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68)]제16장, 천하의 짐수레

공유
0

[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68)]제16장, 천하의 짐수레

한성민은 일요일 오후에 아내와 함께 강남지부 개업식에 참석하기 위해 박희경과 진경숙만 데리고 수련원을 나섰다.

한성민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주성수는 최서영이 우겨서 본원에 남아있으라 하였다. 요즘 들어 틈만 나면 선희를 불러내 외식도 하고 찻집에 드나드는 등 둘 관계가 심상치가 않아서 그에게 귀띔해 일부러 못 오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성수가 동행하지 않자 진경숙은 좀 심통이 났다.

주성수가 선희를 배려하는 곰살궂은 모양이 보기가 좋으면서도 닭살 돋을 것처럼 눈꼴이 사납던 차였다. 그렇다고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아니었다. 데이트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저도 모르게 일으키는 히스테리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진경숙은 그런 자신을 모르지 않으면서 괜스레 신경을 곤두세웠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선머슴아이처럼 덜렁대고 눈꼴사나우면 못 참고 할 말 다하는 계집애를 어느 남자가 좋아할까 싶어 여성답게 처신해볼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성질에 맞지가 않는 내숭 자체가 닭살로 느껴져 뜻대로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타고난 기질을 스트레스 받게 감추고 왜 살아? 하고 자문하는 등 요즘 심사가 그리 편하지가 않았다. 그런 중에 오늘 또 한 번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 있어서 한 바탕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나중에 한성민으로부터 꾸중을 호되게 들어야만 했다.

수련원 개업식에 가면서도 승용차를 잘 타지 않는 한성민의 고집 때문에 강남 행 2호선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출입문 쪽에 마침 두 사람이 앉을 만한 자리가 비어있어서 최서영이 끝자리에 가서 앉고 한성민은 아내 왼쪽 옆에 바싹 다가앉았다.

박희경과 진경숙은 그들 부부 앞에 나란히 섰다. 그런데 진경숙은 한성민과 어께를 맞닿아 앉은 사람을 무심코 쳐다보았다.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젊은 신사였다. 손가방을 얌전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 퍽이나 점잖았다. 게다가 그 신사 바로 옆에 성경책을 가슴에 안은 한 중년 여인이 무어라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인자한 미소를 잔뜩 머금어 연신 머리를 끄덕이고 있어서 꽤나 신분이 높고 덕성도 있어보였다.
그런데 그 젊은 신사가 여인의 말을 한 귀로 들으면서 눈은 곁에 앉은 초라한 옷 차림의 한성민을 힐끔 곁눈질하더니 얼른 그와 맞닿은 어깨를 떼어놓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여인 가까이로 바싹 당겨 앉아서는 계속해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모양을 본 진경숙은 벌써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해서 무심하던 귀를 쫑긋이 세워 중년 여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기울여 들었다.

“목사님, 앉은뱅이도 주님께 기도해서 낫게 해주셨다죠?”

여인이 무슨 말 끝에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급히 물었다. 그러자 젊은 신사가 미소만 머금었던 닫힌 입술을 활짝 열어 하얀 이빨을 드러내 웃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안 나을 병이 없다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며 아멘! 하고 가만히 입술을 움직여 기도하고는 예의 잔잔한 미소를 또 머금었다.

그 말을 들은 진경숙이 낯빛을 벌레 씹은 모양으로 한 번 일그러뜨리더니 박희경을 획 돌아보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깜박 잊은 것이 있었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서 호들갑스럽게 빠른 어투로 말했다.

“선생님, 저요 작년에 심장병으로 고생 되게 했거든요. 심근경색으로 죽을 뻔 했어요. 근데 환인하느님하고 환웅할아버지 하고 단군할아버지한테 살려달라고 죽어라고 기도했더니 글쎄 수술하지 않고도 감쪽같이 나았지 뭐에요? 다 선생님 강의를 듣고 깨달은 덕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