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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하고 가난을 구제한 김만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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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구하고 가난을 구제한 김만덕

[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2499 ]

[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문화전문기자] 나이 10살 때 아버지는 바다에서 풍랑으로 죽고, 어머니는 전염병으로 죽어 천애 고아가 된 김만덕. 그 뒤 김만덕은 친척집에서 살다가 기생이 되었지요. 그러다 양가 출신인 자신이 기생이 된 것이 원통하여 제주목사에게 눈물로 호소한 끝에 기녀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객주를 차리고 장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제주의 양반층 부녀자들에게 뭍의 옷감이나 장신구, 화장품을 팔고 제주 특산품인 녹용이나 귤은 뭍에 팔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 뒤 관가에까지 물건을 대주고 많은 장삿배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런데 정조 17년(1793)부터 제주도에는 흉년이 계속되어 세 고을에서만 굶어 죽은 사람이 6백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나라에서 보낸 구휼미를 실은 배가 침몰해 가난한 이들을 구해줄 곡식 1만 석은 바다 속에 가라않지요. 이 때 김만덕은 자신이 악착같이 번 전 재산을 털어 뭍에서 쌀 500석여 석을 사다가 굶어죽는 백성을 살렸습니다.
▲제주시에있는김만덕기념관(위),정조때체재공이지은<만덕전>
▲제주시에있는김만덕기념관(위),정조때체재공이지은<만덕전>


김만덕은 이렇게 여성의 권리란 찾을 수 없었던 시대에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지 않고 끝내 신분을 뛰어 넘어, 부자가 되었으며, 이웃이 어려울 때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아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김만덕을 기리기 위해 제주도는 김만덕 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고, 김만덕기념사업회에서는 ‘나눔 쌀 천 섬 쌓기, 만 섬 쌓기 행사’ 등의 행사를 벌이고 있지요. 요즈음 자신의 부를 쌓으려 남의 등을 치고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은데 김만덕은 본보기가 될 참으로 귀한 여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