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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139)]제8장, 욕망의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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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무거운 짐 내려놓고(139)]제8장, 욕망의 본색

최철민이 그렇게 며칠간 타인의 이목을 수련에 쏠리게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강원도 고향에 일이 있어서 다녀온다며 휴가를 갔던 소진수가 돌아왔다.
소진수는 시골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사과 한 상자와 수십 명은 족히 먹을 만한 시루떡이며 곶감 더덕 도라지 등을 잔뜩 싣고 와서는 수련생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한성민의 방에 들여다 놓았다.

그리하고 보니 수련원은 전에 없이 분위기가 좋았다. 게다가 최철민이 예전처럼 수련생들을 지도하는데 열중했으므로, 그에게 미칠 우환을 걱정했던 한성민의 마음을 안심시키는데도 성공했다.

날씨가 잔뜩 흐리고 으스스하게 추운 밤인데다 안개까지 내렸다.

이런 날은 기분을 우중충하게 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집안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묘하게 스트레스도 잘 받고 언짢은 기분 때문에 우울하거나 다투기도 잘 하고 일도 안 된다.

그래서 최철민은 거사라 할 만큼 중대한 일을 결행할 시기를 바로 이런 때라 생각하고 기다렸었다. 일이 잘 되려고 그러는지 이날 마침 한성민도 수련원에 없었다. 장차 장인이 될 최서영의 아버지로부터 부름을 받아 오늘 거기서 하루를 유하기로 했던 것이다.

최철민이 거사를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그 시간, 한성민은 장차 처가댁이 될 최서영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후에는 장인 장모가 될 두 어른이 2층 서재로 불러 꼼짝없이 묻는 말에 대답해야 했으므로 최철민을 떠올릴 마음의 틈새도 없었다.

일흔을 갓 넘긴 노부부가 자상하기는 해도 근엄한 기상이 있어서 한 마디 말이라도 실수할까봐 마음을 쓰다 보니 밤이 깊은 줄도 몰랐다. 거기다가 첫 물음부터 혼사에 관한 것이어서 신경이 잔뜩 쓰였다.

“자네 꼭 집에서 식을 올려야 하겠나? 간소하더라도 예식장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족은 여동생뿐이니 혼수준비는 걱정하지 말고.”

하고 장인 될 어른의 점잖은 질문이 떨어졌을 때부터 긴장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터라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하나뿐인 따님 혼례를 훌륭한 장소에서 올려주시고 싶은 마음 저도 잘 압니다. 그리고 널리 알려서 많은 하객들의 축하도 받고 싶으시고, 체면도 생각하시고 아쉬움에 또 그리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합니다.

“..........!!”

“하지만 장엄하고 화려한 것도 불과 한 두어 시간뿐입니다. 끝나면 허망합니다. 비싼 드레스는 더 이상 입지 못하고, 꽃은 버려질 것이 뻔합니다. 그리고 하객들은 뿔뿔이 흩어져가고 나면 즉시 저희들을 잊어버립니다. 주례하는 사람도 형식만 갖추었지 떠나면 영원한 타인입니다. 이런 줄을 알면서 굳이 형식을 갖출 필요가 있을까 해서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끝에 드린 말씀입니다.”

“그래도 결혼식행사만은 예로부터 성대하게 치르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장모가 될 어른이 한 소리했다.

“옛날은 예법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지 성대하고 화려한 것은 아닌 줄 압니다.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은 체면과 가문의 명성을 생각해서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겉치레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부부의 연이며, 한 마음 한 뜻으로 평생 서로 존중하고 아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라 믿습니다. 화려하고 장엄하게 식을 치른다 해서 부부의 마음까지 화려하고 장엄하며 사랑이 지극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타인이 보아서 비록 초라하더라도 부부로서의 참 도만 지킬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부부의 참 도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