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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28)] 별천지, 이곳은 ‘신들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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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리 북유럽80일(28)] 별천지, 이곳은 ‘신들의 세상’

7월4일, 루푸튼제도, 카벨바그와 보르그

남들은 ‘밥이 보약’이라고 하는데 나에겐 ‘잠이 보약’이다.
역시 날씨가 좌우하는 면도 많은 것 같다. 일어나보니 카벨바그 호스텔의 천사 아가씨가 말한대로 섭씨 15도로 화창하게 갰다. 근육통도 사라졌다. 저 짐더미에 덜 시달리려면 차 렌트를 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용도 비용이지만, 낯선 길을 찾아 운전하느라 신경을 쓰는 것보다는 나에게는 이런 방법이 훨씬 낫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병행되는 것.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돼 어제 소녀가 가르쳐준대로 타운과 박물관이 몰려있는 스토르보간 지역으로 슬슬 걸어갔다. 소녀의 말에 따르면 타운까지는 5분, 스토르보간까지는 15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해서 박물관들이 열리는 오전 10시께 도착에 맞춰서 나갔다.

그러나 이게 웬걸, 가면서 타운 중심가의 마켓에서 사이다 하나 사먹고, 거주지 지역 주택들을 구경하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면서 가긴 했지만 족히 한시간은 걸린 듯하다. 호닝스보그에서 폴란드 아주머니가 40분 걸린다는 길을 나는 훨씬 짧게 도달했던 기억이 있는데, 나이가 느끼는 거리가 그리 다른가. ㅎㅎ

‘천상의 섬’ 루푸튼에 사는 천사에게는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는 지도 모른다. 그녀라면 날아서 갔을 길을 걸어가다 보니 이리 오래 걸리는 걸까, 좀 아팠던 터라 그랬는지 모든 일의 속도가 많이 느려졌다. 그러나 뭐 서두를 이유는 하나 없지 않나. 이곳의 아름다움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사람’이다. 사람들이 보내는 푸근한 미소와 친절에 그동안 상했던 마음이 치유돼 가는 듯싶다. 아주 작은 마을, 조용한 주택가의 고즈넉함에 반해 이리저리 걷다보니 꼬불꼬불한 골목사이에서 잠시 방향을 잃었다. 정원에서 일을 하는 노인에게 길을 물어볼라치면 자기가 하는 일을 제치고 길가까지 나와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이는 곳까지 데려가 알려준다. 그 배려심에 미안할 정도로 고맙다. 이 싱그러운 웃음이 이곳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서서히 걸어가면서 ‘회의하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 자체로 그저 풍요로운 삶을 즐기며 그 자체로 그저 충만한 영혼. 하지만 잠시 스쳐가는 여행객 주제에 이들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하는 것은 오독, 더 나아가 모욕일는지도 모른다. 그저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때를 기억하기 위해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 그 짧은 한때나마를 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영상 15도라는데도 고깔모자 모양으로 뾰족뾰족하게 치솟아오른 산꼭대기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있다. 그러니 춥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여름이라는데도 이리 춥게 느껴지는 것만이 내가 얼마나 북쪽으로 올라와있는가를 잠시 잠시 깨닫게 해준다. 계속 이리 추우니 살기엔 좀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잠깐했다. 날씨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게, 혼자 여행할때 추울때만큼은 외로움이 찾아드는 것이 왜 사람들이 기분을 ‘싸늘하다’는 등의 온도에 비유하는 지 알 것 같다.
◇그저 스쳐지나기 아까운 스토르보간

천사소녀의 말에 따라 지역의 크기를 가늠한 것이 오산이었다. 두어시간에 걸쳐 뒷산을 올라볼 것을 권했는데, 가려면 신발과 옷차림을 단단히 해야한다고 해서 몸이 좋지 않아 포기하고 다음날인 7월4일 이동전에 스토르보간에 들러볼 예정이었다.

하루 몇대 다니지 않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면서 이동한다는 것은 여전히 많은 신경을 쓰이게 한다. 오늘은 오후 1시55분 카벨바그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오후 3시 보르그에 있는 바이킹 박물관에 들렀다가 루푸텐제도의 남쪽 끝인 오로 이동할 것이다. 막상 가보니 스토르보간은 하루를 꼬박 보내도 될 만큼 볼거리가 많은 지대라, 시간에 맞춰야하는 것이 아쉬움을 더했다. 갖가지 볼거리들을 해변가 지대 한 곳을 빼곡히 채워 잘 꾸며 놓아 꼭 한번 들를만 하다.

