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오라클2.0으로 부 거머쥔 실리콘밸리의 악동

공유
0

오라클2.0으로 부 거머쥔 실리콘밸리의 악동

[포브스500]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

11분기 연속 5%이상 성장세


포브스 선정 글로벌 부자순위 5위


10여년간 100여건 적대적 M&A


방탕한 생활 증기며 기부엔 인색

오라클(Oracle Corporation)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은 1944년 8월 17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로렌스 조지프 래리 앨리슨(Lawrence Joseph Larry Ellison)으로 유대인 미혼모로부터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이태리계 미국 공군 파일럿이다. 그의 모친은 앨리슨이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폐렴에 걸리자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으며 유대인 중산층 루이스(Louis)와 릴리언(Lillian) 가정으로 입양됐다.

일리노이대학교 2학년 재학 중 양어머니의 죽음으로 캘리포니아에 돌아온 이후 반문화(counterculture)에 심취해 학교를 중퇴했다. 시카고 대학에 재입학했으나 1학년 때 중퇴하고 반문화가 형성된 캘리포니아로 되돌아와 정착해 10여년간 컴퓨터 관련직을 떠돌아 다녔다. 이때 웰스파고은행(Wells Fargo Bank)의 기술자 감독관, Fireman’s Fund Insurance의 IBM Mainframe관리업무 등 컴퓨터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1977년 소프트웨어 개발연구소를 설립해 IBM의 기술을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오라클(ORACLE) 2.0을 선보이면서 부의 기반을 형성했다.

▲오라클의공동창업자래리앨리슨.실리콘밸리의악동인그는성추행과여성편력이심한난봉꾼으로유명하다.
▲오라클의공동창업자래리앨리슨.실리콘밸리의악동인그는성추행과여성편력이심한난봉꾼으로유명하다.
오라클을 통해 부를 축적한 래리 앨리슨은 2013년 순자산액 480억 달러(약 52조9000억원)로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 순위 5위에 올랐다. 2014년에는 순자산액 518억 달러(약 57조1000억원)로 포브스 선정 5위에 올랐으며, 미국 순위 3위를 기록했다. 빌게이츠, 워런 버핏과는 달리 기부에 인색하다는 비평을 듣고 있는 래리 앨리슨은 2014년 9월 70세를 맞이해 35년간 지켜온 공동 CEO자리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오라클의 회장 및 최고인재개발책임자(CTO)역할을 수행하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분야 사업을 맡는다. 공동 CEO인 마크 허드는 전략 및 마케팅, 판매부문 사업을 맡아 운영하고, 새로운 공동 CEO로 발탁된 사프라 캣츠는 법률 및 생산, 재무부문 사업을 맡기로 합의했다.

래리 앨리슨은 젊었을 때부터 대출을 받아 요트를 구입하고 성형수술과 결혼, 이혼 등 방탕한 생활을 즐겼으며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경력이 있다. 2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2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과 딸 메간 엘리슨은 기업 경영보다는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라클을 1977년 6월 16일 설립한 소프트웨어개발연구소(Software Development Laboratories, SDL)를 모태로 하고 있으며, 래리 앨리슨, 봅 마이너(Bob Miner), 에드 오츠(Ed Oates) 등이 각각 60%, 20%, 20% 지분율로 자본금 2000달러(약 220만원)를 투자해 공동으로 설립한 것이다. 1979년 Relational Software, Inc(RSI)와 1982년 Oracle Systems Corporation을 거쳐 1995년 현재 상호로 변경됐다.

오라클은 전 세계 145개국 포춘 100대 기업을 포함해 약 40만개 이상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으며, 직원은 약 12만2458명에 이른다. 이 중 개발 및 엔지니어는 3만6000명, 지원담당자는 1만8000명, 컨설팅 전문가는 1만7000명이다.
1977년 설립한 오라클의 주요 제품은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s), 데이터베이스(Database), 엔지니어드시스템(Engineered Systems), 엔터프라이즈 관리(Enterprise Management), 자바(Java), 미들웨어(Middleware), 운영체제(Operating Systems), 서버(Servers), 스토리지시스템(Storage Systems), 네트워크 및 데이터 센터 패브릭 제품(Networking and data Center Fabric Products), 엔터프라이즈 커뮤니케이션(Enterprise Communications), 가상화(Virtualization) 등이다. 또한 Oracle Consulting, Oracle Financing, Oracle Managed Cloud Services, Oracle Premier Support, Advanced Customer Support, Oracle University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제품별로 보면 오라클 데이터베이스(Oracle Database) 고객은 약 31만 명, 오라클 퓨전 미들웨어(Oracle Fusion Middleware) 고객은 12만 명, 오라클 어플리케이션(Oracle Applications) 고객은 9만 명, 중소기업 고객은 3만개이다. 또한 하드웨어 고객은 5만1000개, 엔지니어드 시스템 고객은 4500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2만5000개의 파트너사를 두고 있다.

