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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인은 남자를 소년이 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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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인은 남자를 소년이 되게 한다"

[장현주의 동양학에 묻고 답하다(5)]동양적 사랑학

황제가 素女와 玄女에게 물었다


남자는 ‘情’-몸의 내킴에 맡기고


여자는 ‘人’-情을 이끄는데 주력


특히 소년은 情의 이끌림에 산다

[글로벌이코노믹=장현주 한글한자성훈색형(聲訓色形)연구소장] 동양적 사고에서 남자는 정, 곧 그 몸의 자연스런 내킴에 더 골자를 두고, 여자는 그 정을 인(人)으로 이끄는데 주력한다. 그래서 우리식 남정네, 여인네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럼 남자라는 정의 내킴이란 무엇이며 여인이란 과연 무엇이던가.

동양적 성담론은 <소녀경>이나 <현녀경> 같은 걸 들 수 있을 텐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수준은 자극적인 장면만 발췌한 조잡한 수준의 것이거나, 전문 번역서라도 그것이 출발하게 된 본뜻을 상당히 이탈해 있음을 보게 된다. 방중술이나 방내경이라 하여 자세나 횟수 같은 숫자 그리고 그로 인한 혜택(?) 정도를 보여주는데, 그 체위들의 실질은 참으로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려져 있다.

필자의 이 같은 견해의 단초는 소녀나 현녀가 바로 황제(黃帝)의 여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소년처럼 호기심이 끝도 없던 사람이었다. 묻고 또 묻는다. 그것은 알아서 남에게 팔아먹을 장삿술로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백성들의 현실, 즉 한 사람마다 몸으로든 맘으로든 아프지 않은 것이 나라의 첫 번째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원숭이 같은 포즈로 이러저러한 자세 몇 번에 어떻게 마음까지가 치유되리라는 것인가.

물론 그러한 것들을 실행에 옮길 정도라면 부부 금슬이 정말이지 웬만하든가, 이러저러한 여성 편력이 카사노바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그것이 일반적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여기서 필자의 단초를 한 가지 더 던진다면 <소녀경>들이 그렇게 된 데는 황제의 이야기가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에 벌어진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다.

뭐, 황제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황제가 중국사람 아니었던가. 천천히 드러날 테지만 동양학은 사후(事後) 통계학과는 무관한 학문이다.(그렇게 보면 <소녀경>도 현대의학의 ‘아프고 나서의’ 처방전과 비슷하다.) 또 지금의 중국 영토가 아주 옛날부터 하나의 민족이 쭈욱 통치한 단일 통일국가였던가를 의문해보라고 하고 싶다.

얘기를 바꿔보자. 현대의 인형의 속은 비어있다. 판박이처럼 찍어내는 공장의 산물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인형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할 만큼, 수집광들의 한정판에서 동전 정도로도 가질 수 있는 인형 뽑기 기계도 있다. 이 인형들의 가격이 현대 여자들의 값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데는 의식적으로는 거부감을 일으키지만, 그것을 달리 직장과 사회의 일로써 바꿔 생각하면 사람은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닌가.
괜히 성형 천국이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성형이라도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경쟁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럼 이 얘기를 부정하지 말고 긍정해보는 관점은 어떨까 싶다. 여자가 바비 인형 정도면 시선을 끌 것이고 어루만짐을 받을 것이고 모셔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은 여자라도 모피코트 정도라도 된다면 경쟁력이 있겠다. 즉 돈이라도 있어 남자의 승부욕을 채울 수 있다면 말이다. 아니면 이 둘을 다 만족시킬 여자도 수두룩할지도 모른다.

그럼 다시 속 빈 인형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왜 속이 비었을까. 일단은 최소한의 재료로 찍어내기 좋았을 것 같다. 이 얘기를 바꿔 보면 여자에게는 애초 속을 채울 내용물(?)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속이 비어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인형이 되어서 팔릴 만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단 누군가의 수중에 들면 터치 와이프 이상의 기능은 상실한다. 예쁜 건 멀리 있어 꺾고 싶은 정복욕을 자극할 때까지의 얘기다. 그렇다면 여자의 내용물은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정말 불필요한 것이던가.