19세기 어업의 부흥기를 이뤘던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잘 보존된 지주의 집부터 시작해 해변을 따라 쭉 들어차있는 목조건물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꽤 시간을 잡아먹는다. 옛 어부들이 대기하며 머물렀던 로르부(어부용 캐빈)의 내부와 배를 보관해둔 창고 등을 둘러보다가, 거주지역으로 접어들었는데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 등을 올려놓은 창가를 구경하면서 남들 사는 모습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말 목장의 말들도 구경거리다.

여행서적 론리플래닛에 따르면 이곳의 경치와 ‘북극 태양’의 독특한 빛때문에 모여들었던 예술가들 덕분에 갤러리들도 많다고 한다. 전망대를 찾아 걷다가 말목장과 가옥들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루푸텐수족관과 Espolin 갤러리까지 볼 시간은 커녕, 다시 숙소로 돌아가 짐 찾아와 버스탈 시간도 빠듯하다. 역시 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야한다.

낮 12시30분께 레스토랑이 있는 로르부호텔에 들어가니 아주 착해보이는 인상의 아가씨가 마침 리셉션에 있어 “시간이 별로 없는데 여기서 점심을 먹을 테니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노르웨이 어디서나 그렇지만 연어와 계란을 얹은 오픈샌드위치 가격은 비쌌고, 별 내용물과 맛도 없다. 나는 1시에 도착할 택시를 타기위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허겁지겁 먹었다.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동네라서 걷는데는 시간이 좀 걸릴지 몰라도 차로는 금방이다. 근데 대형택시 모양새와 스킨헤드 택시기사를 보니 7월2일 후르티루튼에서 내려 탔던 그 택시임이 틀림이 없다. 내가 지도위에 위치를 찍어주며 카벨바그 호스텔에 들러 짐을 찾아 버스정류소로 데려다주면 된다고 했는데, 카벨바그 호텔 앞에 떡 선다. 그러면서 “니가 호텔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성질을 낸다. 어쩐지 타운 중심가로 마구 구불구불한 길을 가길래 좀 이상하다싶었는데 짧은 영어로 따지고 어쩌고 할일이 아니다. 나중에 영수증을 받아보니 분명 같은 택시다. 내가 분명 학교건물 호스텔이라고 말하고, 거기 머무르는 것을 알고 있을텐데도 골탕을 먹인 것이다.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어느나라나 택시기사들의 횡포는 유명하니 루푸튼의 인상을 망치지는 않기로 한다. 꼭 인종차별주의자일지도 모르는 스킨헤드 아저씨를 자극해 일정에 차질을 빚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조바심 떠는 성격은 고칠 수가 없어서 버스 놓칠까봐 마음 졸이며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천사소녀가 성심껏 프린트해준 버스표에 따라 카벨바그 중심가에서 오후 1시55분 출발해 보르그에 오후 3시 도착하는 버스다. 버스는 스케줄보다 조금씩 늦게 오기 마련인데 10여분씩 지체되는 것은 보통이니 한 40여분도 넘게 거기서 죽치고 있었던 것 같다. 스웨덴인 부부가 같이 기다리고 있다가 남편이 보다못해 내 짐을 버스옆구리 짐칸에 올려준다. 처음 스웨덴인이라고 알고본 이들 부부는 왠지 ‘문화적’ 느낌이 확 드는 보다 도회적이도 깔끔한 생김새다.


◇바이킹 최대유적지 박물관의 위용

보르그에서 내리는 것은 달랑 나 하나다. 스웨덴인 부부도 오까지 간다고 하는데, 막상 이곳에 내리니 길가 언덕에 바이킹박물관 딱 하나 서있지 휑하니 아무것도 없다. 이 박물관에 갈 생각이 아니라면 내릴 일이 없을 곳이다.

중세 바이킹의 대형유적이 발견된 장소로 제대로 둘러보려면 족히 5㎞는 걸어야한다. 입구에 있는 단층짜리 건물은 안내소에 불과하고 밖으로 나서면 복원해놓은 갖가지 바이킹 건축물들과 배를 직접 타고 저어볼 수도 있다.

