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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민의 홀가분한 세상읽기(4)]-니치버스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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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민의 홀가분한 세상읽기(4)]-니치버스터의 시대

안병민의 홀가분한 세상읽기(4)


니치버스터의 시대


▲ 안병민 ㈜휴넷 이사 (www.fb.com/minoppa)지금껏 경영과 마케팅 현장에서 인지도와 선호도는 거의 같은 의미로 쓰였다. 물론 두 단어의 의미가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지도가 높으면 선호도 또한 높게 나타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유명해지기 위한 기업들의 처절한 몸부림에는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젠 이러한 공식을 과감하게 던져 버려야 한다고, 『니치』의 저자 제임스 하킨은 이야기한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도 과테말라 커피와 자바산 커피, 그리고 케냐 블렌드가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어하는 요즘이다. 대중의 입맛을 겨냥한 평균적인 커피는 이제 그 수명이 다했다. 모든 것을 다하려는,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기업과 조직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대상이 되어 쇠락해버린다. 인지도와 선호도가 따로 노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틈새라는 의미의 ‘니치’는 그 동안 주류시장에 진입하지 못 한 기업이나 브랜드가 절박한 생존 차원에서 뚫고 들어가야 할, 소극적 차원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하킨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제 세상은 기업과 조직 사회 모든 분야가 니치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했다고 지적한다. 인지도와 선호도를 동일한 가치로 바라보았던 기존의 중간 대중들이 사라지고 세상은 ‘획일적인 대중사회’에서 ‘잡식성 대중사회’로 변모했기 때문이라는 것.

시장을 향한 융단 폭격식 광고를 통해 모두를 만족시키려 했던 갭(Gap)의 매출이 곤두박질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이․성별․교육․수입․인종을 중심으로 대중의 평균적 기호를 파악하는 통계조사가 잘 맞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인이 저마다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원하고 만물이 제각각 자신만의 틈새를 지니는 낯설고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니치의 사례 또한 적지 않다. 그 동안 변방 문화였던 한류가 각광받고 있다.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을 열광케 한 어느 인터넷방송 진행자는 한 때나마 정치가로의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거대 정당에 대한 불신과 피로 증가에 따른 제3의 정치 세력에 대한 기대감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중앙집중식의 매스미디어가 아닌, 개인의 적극적인 참여로 자리 잡은 분산형 미디어인 SNS도 사실은 니치의 대표적 사례다.

『니치』에는 기업 경영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해 차별화에 성공한 사례로 애플, 스타벅스가 나온다. 이른바 ‘비주류 마케팅’으로 승부해 1인자를 밀어내고 시장을 장악한 그들. ‘다르게 생각하라’는 사훈과 수백만 규모의 열광적인 팬 집단을 거느린 컴퓨터 회사 애플이 대표적인 예다. 애플의 제품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제품은 아이폰이지만, 지난 2010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 중 애플이 장악한 것은 불과 3%다. 그러나 이전 해에 2500만 대를 팔아 치워 전체 휴대전화 산업에서 가장 알짜배기 수익을 남겼다.

스타벅스는 천편일률적인 상품이 될 위험에 처했던 커피를, 맛으로 가치를 평가받는 상품으로 변모시켰다. 제대로 된 커피의 맛에 기꺼이 지갑을 열려는 열렬한 커피 애호가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인스턴트 커피 판매가 죽을 쑤고 주류 커피 시장이 계속 하향세를 타는 동안 스타벅스를 선두로 한 커피 전문점은 시장의 6%를 차지하면서 커피 원두 판매를 연간 30%씩 성장시켰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블록버스터’가 아닌 ‘니치버스터’다. 결국 관건은 차별화! 사람들이 다른 어디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나만의 뭔가를 가져야 한다는 것. 나만의 틈새를 보호하기 위해 이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그리고 그 니치를 같이 지켜 줄 충성스러운 고객들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입소문. 관건은 역시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지속적인 혁신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니치』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