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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은 자연의 빛 담은 한국의 색이자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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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염색은 자연의 빛 담은 한국의 색이자 멋”

산과 들 사랑하며 自然에서 염색 원료 얻어


천연염색 10년…이젠 옆 사람과 재능 나눌 것


“죽으면 이내 썩을 몸, 뭘 그리 아끼나?”



▲ /사진=문승연 기자

■ 천연 염색전 여는 박수주 산귀래별서 회장


오는 8월 15일까지 팔당 두물머리 세미원에서 열리고 있는 ‘박수주 천연염색전’은 참 흥미로운 전시다. 연꽃과 섬유의 만남이란 점에서도 그렇고, 전시의 주인공이 아무런 인공미를 가하지 않은 천연재료 같은 여인이어서 더욱 그렇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야생화의 천국 ‘산귀래 별서 식물원’을 운영했던 박수주(66) 회장에게는 도무지 도회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들꽃 여인’이나 ‘시골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참 잘 어울리는 그다.

손마디가 굵어진 것을 보면 꽃과 식물을 가꾸느라 박 회장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죽으면 곧 썩을 몸인데, 이 한 몸 아껴서 무엇하리’라며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바지런히 몸을 움직인다는 게 주변 사람의 얘기다. 자연에서 얻은 천연염료로 섬유를 아름답게 물 들여 ‘천연염색전’을 열고 있는 박수주 회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천연염색전을 개최하고 계신데….


“비전문가의 천연염색전이라 한편으론 쑥스럽고, 한편으론 감격스러워요. 시골생활을 하면서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를 가지고 염색을 해보니까 너무나 아름다운 색상이 나오는 거예요. 하도 신기해서 우리 주변의 풀잎이나 나뭇잎 등 별의별 풀로 염색을 다해보았지요. 어떤 풀은 열 번 이상 물들여야 색이 나오고, 어떤 풀은 쉽게 색이 나와요. 산귀래 별서 식물원에서 나오는 야생화를 비롯해 물푸레, 대나무, 참나무, 감나무 등의 잎이나 석류 등을 가지고 염색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박 회장은 한 겨울에 과일로 염색을 하느라 귀한 석류를 몇 상자씩 먹기도 했다고 한다. 석류는 빨간 알이 아닌 껍데기만 염색에 필요해서다. 이제는 수많은 경험과학을 통해서 염색이 잘 드는 재료만 사용한다고.

-화학염색과 천연염색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겉으로 보기엔 화학염색이 더 좋아보이지요. 화학염색은 천연염색에 비해 일단 색깔이 곱게 물들고 비용이 싸거든요. 그러나 천연염색은 일일이 손으로 염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염색할 때마다 색깔이 약간씩 다르고 비용도 훨씬 비싸요. 똑같은 조건이라면 천연염색은 화학염색보다 6배 이상 가격이 비쌉니다. 그러나 천연염색이 화학염색보다 좋은 이유는 자연에서 나온 천연염료이기 때문에 우리 몸에 좋다는 것입니다. 제 손자가 도시에 살면서 아토피가 심했는데, 제가 만들어준 천연염색 옷을 입고 가렵지 않다고 해요. 이게 바로 자연에서 얻는 천연염색의 힘이 아닐까요.”

-천연염색이 가능한 재료는?


“우리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대부분 가능해요. 감, 생쪽, 밤송이, 밤잎, 연, 단풍나무, 꼭두서니, 신나무 등의 식물과 가끔은 곤충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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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천연염색을 하셨는지요?

“염색을 시작한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양평 목왕리로 이사와 산귀래 별서 식물원을 조성하면서 천연염색에 관심을 가졌지요. 천연염색으로 제가 원하는 색깔이 안 나올 경우에는 다른 재료에 집어넣고, 그래도 안 나오면 다시 집어넣곤 했어요. 심지어는 열 번 정도 되풀이했는데, 그런 반복 과정에서 색이 곱고 더 깊어져요. 천연염색은 화학염색과는 달라서 똑같은 색상을 만들기가 어려워요. 같은 염액을 만들어서 실크, 면, 마, 린넨에 넣어보면 색상이 모두 제각각이에요. 물론 쪽물이나 감물은 어느 정도 일정한 색상이 나오지만, 대부분의 재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 이게 오히려 천연염색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천연염색을 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나무잎으로 천연염색을 하는 과정을 설명할게요.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에 어느 때나 이용할 수 있지만 특히 푸른 잎들이 적은 겨울철에 이용하면 아주 요긴합니다. 왕대, 솜대, 시누대 무엇이나 다 좋으나 솜대 중에서도 잎이 촘촘한 빗자루 대를 쓰면 더 좋아요. 잎을 구하기가 마땅치 않으면 한약 건재상에서 대나무의 껍질을 긁어낸 죽여(竹茹)를 구해 써도 됩니다. 대나무 잎이나 죽여를 삶으면 물 위에 연한 기름이 뜨는데, 이는 얼룩의 원인이 되므로 걷어내고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박 회장에 따르면 대나무로 천연염색을 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대나무잎 10㎏, 삭산동 수용액(물 3ℓ에 0.5g을 녹인 것) 20ℓ를 준비한다. 그 다음에 ①대나무 잎을 솥에 가득 채운 뒤 물을 잘박하게 붓고 1시간동안 삶아 염료를 우려내고 40분정도 지난 뒤에 대나무 잎을 한번 뒤집어 준다. ②우려낸 염료를 5등분하여 다섯 차례로 나누어 염색의 원액으로 사용한다. ③젖은 천을 넣어서 30분간 고루 뒤적인 다음 건져내어 삭산동 수용액에 20분간 매염처리한다. ④매염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꼭 짠 다음 다시 염액에 30분간 고루 뒤적여가며 침염과 매염을 네 번 더 반복한다. ⑤염료 추출액의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염색 횟수를 더 늘리면 짙은 색을 얻을 수가 있다. ⑥명주에는 누른빛이 도는 연두색이, 면에서는 연한 노란색이 든다.