6월1일~8월15일에만 오후 7시까지 여는데 오에 도착하려면 남은 버스는 두대. 버스시간 맞추는 것이 가장 골치아프다. 오후 4시55분 보르그에서 출발해 5시15분에서 레크네스에서 갈아타 6시50분에 오에 도착하는 버스를 탈까 했는데, 막상 내려 다 둘러보려니 넓이가 어마어마했다. 결국 오후 9시에 레크네스에서 갈아타고 오에 10시45분 도착하는 마지막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바이킹시대 족장의 딸 러브스토리와 아이슬란드로의 이주 등 시대상을 담은 필름 ‘보르그의 꿈’과 첨단레이저 기기로 언어를 선택해 들을 수 있는 시청각물을 보고 나서 밖으로 나서면 무려 83m에 달하는 바이킹 족장의 집이 발견된 곳의 표시석과 함께 이를 복원해놓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일종의 ‘민속촌’인데 역사적 의미도 큰 곳이다. 나무로 만든 기와까지 올렸는데, 안에서 직원들이 그 시대 복장을 하고 천을 짜는 모습 등 갖가지 퍼포먼스를 하고 있어 재밌다. 이외에도 대형 묘지가 발견된 유적지와 함께 당시 시대상을 복원해놓은 돼지우리, 양파정원 등등 언덕길을 쭉 따라가다보면 1000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성수기인 6월15일~8월15일에만 한시적으로 대장간에서 당시 방식으로 칼을 벼리는 것도 지켜 볼 수 있다. 강변에 도달하면 역시 이 기간에만 오후 1시~5시 매시 정각 하루 다섯번 바이킹 배를 띄우는데 압권은 직접 다른 관광객들과 바이킹 배를 저어 강으로 나가보는 것이다. 64명이 젓고 최대 100명까지 탈 수 있다는 크기의 배다. 800년대식의 배로 바이킹게임 코너도 있어 활쏘기, 도끼 던지기 등도 직접 해볼 수 있다. ‘폭풍의 언덕’ 저리가라 바람이 몹시 불어 추웠지만 그래도 날씨가 허락해줘 이 모든 걸 다 즐길 수 있었다.

나는 민들레와 달맞이꽃이 무리져 노란 별들처럼 빛나는 언덕길을 따라 한적한 지대를 홀로 걸어다녀 봤다. 기독교 유입 후 생긴 무덤 발굴지 곁에 현대식 교회와 역시 묘지가 생겼다. 바람이 몹시 불지만 울창한 침엽수림과 발이 푹푹 빠지는 풀들로 뒤덮인 한적한 언덕 위의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한없이 상쾌하다. 유채꽃이 뒤덮인듯 노란꽃이 무성한 언덕은 민들레와 달맞이꽃들이 채웠다.

바이킹박물관의 입장료는 어른 140크로네, 어린이 100크로네. 아이를 데리고온 커플들도 종종 보였는데 여기까지 오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여기 물가로는 ‘뽕을 뺄 정도’로 즐길거리들이 많다. 매년 8월마다 바이킹 페스티벌도 열린다는데 올해는 8~12일. 사진을 얼마나 찍어댔는지 디지털카메라에 이어 스마트폰의 배터리까지 다 닳아버렸다.

오후 7시가 되기도 훨씬 전부터 문을 닫아 걸 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드문드문 인가가 멀리 보이는 길에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은 황량한 기분이 든다. 다행히 버스가 서는 곳 옆에 패스트푸드점이 하나 있어,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정크푸드 햄버거라고 파는데도 노르웨이 시골정류장의 것은 질이 훨씬 낫다. 여기 사람들은 이거 먹는데도 칼과 나이프를 쓴다는 것. 이들이 볼 때는 야만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난 그냥 냅킨으로 집어 먹었다.

그러고보니 6월7일에 집을 떠나왔으니 여행 한 달이 다 되간다. 짐을 싸고 이동을 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종종 위치 감각이 마비된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무슨 생각으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여기 왔는지도 깜빡깜빡하게 된다. 게다가 이런곳에까지 햄버거를 파는 패스트푸드점이 하나 있으니 각국의 지역색이 점점 사라진다는 아쉬움마저 든다.

