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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서 여인으로…도발이 남자를 애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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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서 여인으로…도발이 남자를 애태운다"

[장현주의 동양학에 묻고 답하다(6)]동양적 사랑학: 여인은 남자를 애태운다

동양적인 性은 느림의 미학


남자는 마음이 가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몸의 언어로 더 절실한 것은

되레 여자쪽이 훨씬 가깝다


[글로벌이코노믹=장현주 한글한자성훈색형(聲訓色形)연구소장] 마음이 백상아리처럼 딱딱해지는 건 복부의 소복부로부터다. 동양의학에서는 배 가운데서도 배꼽을 둘러싼 중앙 일정 부분을 소복부라 따로 명명하였는데, 그것은 정확히 소장이 놓인 위치와 일치한다. 그리고 그곳은 어떤 형태로든 마음을 얻지 못하면 부러져 꺾이거나, 아니면 부풀어 오르거나, 그도 아니면 굳어 버린다.

실제로 소장의 동양적 명칭은 돌창자다. 쉬운 예로 굶는 아프리카 아이들 중에 배꼽이 톡 튀어나올 만큼 가운데 배가 창만한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물론 복부 창만의 까닭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지만, 기아상태가 아니라도 다른 데는 다 살집이 없는데, 유독 소복부만 빵그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바로 선 자세에서도 허리가 절로 꺾이는, 곧 구부정한 사람도 많다. 말하자면 사람에게 이 소복부란 마음이 고픈 배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을 동양적으로는 스스로를 직립의 사람으로서 꼿꼿하게 일으켜 세울 힘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소장과 음양으로 한 묶음인 심장은 사람의 생겨난 첫 번째 장부요, 숨 거둘 마지막 장부이기도 하다. 심장은 박동을 멈추지 않는다. 그 멈추지 아니함으로 인해서 심정이란 게 끊임없이 온몸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 눈물의 까닭은 북받쳐 오른 심정의 정점에서 약한 바람에도 심히 일렁이던 것이었다. 그러한 나의 심정이라 할 것은 눈이 나도 모르게 멈춘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고 또 요동한다.

남자가 ‘動’해 여자를 향함은


본능적인 몸의 끌어당김이며


사랑 그 자체다


여자들은 이 점을 잘 모른다


특히 남자의 마음은 그렇게 다분히 시각적이다. 시각으로부터 들어온 마음은 쏠린 만큼 그 이외 모든 걸 배타하는 것이다. 온라인게임에서 유저가 캐릭터의 세심한 변화에도 무반응해진다면 그 게임 자체에 이미 싫증난 탓이다. 온라인게임의 업데이트는 시시각각이라고 할 만큼 빈번하다. 함에도 화려한 3D화면일수록 한번 익숙해지면 되물릴 수 없는 지루한 것이 된다. 유행가의 모든 가사가 다 입력되는 순간이 곧 그 노래 자체의 수명이 마감이듯 말이다. 흑백 느린 화면에서는 그런 절벽 같은 단절은 없었다. 하지만 게임 유저는 열광할 수 있는 동시에 냉정하게 돌아설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진다.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했던 예쁜 여자라는 그 형용은 그런 온라인 게임 같은 단발성이다. 그 여자가 그렇게 성장하였던 모든 기간은 그 단발에 집중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온라인게임에서처럼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매번 새로운 자잘한 신선도 반복되면 지루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버전 업은 바탕그림 자체를 뒤엎어버리는 정도의 것이어야 할 것이다. 여자에게 여인으로의 도약은 그만큼이나 늘 강력한 도발일 수 있는가가 관건이겠다.

반대로 남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카사노바의 최대의 맹점은 상대 여자가 도대체 어느 정도 급의 와인일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와인만큼 천차만별의 맛을 가질 수 있는 게 있을까. 카사노바의 여정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결국 자신에게 가장 환상적인 와인을 만날 때까지의, 어쩌면 여느 사람들보다 더 지독한 시행착오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여자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법칙이 적용된다. 최고급 포도일지라도 단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 완벽한 조건으로 숙성되지 않는다면 아예 와인이 될 가망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러나 조건이 맞아 떨어진다고 해도 세월만 묵힌다고 해결될 일도 애초 아니다.

▲시크한와인으로정평이나있는뵈브클리코.바람둥이카사노바의최대의맹점은상대여자가도대체어느정도급의와인일지가늠할수없다는것이다.
▲시크한와인으로정평이나있는뵈브클리코.바람둥이카사노바의최대의맹점은상대여자가도대체어느정도급의와인일지가늠할수없다는것이다.
동양적인 성은 말 그대로 느림의 미학이다. 그 다음이 소리(聲)의 다섯 단계적 가늠에 의한 진행형이어야 한다. 어둠속에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루어진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남들이 어쩌는지 알 수 없기에 더 그렇다. 물론 현대적 산물로 포르노나 야동 같은 것들이 횡행한다고 해도, 중국으로 건너간 황제의 일부분이 <소녀경>화(化) 되어버린 이상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건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백해무익하다. 심지어 눈만이라도 채울 충족도 아니다. 그러니 황제의 여인인 소녀(素女)는 분명 다시 읽혀야 한다.