-천연염색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천연염색은 아주 편안해요. 화학염색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피곤한 색인데 반해 천연염색은 편안하고 색 자체에 품위가 있어요. 자연에서 나온 천연재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예술품이 빛나듯이 천연염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천연염색은 장점이 많지만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하기에 확산하는데 한계가 있지는 않은지요?


“여가수 한 분이 감 염색을 대대적으로 해 성공한 분이 있어요. 감이라는 딱 한 가지 재료만 사용해 거의 공장수준으로 하고 있지요. 그러나 천연염색은 손으로 일일이 해야 하기 때문에 산업화 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고부가 가치 문화산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천연염색으로 만든 재료로 옷이나 생활용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 인사동에 몇 군데 있지만 잔손이 많이 가는 바람에 고가일 수밖에 없어요.”



-산귀래 별서 식물원 운영은 접었나요?


“산귀래 별서 식물원은 1996년 개장해 최근까지 운영했어요. 일반 식물원과는 차별되도록 복수초, 노루귀, 구절초, 금낭화, 개불알꽃, 피나물, 매발톱 등 야생화만을 심었어요. 그런데 우리 야생화들은 꽃이 지면 잡초처럼 변하게 되고, 다음해가 될 때까지 휑하게 되니 식물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힘들었어요. 이게 바로 자연과 사람의 힘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연에서는 한 야생화가 지면, 그 자리에 다른 야생화가 올라와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면 사람이 가꾸는 야생화는 한계가 있어요. 물론 지금도 식물원 자리에 야생화들이 피어나긴 하지만, 사람의 뜻대로 자연을 가꾸기가 힘들다는 교훈을 배웠지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매발톱은 하늘매발톱, 노란매발톱, 연분홍매발톱, 흰매발톱이 있다. 그런데 매발톱은 꽃잎 색이 다르지만 관이 같은 색이기 때문에 몇 년 지나면 벌들의 꽃가루 수정에 의해 원종(原種)은 모두 사라지고 한 종류만 남는다고 박 회장은 말한다.


“식물원을 한창 가꿀 때에는 우리 순수 야생화만 700~800종이 있었어요. 2만평의 대지에 울긋불긋한 야생화가 필 때는 대단히 아름다웠지요. 하지만 개인이 식물원을 운영하기에는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지금은 자연체험학습장으로 바꾸어 운영하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 들꽃 야생화에 대한 미련이 남아 야생화를 가꾸고 있어요.”


-야생화에 빠진 계기가 있는지요?



“식물학자 이창복 박사를 따라 자생식물 탐방모임에 나가곤 했어요. 산과 들을 누비며 야생화를 볼 때마다 제 가슴이 뛰었고, 그저 야생화가 좋아서 하나둘 심다보니 식물원 수준이 되었지요. 정부기관에서도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다’는 구호만 외치지 말고 개인이 운영하는 식물원이라도 돈벌이 수단이 아닌 교육목적이라면 재정지원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꽃과 바람과 별을 보며 무엇을 배우셨나요?



“옛 선인들이 왜 자연이 좋다고 하는지 온 몸으로 느꼈지요. 이젠 서울에 가면 하룻밤도 못자고 내려옵니다. 사람이 모이는 서울은 일단 시끄럽고 공기가 탁하고 마음이 혼란스럽고…. 캠핑 오는 사람들이 공기가 좋아서 시골에 온다고 하는 말이 실감이 나더라구요. 좀 더 근사하게 표현하면 봄에는 꽃이 피어 좋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 시원해서 좋고, 가을에는 봄‧여름에 가꾼 곡식들이 열매를 맺어 좋아요. 이처럼 시골은 매일 매일 자연의 색이 다르니 싫증이 나지 않지요.”



박수주 회장은 사실 유명 수필가다. 산과 들과 바람을 노래해 온 그다. 자신이 좋아하는 수필 분야에 ‘산귀래 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중견 수필가와 신인 수필가에게 상을 시상한다. 좋은 글 많이 쓰라고 수필인의 한 사람으로서 격려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제 꿈이 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 포기했어요. 그러다 보리수로 와인도 만들고, 천연염색도 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자연을 사랑하는 이웃들과 제가 가진 작은 재능을 나누고 싶어요.”


들꽃 같은 사람 박수주 회장. 그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해방 다음해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으며 고생의 문턱을 넘어왔지만, 피란동안 지긋지긋 했을 법도 한 시골생활을 오히려 즐기고 있다. 마흔 살 이전에 목왕리 일대에 땅을 마련, 야생화를 가꾸더니 지금은 와인, 도자기, 천연염색에 이어 바느질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그의 배움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요양원에 가기까지는 한시도 쉬지 않고 자연을 벗 삼아 일을 하겠다는 다부진 다짐에 해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노정용 기자/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