성(性)은 발과 눈을 멈춘 은밀한 곳에 있다. 아니 그런 곳에 있어야 한다. 예쁜 꽃에 끌린 호감이 안락한 환경에 놓이면 거기에 황제가 있게 되니 말이다. 황제가 호색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주변에 특히 더 어여쁜 여인들이 넘치는 궁궐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이걸 바꿔 말하면 많다는 건 없는 것과 같아서 식상하기 쉽고, 정복욕을 자극하지 않으니 더 다른 강자극(?)을 찾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황제는 모든 게 궁금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묻는 사람만이 어쩌면 더 멀리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가까운 시대에 그런 관심과 호기심을 백성들의 삶의 실질로 바꾼 세종대왕도 있다. 필자는 이 두 사람을 동양학의 두 분수령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나이와 상관없는 소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남자가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나만을 생각하며 히죽이게 하라


그러면 남자는 제 발로 찾아온다


소년처럼 여인 품으로 안기리라


이것이 황제가 말하려던 바이다


남자는 몸인 정(精)에 속한다. 특히 소년은 그 정의 이끌림으로 산다. 마음에 드는 소녀가 있으면 괜히 더 자주 심통을 부린다. 그러다 소녀가 쳐다보기라도 하면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어쩔 줄 모르는 때가 세상 어떤 남자에게라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 마음과 다르게 자꾸 화가 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안타깝고, 그래도 한 번 만이라도 더 보기 위해 달음박질하는 설렘이 있던 소년은 자라지만, 남자가 되어도 그 소년은 아련하게 남는 것이다.

그에 비해 대개의 여자는 소년보다 이른 성장통을 겪으며 여자가 되는 동시에 소녀를 버린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실 즉 즉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지금’을 산다. 한편 황제의 소녀와 현녀는 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 안에 있는 여인으로서의 늘 신선한 변화를 말함이다. 즉 인형에 있었어야 할 그 내용물은 다름 아닌 정신과 마음의 온통을 물들인 소녀의 뺨, 그 색색깔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여자가 아니라 여인임은 남자 어른이 그런 것처럼 몸과 맘에 수줍으면서도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새침데기 소녀를 간직할 수 있을 때다. 그것이 어떻게 여인의 내용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일까.

요즘 세상 유행가로 날마다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은 연애의 싫증이다. 미소년 미소녀로 만나도 그들은 왜 그렇게 자주 헤어질까. 왜 오래된 연인들은 결혼에 이르기 쉽지 않을까. 그렇다면 부부는 왜 그다지 서로에게 시들할까. 알만큼 알아서? 뭘 알아서? 아니 뭘 몰라서가 맞을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안으면 그때부터 사랑을 시작하고, 남자는 연자를 안으면 끝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여자는 남자를 필요로 생각하고, 남자는 탐사가 다 끝난 선장이 되어 이미 제 수중에 든 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 시점에서 남자가 남정네로, 여자가 여인네로 격상되는 건 오로지 여자 자신에 달렸다. 한 번 끌릴 수 있는 마음은 다음번도 끌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만치. 그런 베이스는 적어도 사랑한 남녀 사이에는 있던 것이다.

그럼 여인인 소녀가, 현녀가 황제에게서 이끌어낸 것이 무엇이던가. 바로 소년이다. 설레게 하는 것, 또 보고 싶은 것, 온 종일 들과 산을 누비며 갖고 들어온 영웅담과 무용담을 여인의 무릎에서 신나서 떠들게 해주는 것, 안으면 안을수록 더 캐고 싶은 여지가 여전히 더 남아있는 금광, 다이아몬드 광산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이 언제라도 무엇을 향해서라도 꿈틀거리며 깨어 있을 때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함께 한 남자의 사소한 것에도 절로 반응되며, 그것을 넘어 더 승화된 제 것인 무엇을 늘 먼저 꺼내 줄 수 있는, 언제나 ‘ON in ON’의 상태인 것이다. 이야말로 서로를 위해서인 동시에 반드시 저절로 그러고 싶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는 강력한 전제를 갖는다. 겨우 몇 번에도 더 캘 것이 남아있지 않은 회사도, 나라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동양적 이치다. 내 남자를 수많은 이목이 번다한 번화가에서조차도 오로지 자신의 생각으로 꽉 차 히죽이게 하라. 그러면 남자는 제 발로 어디든 가게 되어 있다. 무슨 일이든 그것이 드넓은 세상이라도 기필코 걸머쥐고 올 것이다. 소년처럼 의기양양해서 제 여인의 품으로. 이것이 황제의 하양(素女) 까망(玄女) 여인이 말하려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