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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는 평등하고, 회장도 특별대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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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는 평등하고, 회장도 특별대우 없다"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1915~2001)] ⑯

[글로벌이코노믹=김영조 기자] 주베일 산업항 공사,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공사를 해치운 그것도 공기단축이란 성과까지 올리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이 공사로 현대건설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에 들어선 듯했다. 그러나 인생살이란 것이 늘 좋을 수만은 없는 법. 하루 평균 3000여 명이 넘게 일하는 현장에서 정주영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저것들 모두 때려 부숴버리자. 혼 좀 내줘야 해. 우리를 물로 봐도 분수가 있지.”
덤프트럭 기사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근처 동아건설 덤프트럭 기사들에 견줘 임금을 반도 못 받는다고 오해한 것이다. 동아건설은 개개인에게 물량 하청식으로 일감을 주어 쉼 없이 하루 16시간까지 일을 한 까닭으로 임금을 많이 받았는데 단순비교로 자신들의 임금이 적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사들은 20밖에 떨어지지 않은 석산까지를 시속 20로 천천히 왕복하는 태업을 했다. 그러자 직원 한 사람이 공기에 쫓긴 나머지 덤프트럭 기사와 말다툼을 벌이다 안전모로 기사의 머리를 내리친 것이 직접적인 폭동의 계기가 되었다. 현장 직원은 늑장을 부리는 기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는 다급한 마음에 그랬지만 머리를 맞은 기사는 자존심이 상했다. 고국을 떠나와 머나먼 타국 뜨거운 모랫바람을 맞으며 힘들게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격까지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흥분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동조한 동료 기사 4050명과 함께 사무실에 돌을 던져 유리를 깨고 기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에 겁이 난 담당자가 도망을 쳤고 중기공장장은 식사시간이라며 그들의 면담요청을 거절하자, 이에 다른 기능공들까지 합세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영문을 모르던 현장소장이 무마시키려 나섰다가 돌과 각목 세례를 받았고, 결국 직원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대치상태가 되어버렸다.

이에 정주영은 김주신 상무를 대동하고 직접 현장에 뛰어나가 그들을 설득했다. 협상은 두 시간도 채 안되어 끝났고 기능공들은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엄격한 사우디 행정당국에 있었다. 집단적으로 소요를 일으키는 것은 사우디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에 사우디가 직접 조사를 하고 처벌을 하겠다고 나섰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대한민국 정부는 유양수 주 사우디 대사를 급파해 사우디 동부지구 주지사, 내무차관은 물론 황태자까지 만나서 통 사정을 해야 했다. “관련자들은 사우디 경제발전을 위해 이역만리 먼 곳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다. 더구나 그들은 사우디 법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사실 그들도 반성하고 곧장 현장에 복귀하지 않았냐? 나머지는 대한민국 정부가 알아서 할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할 터이니 제발 용서해 달라.”라며 발이 손이 되게 빈 나머지 사우디 내무성 특별조사위원회는 겨우 없던 일로 해주었다. 만일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면 주동자는 구속되었을 테고 도둑질만 해도 양손을 자른다는 사우디에서 무슨 큰 일이 일어났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정주영은 나라밖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지침을 내렸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잘못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첫째, 모든 관리자와 노동자는 평등하다.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고운 말을 쓸 것.

둘째, 노동자이기 전에 나와 같은 기분, 감정을 가진 평등한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

셋째, 인간은 누구나 자기발전과 자기실현 욕구가 있다. 명령만 하기보다 동기부여를 해서 노동자들이 일을 스스로 하도록 유도할 것.
넷째, 항상 성실한 대화를 하고 노동자들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일 것.

다섯째, 관리자가 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작업을 지시하며 노동자에게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도록 것.

여섯째, 관리자의 인격적 결함이 작업장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의 마음을 닦는 관리자가 되도록 할 것.

일곱째, 관리자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평등한 시각으로 대화와 설득을 통해 일을 처리하며, 언제나 책임감을 가지고 모범적인 행동을 할 것.

▲그림이무성한국화가
▲그림이무성한국화가


그렇게 정 회장 자신이 직접 기초한 지침은 바로 평등특권의식 철폐가 알맹이었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여겼던 정주영은 직종과 직급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적으로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리자와 노동자 서로가 각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힘을 돋워줘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과 관리직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장벽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마구 쏟아지던 험악한 욕설도 사라졌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출근하는 서울 사무실에서도 차별을 용납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화도 있었다. 한 직원이 회사 안에 임원용 승강기(엘리베이터)를 따로 놓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때 정주영 회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했다.

엘리베이터야 조금만 기다리면 누구나 탈 수 있는데,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 왜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놓아야 합니까? 임원은 사람이고, 일반 사원은 차별대우를 받아야 할 종입니까? 임원이니까, 사장이니까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특권의식은 버려야 회사가 삽니다. 회사가 임원들만으로 일군 것입니까? 일반 사원이 없으면 회사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는 일반 사원이 차례를 양보해서 먼저 탈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임원 엘리베이터지 별도로 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정주영 회장에게는 회장이나 사장, 임원 같은 직위는 어떤 일을 해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책임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또 정 회장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던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성공을 했든, 못했든 간에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번은 중동 사막의 현장에서 이런 일도 벌어졌다. 한 철도 부설 공사장에서 회장님이 오셨다며 관리직 사원들이 부랴부랴 새 카펫을 깔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본 정주영 회장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저것들 다 때려 부수자." 주베일덤프트럭 기사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관리자와의 사소한 말다툼이 폭동의 시작이었다. 담당자는 도망갔고 현장소장은 각목세례를 받았다. 정주영이 직접 나서 설득했다. 협상은 쉽게 끝났다. 문제는 집단소요를 법으로 금지한 사우디 정부가 직접 나선 것. 정부까지 나서 통사정 끝에 마무리 됐다. 정주영은 "관리자와 노동자는 평등하다." 특권의식 철폐 7개 지침을 내렸다. 정주영은 또 한번의 도전을 꿈꾼다. 포드자동차 조립공장을 세우는 것이었다. 과연 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