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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4)]-폭풍우 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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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4)]-폭풍우 치는 밤에

[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4)]




폭풍우 치는 밤에 



태풍으로 정전이 되니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 나는 마당과 마주 한 침실로 들어가 누웠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 처마 끝에서 땅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추락하는 빗소리, 우거진 정원수 잎사귀들을 두드리는 소리, 그 아래 잡초들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 실로 각양각색의 빗소리들이 들린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꿀꺽 꿀꺽 들이마시다 지친 정원이 토해낸 빗물들이 집 앞 비탈길을 개천삼아 흐르는 소리까지 더해진다.

여기에 나뭇가지를 울리는 바람소리, 바람의 심술에 찢긴 이파리들이 창문에 내동댕이 쳐지는 소리, 놀란 새들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져 마치 비의 변주곡 같다.

이렇게 되면 어둠 속에서 오직 청각에만 의존해 곡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때론 거칠고 자유로운, 때론 섬세하고 아름다운 음악회는 다양한 타악기의 향연이다. 조바꿈과 변주는 바람의 몫이다.

번쩍이는 번개는 신의 지휘봉은 아닐른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듣다보니 문득 쇼팽의 「낙숫물」이 떠오른다. 죠르쥬 상드와 사랑에 빠진 쇼팽이 남편과 아이를 버린 죠르쥬 상드와 떠난 사랑의 도피처인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에서 작곡한 전주곡(op.28-15)이다.
격렬한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두 사람을 모델로 했던 영화를 추억하게 한다.

「아, 정전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잘 만들어진 음악이나 영상도 근사하지만, 자연이 연주하는 음악이 때론 그 이상일 때가 있다.

요즈음 갖가지 소음들에 시달리다보니 갑작스런 폭풍우가 가져다 준 뜻밖의 음악 선물이 감사하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다케미쓰 토오루의 「소리, 침묵의 또 다른 이름」이란 표현처럼 자연의 소리에는 태초의 침묵이 뒤따른다. 포르테시모에도 피아노시모에도 그리고 불협화음이나 장식 음표, 심지어 트릴에조차 풍요로운 침묵이 함께한다.

나는 어느 순간엔가 잠이 들었고, 다시 눈을 떴다.

태풍은 지나가고, 창세기의 그날 같은 빛들이 창가에 가득 차 있다. 유리문 안의 스크린에는 햇살이 일렁이고, 정원수의 흔들림은 그림자가 되어 시트 위에 어른거리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폭풍우 속을 헤매다 겨우 해변에 안착한 표착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혼다 히사시(시인)



번역: 신현정(가나가와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