잠이 왔다. 게다가 오늘은 이동을 하고 스케줄에 맞추느라 뛰어다니고. 다리도 물먹은 솜처럼 팅팅 부어올라 정말 몸을 어디에 내던지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될까봐 꾹 참았다. 상영이 끝나자마자 부지런히 상영관을 나섰는데 대기실에서 프로그램 디렉터가 나를 보고 미소를 건넨다. 목에 걸린 프레스카드를 봤나? 인터뷰를 하고 싶었으나 정말 죽을 듯이 몰려오는 피로에 말한마디 못해보고 숙소를 향해 너털너털 걸었다. 자정이 가까워 극장문을 나서니 여전히 훤한 하늘에 인파가 바글바글하다. 하늘을 보니 멀리 붉게 약간 노을이 지는 듯한 흔적이 보인다. 호텔로 돌아와 커튼을 치고 정말 죽은 듯 잠에 빠져들었다.

2012 영화제에서는 96편의 장편과 20편의 단편, 무성영화들이 상영됐고, 2만6천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아마도 동양인이 나 딱 1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인들뿐이었다.) 영화제 오프닝으로 선정돼 포스터에 나오는 작품은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1953년작 ‘모니카의 여름’으로, 지금은 할머니가 된 주연 여배우인 해리어트 안데르손도 다녀갔단다.

‘그렘린’의 할리우드 감독 조 단테, 미국 컬트 감독 앨런 루돌프, 핀란드 출신의 유일한 할리우드 스타인 타이나 엘그(Taina Elg)을 비롯해 유럽 출신의 유명 감독, 유명 뮤지션들과 배우들이 방문했고 토니 레인즈 등이 강연을 가졌다.

백야영화제 방문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라오케 스크리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유명 뮤지션을 초청해 각종 악기연주를 비롯해 메들리 등 30여곡의 노래를 연속으로 틀고 밤새도록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란다. 영화계 인사들과 최신 트렌드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교제시간이기도 하다고.

올해는 맛보기로 끝났지만 다음번에는 꼭 제대로 백야영화제를 즐겨보고 싶다는 소망이다. 다시 올수 있겠지.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