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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90)]제18장, 어둠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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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90)]제18장, 어둠의 자식들

“걱정은.......늘 있는 일인데.”

한성민은 말은 그리 해도 상당히 피곤했다.
천둥비바람소리를 여의고 집중하기 위해 진기(眞氣)를 최상승으로 끌어 올렸던 데다가 삼천 세 번을 절하느라 기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그러나 피곤을 내색하지 않았다. 산을 내려오면서부터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일부러 성큼성큼 걸어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충 씻고는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잠시 쉬었다가 길게 드러누워 곤히 잠들었다.

그런데 그가 잠든 뒤였다.

최서영이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랐다.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요란하게 울려서 남편이 깰까봐 화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죽여 누구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최철민이었다.
“누님, 인사가 늦었어요. 자형은 잘 계시죠?”

제법 살가운 말투였다.

하지만 출감한 지가 언젠데 여태 인사 한 마디 없다가 반가운 척하는 것이 얄미워서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안부를 묻지도 않았다.

지난 3년간 남편이 감옥에 있는 저를 개과천선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었다.

더욱이 수련원을 제가 하던 때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번창시켜 놓았다. 그런데 소진수 하나 때문에 남편을 의심하여 제 아비 어미를 시켜 윽박지르기나 하고, 출감해서는 찾아오지는 못할망정 곧바로 전화인사조차 하지 않은 배은망덕한 인간을 사촌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이 사범, 저 사범을 불러 수련원 운영은 어떻게 했는지 잔뜩 의심하여 물은 것은 그렇다 쳐도, 남편이나 자신이나 일상생활비 말고는 월급이란 명목으로 한 푼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거 얼마나 가져갔는지, 또 돈이 어디로 얼마나 새나갔는지 눈에 불을 켜고 따지더라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여직원이 몰래 전화로 알려주지 않았으면 최철민이 어떤 심보로 변해있는지 깜빡 속을 뻔 했다.

“누님, 실은 거기 가려고 전화했어요. 자형한테 인사드리려고요. 진작 그러려고 했는데 출옥하고 보니까 갑자기 여기 저기 만나자는 사람도 많고 할 일이 산더미 같아서 차일피일 했어요. 죄송합니다. 큰아버지 큰 어머니도 거기 계시다면서요?”

최철민은 뻔한 거짓말을 꺼림 없이 능숙하게 하였다. 그래서 더 뵈기 싫어서 우리도 곧 서울 갈 거니까 굳이 올 필요 없다, 서울 가서 보자, 하고 완고하게 오지 말라는 뜻을 전하였다. 그러나 천연덕스럽게 그러면 도리가 아니라며 곧 가서 뵙겠다,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한성민은 점심때가 거의 돼서 잠에서 깨어나 최철민이 온다는 말을 듣고도 무덤덤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최철민이 출옥하기 전에 서둘러 시골에 온 것도 아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없는 데서 수련원 운영 내막을 마음껏 조사해보라는 의도도 깔려있었다. 의심이 많은 사람과 대화하면 묻는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마련이고,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심이 더욱 깊어져 자칫 본의 아닌 다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하게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당신이 지난 날 철민이를 예전처럼 생각하지 말라하셨을 때는 솔직히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