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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글로벌 기업, 브랜드 전략보다 유통채널로 승부해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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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글로벌 기업, 브랜드 전략보다 유통채널로 승부해 실패

일본 기업들은 최근 해외시장에서 마케팅(브랜딩)이 서툴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비단 해외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국내시장에서조차 소비자 심리를 파악하고 그 생각과 사고방식의 틀을 마케팅 활동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업이 소비자의 심리나 행동에 대처하는 반응이 느린 원인은 오랫동안 지속해온 판매전략이 브랜드를 강화시키는 전략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재를 제조판매하는 대기업 가운데 '소비자와 직접적인 매매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자각하면서 활동을 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동차, 화장품, 가전, 맥주 등 기업들이 그 업계에서 최고의 지위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수직형 유통 채널을 경쟁사보다 빠르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도매상 특약점과 소매판매점 계열화를 추진해 전국 각지에 진출함으로서 경쟁사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경쟁을 배제하는 유통채널의 독점화가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화장품의 시세이도와 맥주의 기린이 오랫동안 정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브랜드의 힘보다도 유통채널의 계열화를 경쟁사보다 빨리 확립한 것이 성공으로 이어진 가장 큰 원인이다. 그 결과 업체의 손님은 소비자가 아닌 특약점이나 계열판매점이 되어버렸고 도매업과 소매점의 주인들도 상품의 브랜드보다는 기업브랜드의 신뢰도를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2001년까지의 시세이도는 매장 매출이 아닌 소매점이 구입한 제품 개수를 회사의 매출로 나타냈다. 소비자의 구매량이 아닌 소매점의 구매량에 따라 매출이 정해진 것이다. 이는 매장에 팔지 않아도 할당량을 달성하기 위해 소매점에 강매하는 관습도 발생시켰다. 기업대 개인 간 거래(B2C) 형태가 아닌 기업간 거래(B2B)에 특화된 형태를 지니게 된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메이커 기업들은 특약판매점(딜러) 네트워크 구축에만 주력했다. 처음에는 1현 1딜러의 시스템을 취했지만 1960년대 이후 개인자가용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응할 수 없게 됐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업계에서 내놓은 방안은 1현 1딜러를 지키면서도 판매채널을 늘리는 방안으로 차례차례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했다.

브랜드가 다르면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도 기존채널의 어려움을 보완할 수 있고 새로운 브랜드를 기존의 물건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도 동일한 채널에서 판매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채널에서 판매되는 브랜드 간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극단적인 케이스에서는 동일 개념의 차종을 이름만 변경함으로써 다른 브랜드로 다른 채널에서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즉 일본 자동차 업계의 방안은 판매채널전략은 있어도 브랜드 전략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수직형유통채널 구조는 현재 수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시세이도의 경우 창업 이래 140년 동안 유명한 브랜드를 육성하는 데 실패했다. 소매점에 강매판매를 요구한다는 것은 주고 받는 관계로서 소매점의 요청도 받아들여야 한다. 소매점 측의 입장에서는 항상 새로운 신제품이 매출을 올리기 쉽기 때문에 시세이도는 소매점의 요구에 따라 2011년도까지 연간 500~600개의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으며 2008년 시점에서는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의 브랜드를 평가할 시간도 없이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나온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 도요타의 고급브랜드차 '렉서스'는 미국 시장에서는 성공했지만 유럽을 포함한 기타 해외시장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도요타 관계자는 렉서스 브랜드의 세계전략에 유통채널 전략은 있었지만 브랜드 전략은 없었다고 밝혔다. 수직형 유통채널 제패를 통해 성공을 맛보았기 때문에 브랜드 전략을 가질 필요도 배울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과거에 유통채널 전략으로 성공한 많은 기업들이 브랜드 전략의 능력을 키워야 할 이유로는 지금까지의 설명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글로벌이코노믹 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