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19회)]벌거벗은 벚나무

공유
0

[혼다 히사시의 산촌일기(19회)]벌거벗은 벚나무

[글로벌이코노믹=혼다 히사시 시인] 마당에 큰 벚나무가 한 그루 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이파리 한 장 걸치지 않은 채 우람한 팔들을 벌리고 서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벌거벗은 채 혹한 수행을 하고 있는 고승 같아서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밤이 되면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울기 시작한다. 추위를 견디지 못해 지르는 비명소리가 아니다. 가지마다 별을 달고 겨울 밤하늘을 향해 묵묵히 피리를 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벚나무가 아니라 반짝이는 꽃을 피우는 별나무였다.
나무아래에 선 나는 추위도 잊은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따금 꽃잎이 지듯 별이 진다. 하나의 생을 마친 별의 빛줄기가 눈앞을 스치며 사라져 간다. 어둠은 끝없이 깊어져 정적만이 가득하다.

지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짧은 생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한 인간으로서의 내 자신의 삶에도 마음이 간다. 한겨울 바람 속에 서 있으니 나의 보잘 것 없는 삶도 이 별나무처럼 별을 달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휘파람을 불어본다. 추워서 얼얼한 입술을 동그랗게 내밀고서. 하지만 색색 공기 새어나가는 소리만 들릴 뿐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머리 위에서는 여전히 나뭇가지가 울고 있다. 바람에 따라 강약이 있고 고저가 있다. 리듬도 있다. 한 장의 잎새도 남지 않은 벚나무가 별들 앞에서 독주를 하고 있는 듯하다. 방해를 해선 안 될 것 같아 나 또한 기꺼이 한 사람의 청중이 된다. 언 손을 비벼가며 양팔로 몸을 감싸 안고 감상을 계속한다.

대략 1시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피리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제야 비로소 바람이 멈춘 것을 깨달았다. 여운처럼 별들만이 반짝이고 있다. 하염없이…. 몸은 냉기가 도는데 신기하게도 마음만은 따뜻하다. 야릇한 행복감에 젖는다.

서서히 본래의 내 자신으로 돌아온 나는 벚나무에 고개 숙여 예를 표하고 마당을 나온다. 그러면서 벚나무를 뒤돌아본다. 거대한 실루엣이 밤하늘에 우뚝 솟아있다. 그래서 한 번 더 발걸음을 멈춘다.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또 하나의 별이 진다. 보이지 않는 지휘자가 지휘봉을 내려놓은 모양이다.

/번역: 신현정(가나가와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