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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장애인도 좌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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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장애인도 좌의정에 올랐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2612)]

[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 기자] 조선시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 복지정책은 오늘날보다 훨씬 선진적이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엔 장애가 있어도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벼슬을 할 수가 있었지요. 예를 들면 조선이 세워진 뒤 예법과 음악을 정비하고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운 허조(許稠, 1369~1439)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작고 어깨와 등이 구부러진 꼽추였습니다. 하지만 허조는 좌의정까지 오를 수 있었지요. 또 간질 장애인이었던 권균(權鈞, 1464~1526)은 이조판서와 우의정에 오르고 영창부원군에까지 봉해졌습니다.

▲ 사팔뜨기지만 영의정에 오른 체재공(왼쪽), 외눈이지만 뛰어난 그림을 그린 최북, 장애이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한 홍대용의 《담헌서》
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는 장애인을 위한 여러 가지 지원정책을 펼쳤는데 장애인에겐 조세와 부역을 면해주고, 죄를 지으면 형벌 대신 면포로 받았으며, 연좌제에도 적용하지 않았지요. 또한 시정(侍丁), 곧 활동보조인을 붙여주고, 때때로 잔치를 베풀어주며 쌀과 고기 같은 생필품을 내려주었습니다. 또 동서활인원이나 제생원 같은 구휼기관을 만들어 어려움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였지요.

더구나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장애인에게 사회분위기가 긍정적이었습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은 《담헌서》에서 “소경은 점치도록 하고,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장애인을 무조건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가둬두고 장애 수당만 지급하면 끝이라는 오늘날에 견줘 정말 인간적이었지요. 다시 말해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