처음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의 미래보다는 CIA와 직접적인 계약을 통해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 '오라클'을 만들려고 했으나, 지금은 전 세계 정부와 국방, 금융부분에서 DB시장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DB시장의 약 50%를 점유하고 있는 오라클은 1976년 IBM이 1급 기술을 공개하자 래리 앨리슨이 IBM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DBMS) 기술을 도입해 오라클 2.0을 발 빠르게 출시하면서 부의 기틀을 마련했다.

오라클은 2014년 회계연도 총 매출액은 382억 7500만 달러(약 42조2000억원)로 전년도 371억8000만 달러(약 41조원) 대비 약 10억95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 증가했다. 2015 회계연도 1분기(6~8월) 매출액은 85 9600만 달러(약 9조5000억원)로 전년 동기 7200만 달러(약 9조2000억원) 대비 약 2.7% 증가에 그쳤으며, 11분기 연속 5%이상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12분기 연속에는 제동이 걸렸다.

래리 앨리슨의 대표이사직 사임과 패키지 중심에서 클라우드 방식으로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이 변화되면서 매출이 정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분기 매출은 US $ 95억 9800만 달러(약 10조6000억원)로 전년동기 US $92억 7500만 달러(약 10조2000억원) 대비 약 3.5%, 전분기 대비 약 11.7% 늘어났다. Software & Cloud 매출이 US $73억 달러(약 8조원)로 5%, SaaS, PaaS, LaaS Cloud 매출이 US $5억 1600만 달러(약 5600억원)로 45%, 하드웨어 시스템 매출 US $13억 달러(약 1조 4000억원)로 1% 늘어났다.

글로벌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오라클은 1989년 강병제 회장과 직원 5명이 중심이 돼 설립됐으며, 탁월한 영업력과 마케팅 능력을 발휘해 한국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초창기 오라클은 미국 시장에서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했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급성장했다. 한국에서 확보한 대기업 리퍼런스를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 손쉽게 침투할 수 있었다. 13년간 오라클 성장에 중추적 역할을 해온 강 회장이 지난 2002년 떠나고 조직이 본사 직할체제로 바뀌면서 한국사업도 예전처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라클2.0을통해소프트웨어의제왕으로자리잡은오라클은적대적인수합병(M&A)을통해급성장했다.
▲오라클2.0을통해소프트웨어의제왕으로자리잡은오라클은적대적인수합병(M&A)을통해급성장했다.
오라클의 공동창업자 래리 앨리슨은 실리콘 밸리의 악동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정하고, 공격적이며, 거만하고, 뻔뻔할 뿐만 아니라 성추행과 여성편력이 심한 난봉꾼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직원을 이용하고 버리는 토사구팽형 인사정책으로 악명이 높으며, 소프트웨어 기업 중 대표적인 블랙기업(Black Company)에 속한다. 래리 앨리슨은 IBM이 1976년 공개한 기술을 오라클(ORACLE) 2.0에 도입해 소프트웨어의 제왕으로 자리잡았으며,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성장했다.

1990년 하락한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직원을 동원해 과장과 허위 사실로 고객에게 제품을 팔도록 강요했다. 또한 사설탐정을 고용해 경쟁사인 MS의 반독점법 위반혐의의 증거를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진 사건도 유명하다. 2003년에는 적대적 M&A를 통해 피플소프트(Peoplesoft)사를 인수했으며, 2005년에는 6억3000만 달러(약 6900억원)에 소프트웨어 업체 레텍, ID관리 소프트웨어 업체 오블릭스를 인수했다. 2010년에는 서버 하드웨어 생산업체 선 마이크로시스템 등을 인수했으며, 지난 10여년간 달러(약 55조원)를 투입해 100여건의 M&A를 성사시켰다.

미혼모 및 양부모 밑에서 성장한 래리 앨리슨은 축적한 부를 기부보다는 삶을 즐기고, 방탕한 생활에 더 많이 지출하고 있다. 4번의 결혼과 이혼뿐만 아니라 여성편력과 요트구입, 화와이섬 매입, 전용비행기 구입, 수십 대의 값비싼 스포츠카를 구입하기도 했다. 2004년 포브스지는 래리 앨리슨의 기부금액이 1억5100만 달러(약 1600억원)로 단지 재산의 1%에 불과하며, 사회환원에 인색하다고 비난했다.

2006년 법원은 래리 앨리슨이 인사이드 트레이딩을 통해 수익을 올린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으며, 수익금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라고 명령했다. 따라서 1억1000만 달러(약 1200억원)를 래리 앨리슨에게 기업가상을 준 하버드대에 기부하기로 해 대가성이라는 비난뿐만 아니라 기부번복을 해 더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미국에서 부자들을 중심으로 생전 혹은 사후에 자신의 재산 50% 이상을 기부하자는 기부서약운동이 일기 시작했고 래리 앨리슨도 기부서약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기부보다는 삶을 즐기는 데 더 많은 돈을 사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