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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서뒤 酷寒' 다가올 病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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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서뒤 酷寒' 다가올 病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장현주의 동양학에 묻고 답하다(4)]누에로 풀어보는 올해 사람 몸의 위기

▲누에고치와번데기.
▲누에고치와번데기.
[글로벌이코노믹=장현주 한글한자성훈색형(聲訓色形)연구소장] 누에에게서 뽑아져 나오는 명주(明紬)실은 그냥 하얗다기보다 저 하늘과 물에 어리는 은빛에 가깝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습기도 머금은 것이어서 눈에는 윤기로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땅위에 실크로드는 있어도 무명(면직물)이나 모직 로드는 왜 없을까.

황제내경에서 누에 실 비중있게 등장


평온한 사람의 안색은 비단같은 윤기

누에 뽕잎 먹고 실 싸고 고치서 羽化


단순함‧빛남‧자유 ‘陽明’이 하는 내용


실제로 실크는 아름답긴 해도 사람의 몸을 보온하는 용도의 무명이나 모직에는 못 미친다. 그럼에도 예전의 말에서 누에는 상당히 격상된 의미로 받아들여진 흔적이 있다. 지구상 모든 동물의 엑기스만을 뽑아 놓은 것 같은 상상의 동물, 용의 머리도 누에의 머리(囟=사람의 정수리)를 가진다.

그럼 다시 의문, 아주 옛날에도 체온을 유지하는 옷감보다 입어서 아름답고 속칭 때깔 나는 옷을 선호해서일까. 물론 이 점도 간과할 수 없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실크로드의 그 험난하고 기나긴 여정의 실체를 다 설득할 수 없다. 그럼 값비싸서? 그것도 당연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은 외형만이 아닌 정신의 동물이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거죽만이 아닌 내용, 그것이 실크로드의 실질적인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황제내경> 영추, 소문편이 정확히 언제 쓰여 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인류의 아주 이른 시기의 정신의 집대성이었다는 점만은 누구라도 동의할 만큼, 다룬 영역이 사람의 거의 모든 측면을 망라하고 있다. 그 책에 이 누에의 실, 비단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바로 사람을 지키는 위기(衛氣)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기(危機)의 색에 대해서 설명할 때다.

평온한 사람의 건강한 얼굴은 맑고 화사하고 무엇보다 윤기가 흐른다. 그 사람이 어떤 형용을 하였든 이 윤기는 건강한 미인(남녀를 통틀어)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 있어 색은 하늘이 나에게 내려진 드러남이고, 형용은 땅이 내게 부여한 카테고리다. 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나를 사람이라고 가늠하게 하는 실질은 속칭 밥통이라고 불리는 위(胃氣)에 있다.

먹지 않고 숨만으로 살 수 있는가. 내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인 지칭은 이 지독하고 끈덕지게 먹어야 사는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이 위는 사람의 종시(終始)다. 이 위에 대한 표현이 바로 인체의 색깔에서 하얗고 윤기 있는 빛의 감쌈인 비단 빛으로 드러난 것이다. 즉 위의 기운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사람의 진정한 위기가 된다는 얘기다. 황제내경에서 위는 따로 떼어서 위라고만 하지 않고, 장위(腸胃)라고 소화기관 전체를 묶어서 말한다. 이 장위가 인체의 경혈 중의 손발로부터 비롯되는 양명경의 통칭이다.

몸의 돌쩌귀 역할하는 배꼽옆 天樞穴


요즘 사람들은 기운의 중심축 무너져


동양의학의 경혈도를 보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왜 서양의학의 해부도에서 볼 수 있는 그 치밀한 상세함이 없는 것일까. 역시 동양이 해부학이라는 직접 들여다봄의 서양의학보다 미개하고 덜 떨어져서 그런 것인가. 그러나 이 대답은 좀 유보하자. 동양의학의 경혈도는 폐를 시작으로 대장으로 이어지다 간에서 그 6장6부의 표현을 마친다. 물론 여기서 마친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 가운데 양명경은 대장(손에서)과 위(발에서)를 말한다.

