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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48)] 제5장 섹스와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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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48)] 제5장 섹스와 道

(48)

그런데 아무리 약속하지 않은 산행이라도 그렇지 매정하게 혼자 앞서 가는 그가 정말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 같아서 여간 실망스럽지가 않았다. 평소에 수련원에 있을 때도 그랬었다. 별로 말이 없는데다가 말을 걸어도 무표정하게 대답해서 처음에는 썩 정이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그런 얼굴과 적당한 키에 왜소한 체격에다 여느 촌부 같은 허름한 옷차림이어서 별로였다.
그런데 오래 지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따뜻한 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말없는 가운데 타인을 배려하는 깊은 속내를 곳곳에서 느끼게 했다. 그리고 언행 하나하나가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것인데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흔들림이 없이 한결같이 단아한 자세여서 범접하기 어려운 듯해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점점 그에게 끌려들었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려하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의 눈빛을 의식해야 했다. 어떤 때는 혼을 흡수해버릴 듯 지극히 고요한 빛이어서 말을 함부로 건네기도 어려웠었다.

사실 예사로운 마음으로 대하면 대수롭지 않은데도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혹여 불결하게 생각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길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그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경망된 여자라 여기면 어쩌나 싶어 많이도 망설였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이 서로의 마음이 통할만한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여태 저어해서 망설이던 마음을 떨쳐내고 용기를 내 무작정 그를 따라나섰는데 산 입구에서부터 실망했다.

수련원을 출발하면서부터 그는 동행을 반긴다거나 싫다거나 내색하지 않았으므로 무언의 동의로 믿었었다. 그런데 정작 산을 오르면서 내빼듯 혼자 가는 것이 아닌가! 실로 자존심도 상하고 섭섭한 감정을 누를 수 없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되돌아가고도 싶었었다.

하지만 오기가 치솟았다. 혼자 가고 싶으면 먼저 가고, 나는 나대로 이 산을 기필코 오르겠다! 하고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는 가파른 언덕도 죽을힘을 다해서 기다시피 한 발 한 발 내디뎌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멀찍이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 여겼던 그가 뜻밖에 기다리고 서있었던 것이다. 슬픔도 오기도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저 그가 반갑고 고맙기만 했다.
“저 위 백운데 고개를 넘을 수 있겠소?”

한성민은 그녀의 서운한 어투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땀을 식히고 휴식을 충분히 취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가 구름이 맞닿아 흐르는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자신이 있어요! 축지법만 안 쓰신다면.........?”

최서영은 또 한 번 서운했던 감정을 내보였다.

“.........! 알겠소. 그럼 지금부터는 내가 뒤를 따를 테니까 앞서도록 해요.”

“정말이에요?” 걸음이 늦다고 뭐라시면 안 되어요?”

“알겠소. 여기서부터 길이 험하니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서 천천히 걸도록 해요.”

한성민이 걱정해주자 그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처음으로 보여준 그의 관심이었다. 작은 개울의 울퉁불퉁한 돌 더미를 별 불편 없이 건너고, 가파른 바윗길이 힘에 부치지도 않았다.

한성민은 성치 않은 다리를 절뚝이며 산을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런 그녀를 배려하지 않고 매정하게 혼자 올라온 것이 못내 미안스럽기도 했다. 그녀가 싫어서가 아니라 둘만의 산행인데다가 친절은 애정의 표현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싶어서 일부러 그랬었다. 그러나 내심은 되돌아가서 발을 맞추어 함께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을 내내 참고 참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