그것은 침대문화와 한옥의 구조적 차이에서도 극적으로 드러난다. 같은 동양이라는 중국도 침대문화를 지향한다는 건 아이러니 아닌가. 중국말의 어순도 영어에 훨씬 더 가깝다. 그럼에도 한국 지성인들의 참 이상한 머릿속은 중국은 배워야 할 동양적 대국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견해로서는 중국은 한자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한(?) 문화다. 그래서 같은 한자도 반복되고 발음은 욕설처럼(복자음) 과격해졌다. 그럼에도 받침을 달지 못하고 미끄러지고 있는 것은 일본말에서 보는 바와 같다. 게다가 침대라는 잠자리는 서양식인 그 나라의 문화를 축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의 생략을 바란 직입 결론형이다. 그것은 본 만큼의 경험치이며, 반복 데이터에 의한 통계이상일 수 없다. 통계는 무엇이 창조될 수 있는 흐름의 가장 먼 데 있기 때문이다.

무화과 같이 ‘숙성’된 여인은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바


어느 남성이 눈을 거두겠나


남자는 눈을 둔 곳에 그 마음마저 둔다


사주명리학의 한 버전인 <자평진전>의 한 서문 가운데 이런 게 나온다. 도무지 신(精神)이나 직관을 사용해서 헤아릴 수가 없기에 다수에게 통용될 통계학으로 적중률을 높이는 쪽으로 흘렀다고. 그러니 여자는 안아서 늘 펴져있는 이부자리위로 던져지는 존재였다. 거기에 예뻐서 꺾는 용도이외에는 성립될 수가 없다. 아니면 승리를 자축하는 전리품이던가. 전리품인 여자의 마음을 누가 깨우겠는가. 그럼 종잇장으로라도 박리될 만큼 얇은 벽을 가진 일본의 가옥구조에선들 애초 가능했겠는가. 우리가 지금 직시해야 할 것들은 관습에 의해 너무나 쉽게 넘어가버린 것들에 대한 반문이다. 일본은 경멸하면서 중국은 왜 사대가 온당한가. 단지 땅덩어리가 커서? 그럼 재야사학자들의 주장대로 중국대륙은 우리가 당연히 수복해야 할 뼈아픈 고토(古土)라서? 그럼 우리에겐 말도 안 되는 동북공정을 중국은 왜 기를 쓰고 해대던가. 그것은 자고이래 그 말의 국민성에 이미 설파 되어있던 것이다.

한편 사람은 보통 흥분했을 때 심장이 가장 거칠게 뛴다고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배꼽 주변에 손을 대보면 심장보다 더 격렬한 박동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왜 그런가 말이다. 우리 언어 습관에서 마음을 졸이는 건 애를 태우는 것이다. 애는 어디인가? 바로 소장, 대장 같은 창자, 그중에서도 특히 소장을 이른다. 그 ‘애’는 사랑하는 마음의 간절함 말고는 달리 표현될 길이 없는데, 그럼 고작 온통 뒤엉킨 모습의 작은창자와 사랑해서 끓는 애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마음마저 거머쥐지 못하면 소장은 왜 돌덩어리가 되는가. 여기서 경로라는 말도, 경혈도 같이 직선들의 연결로만 이해하면 한없이 어긋난다. 게다가 경혈인들 무슨 선(線)이 아니다. 그럼 사랑도 도대체 무슨 도표나 춘화도 같은 일목요연 해프닝일 수 없을 바에야.

남자는 마음이 가지 않으면 어떤 것도 못한다. 늘 몸이 더 성급해보여도 말이다. 그에 비해 몸의 언어로 더 적실한 것은 오히려 여자 쪽이다. 어떤 남자에게 최소한의 마음이 ‘동’한 대개의 여자는 오로지 그날 치의 한 잔 와인으로 있으려 할 뿐이다. 그것은 거의 본능적 몸의 끌어당김이다. 그런 여자들은 반드시 자신에게만 갖다 둬야 되는 즉물(물질)적 남성에 더 치중한다. 그것이 어쩌면 여자들이 가장 흔히 빠지는 자가당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애태우는 남자는 그렇고 그런 여자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사랑 그 자체의 화신이니 말이다. 그 한편 숙성된 무화과 같은 여인이란 도무지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일거수일투족 인 바 거기서 눈을 거둘 수나 있겠는가. 남자는 눈을 둔 그곳에 마음마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