▲경기수원농촌진흥청잠사양봉소재과망포동청사잠령탑에서열린'2013년도풍잠기원제'에서제주(祭主)로나선전혜경국립농업과학원장과잠업관련기관장들이양잠산업의발전을기원하며누에에게먹이로뽕잎을주고있다.
▲경기수원농촌진흥청잠사양봉소재과망포동청사잠령탑에서열린'2013년도풍잠기원제'에서제주(祭主)로나선전혜경국립농업과학원장과잠업관련기관장들이양잠산업의발전을기원하며누에에게먹이로뽕잎을주고있다.
그럼 ‘양명(陽明)’은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 인체의 양이 밝아졌다? 그럴 수도 있겠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인체의 다른 양(陽)의 집결지(태양+소양)라는 뜻이다. 여기서 음과 양이라고 할 때 그 음양을 동양학에서는 따로 뚝 떨어져 음은 음이고 양은 양이다로 분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음 속에도 양이 있고, 양 속에도 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머리 빙빙 도는 복잡한 거 말고 그림처럼 단순할 수는 없을까. 그럼 이렇게 말해보자. 누에는 나방이 될 때까지 제 집인 명주실을 뽑는 데만 매진한다. 누에의 내용은 뽕잎을 먹고 실을 싼 것(?)밖에 없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하얀 집(고치)에서 우화(羽化=정신의 승천=용의 머리)를 기다린다. 이것이 그 옛날 누에에게서 본 사람 자신의 내용이다. 먹는 것의 지극히 작고 단순함. 싸는 것의 그 빛남,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자유롭게 할 날개를 다는 것. 이것이 인체 내의 양명이 하는 내용이다. 곧 누에처럼 먹고 고치를 지어 날개를 가질 때까지 스스로를 잘 호위하는 것이다.

앞서 돌쩌귀에 대해서 얘기했다. 그럼 사람의 몸에는 돌쩌귀에 달린 그 문의 안팎에 관한 것도 들어 있다는 얘기다. 양명인 장위는 밖에서 보이는 문으로 그 문을 잘 닫는 역할을 한다. 왜 이토록 장황하게 장짓문의 그 바깥, 장위에 대해 읊었을까. 까닭은 그것이 올해의 각 사람 기운의 중대한 베이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베이스가 통째로 무너졌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陽明은 낮동안 손발이 움직인다는 것


양의 폭발 전단계로 음의 제어벗어나


말은 正道를 잃고 마음온도는 급상승


물론 이 언급도 일반론이다. 단순하게 예로 들면, 장위는 무릎으로 대표된다. 무릎이 아프면 단 걸 먹으면 조금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양념의 수준이상이어선 안 된다. 단 게 입맛에 당겨서 습관적으로 먹는 사람들이 요즘 많다. 그런데 그것을 굳이 습관성이라고 부르는 건 자기 몸이 건강해서 필요한 걸 저절로 당기게 하는 입맛을 벗어난 위험성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다른 걸 잃는 원칙에 의한 것이다. 다른 비유로 열대의 과실은 달되 신맛을 느낄 수 없는 말 그대로 달콤함(羽化)이다. 그와 비교해서 사탕류는 대개 신 과일 맛을 포함한다. 그것은 단 걸로 잃을 수 있는 것을 신 맛으로 감싼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상술이 얻어 걸린 극과 극 처방의 대표적 조율 케이스다.

그럼 왜 하필 무릎인가. 해부학에서 무릎은 앞으로도 뒤로도 꺾일 위험성이 있는 사람의 관절을 어느 정도의 보폭의 앞 방향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것은 돌쩌귀에 걸린 현대의 문이든, 옛날 장짓문이든, 열었을 때 열리는 최대 폭을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그것은 닫혀 있을 때의 감안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사람다움은 곧 직립보행에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걷게 되어 있는 구조야말로 사람의 직접적 본성이라는 얘기다. 먹게 되어 있는 것이 그렇듯이 말이다. 이 말은 먹었으면 그 보폭 안에서 걷고 일하라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상승이 극에 이르면 반대급부 불러


올 혹서뒤 寒氣가 오는 까닭이 된다


무릎 이상 등 다가올 병에 대비해야


여기에서 인체의 상하란 어디를 기점으로 할까. 그것은 배꼽 양쪽 천추(天樞=여기서 추가 바로 돌쩌귀라는 뜻)라는 경혈을 기준으로 나뉜다. 쉽게 배꼽이 기준이다. 그런데 배꼽이란 간단한 표현 말고 천추라는 혈로 든 이유는 그것이 1개가 아닌 최소 2개는 있어야 하는 돌쩌귀에 달린 문의 사정 때문이다. 그러니까 배꼽 위를 대체로 양이라 하고, 아래는 음이라 한다. ‘걷는다’로 대표되는 사람의 낮 동안의 활동의 가장 중요한 관점은 그것이 먹어서 시작되는 양명이라는 양의 집결을 음(다리)으로써 푼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양명은 손발의 두 기점을 가졌다. 손발의 두 양명이 움직인다는 것은 인체 내의 양이란 양(6장6부의 12경 중에 6양경)은 다 폭발직전이 된다. 그것은 음의 적절한 제어를 벗어난 수준이다. 그래서 말(言)은 정도를 잃고 과다해지고, 마음은 온도상승(지열도 마찬가지)을 막을 길이 없는 폭주기관차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승일로는 마침내 급랭이라는 반대급부를 불러일으킨다.(예를 들어 무릎 통증) 그것이 올해의 기습적인 폭우의 내용이고 앞으로 닥칠 한기(寒氣)의 까닭이 된다. 물론 그로 인한 병들은 그렇다면 어느 정도라도 대비될 수 있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