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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이슈진단]미국-쿠바 국교정상화와 CELAC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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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이슈진단]미국-쿠바 국교정상화와 CELAC의 몰락

▲미국과쿠바의국교정상화협상으로CELAC이정체성의위기를겪고있다.미국과쿠바의대결을기본전제로출범한CELAC으로서는두나라가화해한이후설자리를찾기어려워진다는것이다.CELAC정상회의모습./사진=뉴시스제휴
▲미국과쿠바의국교정상화협상으로CELAC이정체성의위기를겪고있다.미국과쿠바의대결을기본전제로출범한CELAC으로서는두나라가화해한이후설자리를찾기어려워진다는것이다.CELAC정상회의모습./사진=뉴시스제휴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대기자] 셀락(CELAC)이라는 국제기구가 있다. 우리말로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 공동체로 번역할 수 있는 신생 국제기구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2011년 12월 출범했다.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공동체란 뜻의 스페인어 ‘Comunidad de Estados Latinoamericanos y Caribeños’에서 각 단어의 첫 자를 조합한 데서 CELAC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셀락은 CELAC을 단순음역한 것이다.
그 CELAC이 방황하고 있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사달을 제공한 나라는 쿠바이다. 쿠바가 느닷없이(?) 미국과 국교수립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CELAC에 혼선이 생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CELAC은 미국과 쿠바와의 대결모드를 전제로 하여 구성된 국제기구이다. 전제가 된 미국과 쿠바의 대결 구도가 두 나라의 화해협력모드로 바뀌는 상황인 만큼 CELAC으로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CELAC은 28일(현지시각)부터 코스타리카에서 제3차 정상회의에 착수했다. 오래전부터 예정되어온 공식일정이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인 캐나다를 견제하는 범아메리카 대륙 단일 경제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리기로 되어 있었으나 쿠바의 변심으로 그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할 상황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국가들 간의 경제협력을 모색하는 조직으로 미주개발기구 즉 OAS라는 국제기구가 있다. 미국이 주도하여 1951년에 설립한 기구이다. CELAC은 바로 이 OAS에 대항하여 만들어졌다. 미국 주도의 모임으로서는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기 어렵다면서 미국과 대척점에 있던 쿠바를 끼워 넣어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었다. CELAC의 회원국은 33개국이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에콰도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니카라과, 파나마,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앤티가 바부다, 바하마, 바베이도스, 벨리즈, 도미니카 연방, 그레나다, 가이아나, 자메이카,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 네비스, 트리니다드 토바고,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브라질,아이티, 수리남이 회원국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영국 등 유럽의 지배령만을 빼고 모든 나라들이 회원으로 참여했다. 이 바람에 미국이 주도해온 OAS는 영향력이 현격하게 줄었다. 미국과 캐나다를 뺀 미주대륙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마치 유럽에서의 유럽연합(EU)처럼 하나의 공동체로 뭉친다는 것은 미국에게는 실로 커다란 위협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뒷마당에 거대한 적들의 연합체가 생겨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 교류측면에서도 미국이 감내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더구나 이 CELAC에는 미국을 견제하려고 하는 중국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 중국은 기구창설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CELAC을 지원해왔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CELAC의 제1차 정상회의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CELAC은 출범 당일 미국의 외교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회원국이 힘을 모아 저지시키겠다는 선언도 했다.

미국이 쿠바와 전격적으로 국교정상화를 추진한 데에는 CELAC의 등장으로 야기된 미주대륙고립을 최대한 막아보자는 의도도 많이 반영됐다. 쿠바가 미국의 우방으로 편입되면 CELAC이 존재해야할 이유가 상당부분 없어진다. CELAC이 미국을 회원국에서 제외할 때 내세운 명분이 쿠바였다.

CELAC이라는 조직의 화합을 위해서는 발족멤버인 쿠바와 적대관계로 대치중인 미국을 포함시킬 수 없다는 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쿠바가 친구관계로 바뀌면 CELAC으로는 굳이 미국을 배제할 명분이 줄어든다. 미국과 그 동맹인 캐나다를 받아들이면 기존의 OAS와 회원국 구성이 거의 같아진다. CELAC이 굳이 따로 존재할 명분이 축소되는 것이다.

브라질 일간지 폴랴 지 상파울루 지는 “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으로 CELAC이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됐다”고 특집기사로 보도했다. 현지의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미국과 중남미 관계가 개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굳이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는 기구가 굳이 필요한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또 미국과 쿠바의 관계개선으로 쿠바의 OAS 회원국 자격도 완전히 회복이 예상된다는 점을 들어 “CELAC의 존재 명분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CELAC을 해체하든지 아니면 CELAC과 OAS를 묶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는 방안 등을 이 신문은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물론 중남미에는 쿠바문제 이외에도 다양한 현안이 있다. 각 나라별 특성에 따른 미묘한 지역주의 갈등도 적지 않다. OAS가 그동안 이런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못해왔다는 점에서 CELAC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CELAC이 계속 존재하면서 미국과 중남미 관계를 개선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을 배제한 채 미주대륙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거나 미국을 공격하기위해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남미 국가들이 하나로 뭉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존재로서의 CELAC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국가 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라는 마키아밸리의 말은 오늘에도 여전히 맞아떨어지는 진리인 모양이다.

/글로벌 이코노믹 김대호 대기자(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