나에게는 그저 이국인들의 얼굴일뿐이고, 하나같이들 생활영어들은 하니 이곳이 노르웨이라는 것도 잊고 풍요로운 자연에 둘러싸여있다는 것에 무의식적인 감탄만 반복하고 있을 때도 있다. 루푸튼의 아름다움도 아마 이곳으로 바로 왔더라면 깊은 감동으로 마음을 울렸을테지만 이미 노르웨이의 자연에 좀 무뎌졌다고나 할까. 그래도 버스를 타고 남쪽을 향해 가는 길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루푸튼제도도 한국땅에서의 ‘섬’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는데 E10도로로 연결 연결된 섬들의 제각기 뽐내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일일이 따져가며 돌아보려면 며칠이 걸려도 부족하다. 대체 ‘신들의 영역’이라고 불릴 만큼 버릴 곳이 하나 없다. 어디 하나 빠진 곳 없이 전후좌우 위아래 어디를 둘러봐도 자연의 묘미들로 빼곡, 그득하다. 아무데나 사진기를 들이대도 그냥 ‘작품’이 된다.

레크네스에서 오로 가는 막차, 전망이 가장 좋은 제일 앞줄은 핸디캡이 앉는 자리로 지정돼있는데, 버스기사는 핸디캡이 없다며 제일 앞자리에 앉도록 배려해줬다. 가도 가도 감탄할 거리는 끝이 없다. 구불구불 지형을 따라난 가로대는 지지 않는 해에 도로 한가운데 뱀처럼 끝없이 긴 검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확실히 남으로 내려올수록 푸른빛이 더 많아지고 나무들도 불쑥불쑥 큰 키를 자랑한다. 바위산 꼭대기 아래로 눈길들이 빗장 긋듯 나있고 자연적으로 한곳에만 왕창 몰려 자라 섬처럼 보이는 침엽수림이 나타난다. 그저 다 자연이 만든 것들이다. 양을 키우는 목장도 보인다. 오로 다가갈수록 길옆으로 집채만한 바위들이 포진해있는데 버스기사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간다. 밖은 춥지만 버스안은 햇빛으로 짱짱하고 해가 지지 않으니 관광도 끝이 없다. 알아서 눈을 좀 쉬게 해줘야한다. 경치에 감탄 또 감탄하면 사진기 버튼을 눌러대던 것도 지쳐서 늘어졌다.

오는 정말 ‘땅끝마을’이었다. 점점 어부들의 오두막인 로르부가 옹기종기 있는 지역들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한다. 장난감집처럼 뾰족지붕을 한 단층의 작은 집들이다. 버스기사에게 아직도 도착 안 한 것이냐며 몇 번이나 물어보며 정거장들을 지났다.

오후 11시가 됐나, 드디어 작은 굴 하나를 지나는가 싶더니 동네 공터 같은 곳이 나오고 몇 안 되는 승객들이 내린다. 그만큼 외진 곳이다. 이 공터가 주차장이고 오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짐을 지거나 끌고 숲속에 난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잔뜩 짐을 이고 그냥 주저앉아버릴 것 같아, 무조건 앞서가는 유러피언 부부를 불러세워 “어디로 가느냐”고 했더니 이탈리아에서 온 잘생긴 중년의 남편이 “아마 같은 곳으로 가는 것 같다, 노르웨이에 여러 번 왔지만 이곳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들을 쫓아 열심히 숙소인 건어물박물관을 겸한 로르부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도 ‘죽음의 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집들이 한무더기를 이루고 있는 로르부중에서도 가장 끝 쪽, 나무다리를 건너서 흙길을 따라올라가 있는 박물관 건물 꼭대기층이 도미터리인데, 내 방이 있는 3층에 1층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구름다리를 내놨다. 건어물박물관이라는 이름답게 바로 옆쪽에는 대구를 한가득 말리는 창고까지 있다. 그야말로 냄새까지 ‘죽음’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작은 마을 하나가 짠내와 비린내에 절어있다. 냄새 때문에 생선을 먹지 않는 나에게는 지옥 길 같았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여행자에게는 오늘 짐을 풀고 잠들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씩씩하게 짐을 이끌고 가다가도 몇 번을 내팽겨치다가 나눠서 옮기다가 하면서 3층에 이르는 계단을 올라 방을 찾아들어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잤다.

대중문화평론가 EriKim0214@gmail.com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