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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뛰는 한국인들(2)-반기문 UN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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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뛰는 한국인들(2)-반기문 UN사무총장

차기 한국의 대통령으로 급부상 여당과 야당 양측으로부터 폭넓은 지지

▲반기문유엔사무총장이2009년11월16일(현지시간)이탈리아로마의세계식량농업기구(FAO)본부에서열린식량정상회담첫날일정을마치고가진공동기자회견에서발언하고있다./사진=뉴시스
▲반기문유엔사무총장이2009년11월16일(현지시간)이탈리아로마의세계식량농업기구(FAO)본부에서열린식량정상회담첫날일정을마치고가진공동기자회견에서발언하고있다./사진=뉴시스
세계의 평화와 전쟁방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반기문 UN사무총장. 그는 어떻게 가난한 평민에서 세계에서 주목 받는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반기문 UN사무총장은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태어났다. 반 총장은 1950년대 말 창고업을 하는 부친의 사업 부도로 정미소에서 일하며 끼니를 겨우 챙겨 먹으며 자랐다.
그가 외교관을 꿈꾸게 된 것은 고교시절 미국 관련 행사를 통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직접 만나고 나서부터다. 1962년 방미 프로그램에 참가해 “세계시민이 되라. 세계에 봉사하고 당신의 나라를 사랑하라”는 말을 듣고 그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반 총장은 충주 교현초등학교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후 충주 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충주에서 외국인들을 자주 접하면서 영어를 익혔다. 중학교 입학 후 영어가 자신을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 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믿었다. 그는 대학시절 동기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강의를 집중해 듣는 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 동기생은 “강의시간에 그의 노트를 보면 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했다”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은 1970년 2월 대학을 졸업한 후 제3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같은 해 3월 외무부(현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반기문 총장은 외교관 답게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를 구사한다.

반 총장은 1971년 류순택 여사와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아들 1명과 딸 2명을 슬하에 두고 있다. 장남 우현씨는 카타르 소재 모 금융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둘째딸 현희씨는 유니세프 케냐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반기문 총장은 △1970년 외무부 여권과 △1972년 주 인도대사관 부영사 △1974년 주 인도대사관 2등 서기관을 거쳐 △1980년 외무부 국제조직조약국 과장에 올랐다. 첫 부임지로 인도를 택한 것은 위험수당을 모아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이어 △1987년 7월 주미대사관 총영사 △1990년 6월 외무부 미주국장 △1992년 2월 외무부장관 특별보좌관 △1992년 9월 주미 공사 △1995년 2월 외무부 외교정책실장과 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2000년 1월 외교통상부 차관에서 물러나 있다가 2004년 1월부터 2006년 11월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외교부 근무당시 전화온 사람에게 반드시 회신을 해줄 뿐만 아니라 아무리 피곤해도 낮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위키리스크가 2006년 7월 공개한 외교 전문(미국대사관)은 반기문에 대해 “미국사람들의 가치, 정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미국 전반에 대해 호의적이고, 이라크 파병부터 주한 미군기지 문제까지 언제나 도움이 됐다”고 적시돼 있다.
인간 반기문은 외유내강 스타일로 성실함과 따뜻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인도대사관에서는 완벽한 일처리, 주미대사관 시절에는 소신과 원칙을 중심으로 일을 추진했다.

반기문은 지난 2006년 2월 14일 UN사무총장에 출마해 같은 해 10월 14일에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당시 그가 당선될 것을 예상한 외신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4차 투표에서 안보리 15개 나라 중 14개 나라의 지지를 받으며 ‘세계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UN사무총장에 당선됐다.

UN(설립 1945년 10월 24일, 가입국가 192개국)은 세계의 전쟁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로서 평화유지활동, 군비축소활동, 국제협력활동 등을 벌인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각종 국제분쟁지역에서 중재·화해, 평화의 메신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4만 명에 이르는 산하기구 직원의 인사권과 1조3000억 원의 예산집행권을 가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최고위 외교관으로 불리는 반기문 사무총장은 2007년 2월 22일 독일에서 이란의 핵개발 추진 입장에 대해 UN안보리 결의를 준수해줄 것을 촉구했다. UN은 일부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국제사회를 대표해 경고하는 역할도 한다.

반기문 총장은 2006년 12월 15일 UN사무총장 취임 연설문에서 “유엔의 3개 기둥인 안보와 개발, 인권을 강화함으로써 다음세대를 위해 더 평화롭고 더 번영하고 더 정당한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진정으로 단합할 수 있도록 저의 권한이 미치는 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 총장은 올해 10월 15일 가자지구를 방문해 “이스라엘이 가자 봉쇄를 해제하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합법적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5조8000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특히 반기문 총장은 2011년 2월 27일 UN 안보리가 리비아 유혈 사태에 대해 국제재판소에 회부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 채택을 이끌어 낸 바 있다.

2009년 6월 13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2차 핵실험을 규탄하고 제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반기문 총장은 당시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되면 북한을 포함한 모든 회원국들이 결의안(무기금수, 화물검색, 금융제재)을 전면적으로 이행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은 취임 첫해인 2008년 한 해 동안 132일간 57개국의 120개 도시를 다니며 이라크 등의 분쟁지역 문제와 기후 변화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반기문 총장은 2007년 6월 21일 이례적으로 19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재선됐다.

한국대학신문이 지난달 15일 실시한 ‘2014전국대학생의식조사’에서 대학생의 14.4%가 반기문 사무총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달 20일 실시된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한길리서치, 19세 이상 1000명)에서 39.7%로 1위를 차지했다. 반 총장이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 꼽힌 것은 반 총장의 그동안 업적과 이미지가 좋았다는 방증이다.

반기문 총장의 국제적인 신망과 관심으로 그의 어록도 이목을 끌고 있다. “인생 최대의 지혜는 친절이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을 친구로 만들어라”, “대화로 승리하는 법을 배워라”, “금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맥이다”, “실력이 있어야 행운도 따라 온다” 등이다.

반기문 UN총장은 취임당시 발언과 같이 세계 평화유지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활발한 대내·외 활동으로 세계인으로 부터 존경과 주목을 받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차기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7년 12월 20일 제 19대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 지 벌써부터 주목을 끌고 있다.

/글로벌이코노믹 서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