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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91)]제18장, 어둠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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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무거운 짐 내려놓고(291)]제18장, 어둠의 자식들

“내가 그리 말한 것은 동생이 없는 당신이 오누이로서 처남한테 쏟은 정과 믿음이 무너졌을 때 애태우고 원망할까봐 걱정해서였소. 앞으로 혹 배신감을 느낀다거나 섭섭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미워하거나 싫어하고 성내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저 그러려니 하면 담담하게 받아들여질 것이오.”

한성민은 말하고 비도 좀 그쳤으니 처가댁으로 가서 정원을 산책하다가 거기서 점심식사를 하자 하였다.
마당으로 나와 보니 그리도 퍼붓던 비도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어서 사방이 말끔했다. 그러나 하늘은 잠시 숨을 고르는지 푸르기는 하지만 구름이 저 먼 곳에서부터 야금야금 검게 물들여 오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태풍이 아직 제 본색을 숨기고 있군!“

“네?”

“어서 갑시다. 소나기가 올 것 같군! 한 바탕 쏟아지고 나서 좀 잠잠해졌다가 태풍이 또 몰려올 거요. 어제보다 더 하겠는 걸?”

천문을 관찰하듯 하늘을 우러러 그리 말한 그는 한숨을 내쉬며 집을 나섰다. 이것이 하늘의 재앙이요 땅의 변고이기는 하지만 개벽의 징조인 것 같아 잠깐 마음이 산란했다.

그런데 처가댁이 불과 반 킬로미터 밖에 있는데 먹구름이 어찌나 빨랐던지 가는 길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후드득 후드득 몇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쏴 쏴 동이로 퍼붓듯 했다. 그래 뛰어야 했으나 임신한 아내가 걱정돼 윗옷을 벗어 머리를 덮어주어 자신은 소나기를 고스란히 맞았다.
“원, 한 서방이 감기 들겠다. 우산을 챙겨오지 않고서는!”

별장 현관문을 들어서자 그의 장모가 혀를 끌끌 차며 맞이했다.

그새 몸이 흠뻑 젖은 그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오겠다 하고는 곧장 되돌아섰다. 그리고 우산을 받쳐 들고 현관을 나서는데 뜻밖에 선희가 마당 정원 사잇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나기 소리를 듣고 비를 맞을 성 싶어서 부랴부랴 옷을 챙겨들고 달려왔다 하였다. 장모는 기왕 비도 오고 하니 오늘은 모두 함께 하루를 보내자며 반겼다.



저녁이 돼갈 무렵, 지난 새벽에 버금가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을 때였다.

택시를 타고 온 최철민이 언제나 그랬듯 당당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3년 사이에 얼굴이 더 훤해지고 살이 좀 오른 몸집은 무게감을 더했다.

그러나 매력적이던 맑은 눈동자가 예리하게 변해서 세월이란 것이 사람을 저리도 바꿀 수 있구나 싶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절 받으십시오.”

최철민은 나란히 앉은 두 어른께 그간 안녕하셨느냐 하고는 넙죽이 절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한성민을 향해서도 무릎을 꿇어 절한 뒤에 사뭇 공손하게 앉았다. 일견 예의가 바르고 몸가짐이 겸손해 보이는 태도였다.

그에 더해 수련원을 다시 부흥시키고 관리까지 잘 해주어서 고맙다며 그에게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은혜를 잊지 않겠다며 결연한 의지도 내보였다.

사실 최철민은 사촌자형이기는 하지만 그를 처음에는 의심했었다. 그만큼 수련원을 번창시켰으면 수익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아무리 도인이라 해도 견물생심이라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보고 욕심내지 않을 인간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수익금 전부 챙긴다 해도 자기로서는 할 말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