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르겔의 전성기를 기대하며…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50)-오르겔 전성시대

기사입력 : 2014-10-17 09:53 (최종수정 2017-02-13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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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오르겔 연주회가 이제는 웬만한 클래식이나 재즈 연주보다 많아졌다. 축제나 연말이 다가오면 오르겔 연주회는 배가 된다.

연주회 때마다 고전적 음악뿐만 아니라 기발하고도 위트 넘치는 오르겔 음악의 다양한 레퍼토리로 인해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콘서트홀은 물론이고 교회나 성당 등이 오르겔 연주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덕분에 오르겔 연주자들이 요즘처럼 신나는 때는 없었다.

연주기량도 이젠 오르겔 음악을 선도하던 유럽의 누구와도 견줄 만큼 식견과 실력이 향상됐다. 그전까지 프레스코발디, 북수테후데, 길망 등 우리들에게는 낯선 작곡가들의 곡들로 주로 연주하던 것을 이제는 연주하는 레퍼토리 가운데 순수 한국의 곡들이 빠지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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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아리랑, 두만강, 그리운 금강산, 엄마야 누나야, 프로코피에프의 탱고 등 장르도 기존의 정통 클래식 오르겔 음악에서 벗어나 그 범위가 매우 다양해졌다. 오르겔이 한국에 들어온 지 100여년 만에 새로운 음악으로서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잠시 오르겔 부흥을 꿈꾸면서 위와 같이 한번 상상을 해보았다.

글로벌이코노믹에 ‘오르겔’이란 글을 쓴 지 꼬박 1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 때 글로벌이코노믹의 제안이 있었을 때 오르겔이 한국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긴 했지만, 사실 글을 쓸 자신이 없었다.

일반 대중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 과연 어떻게 주제를 갖고 1년 동안 매주 한편씩 써야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오르겔이란 이름이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을 만큼 익숙한 이름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낯선 새로운 문화를 어떻게 쉽게 풀어갈 수 있을지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 같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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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겔 제작가로서 한국에서의 활동은 뜻하지 않게 문화의 척후병으로서 선봉에 서게 되면서 나의 운명이 된 것처럼, 앞으로의 한국의 미래상을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었다.

첫회 분을 쓰기 시작하고 19회 정도가 지나고나니 그 다음날부터는 어떤 글을 써야할지 거의 매일 그 생각만하고 지낸 온 것 같다. 50회의 마침 글을 마치려는 때, 13번째의 오르겔 제작도 동시에 끝나게 되었다.

13번이라는 숫자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과도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생적으로 오르겔이 우리 땅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한낱 흥미로운 음악적 호기심이나 일부 애호가들의 귀족 문화로 언저리만 맴돌며, 머무르다 사라질 수도 있다.

오르겔이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의 문화로 만들어낸 것처럼, 한국도 문화적 역할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중요한 ‘때’가 온 것이다. 이번에 완성된 오르겔에 그동안 한국적 문화를 담아보려고 애써온 것도 그 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연암 박지원이 “성하께서 말씀만하시면 그들의 오르겔과 똑같이 만들겠나이다”라고 말한 때가 250여년 전이다.

소리, 테크닉, 예술성 등 그들의 전형적 문화 베끼기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의 오르겔이 되도록 한국적 소재를 찾아내 새롭게 옷을 입힐 것이다. 세종과 정조 때 문화의 대혁명이 온 것처럼 앞으로 머지않아 다시 올 그때를 위해 나는 준비한다.

/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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