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부귀장수 빌며 축하하던 백일·돌잔치의 의미 퇴색

[홍남일의 한국문화이야기] 출산에서 돌잔치까지 아기의 1년

기사입력 : 2015-04-1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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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웃과 나눠먹던 떡·음식에 다양한 의미 담겨

갓난아기 '액막이' 역할 '금줄' 지금은 거의 사라져

196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힘든 산고 끝에 아기가 태어나면 즉시 따뜻한 물에 부드러운 천을 적셔서 온몸을 닦아 준 후 감초나 삼을 달인 물을 세 숟갈 정도 아기 입에 넣어 줍니다. 산모에게는 흰 쌀밥과 미역국을 먹게 함으로써 젖이 잘 돌고 피도 맑아지게 했습니다.

산모 곁을 지키며 물을 데우고 들기름과 삼물을 우려 연신 방과 부엌을 들랑날랑하시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순산을 보고 나서야 이마의 땀을 훔치셨습니다. 그리고 미역국과 옥밥을 장독대로 가지고 가서 산신(産神)께 순산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리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빌었습니다.

방 밖에 서성이던 시아버지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와 함께 “고추예요” 혹은 “예쁜 공주 나셨네요”라는 산파 할머니의 들뜬 소리가 들리면 부랴부랴 준비해둔 새끼줄을 대문에 걸어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금줄’ 혹은 ‘인줄’이라고 하는 이 새끼줄은 ‘우리 집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라고 알리는 표시로 딸이 태어나면 새끼줄에 숯만 끼우고, 아들이 태어나면 숯과 빨간 고추를 줄이어 끼워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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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면 액운을 막아주는 ‘금줄’을 치게 되는데, 남자아이는 숯과 고추를, 여자아이는 숯을 끼운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각종 질병을 사전에 차단하여 갓난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하려 했던 액막이 장치였다.

금줄이 내걸리면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삼칠일, 즉 21일간 출입해서는 안 되며 특히 집안 식구들은 남의 초상집을 방문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액운을 막아주는 이 ‘금줄’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지혜로운 풍속이었는데, 이는 외부로부터의 각종 질병을 사전에 차단하여 갓난아기를 안전하게 보호하려 했던 액막이 장치였습니다.

아기 낳는 것을 거들어 주는 분은 시어머니나 동네의 나이든 아주머니였지만 대개는 산파라는 여인네들이 맡았습니다. 산파는 자기 집에다 ‘조산원’이라는 작은 간판을 내걸고 있다가 연락이 오면 아기를 받아 주었습니다.

산파를 불러야 할 상황이 오면 시어머니는 미리 시장에 가서 미역 특히 ‘해산미역’이라 하여 넓고 길게 붙은 것을 고르며 값은 깎지 않았습니다. 값을 깎으면 부정이 탄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미역을 파는 가게 주인도 이를 알고 있어서 품질 좋은 미역을 골라 꺾지 않고 새끼줄로 묶어 주었습니다. 예부터 ‘해산미역’을 꺾으면 난산을 한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에 해산미역에 대한 배려는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 모두 세심했던 것입니다.

아기가 출생한 지 7일이 되면 초이레, 14일이 되면 두이레, 21일이 되면 세이레라 하여 합하여 삼칠일이라 했는데 이렇게 7일 단위로 나누어 아기와 산모를 위한 산신제를 올렸습니다. 제사 음식은 흰밥과 미역국이었고, 제사 후에는 반드시 산모가 이 제사 음식을 먹어야 했지요.

세 번의 제사를 마치면 마침내 집앞에 둘렀던 금줄을 내리고 아기를 보고 싶어 하던 사람들의 방문을 허용했습니다.
삼칠일을 거쳐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에는 ‘백일’이라 하여 아기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100일간은 아기의 사망률이 가장 높아 이 고비를 넘긴 아기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더불어 삼신할미에게 감사와 이후의 무병장수를 비는 날로 ‘백일’을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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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는 날에는 돌잔치를 연다. 각종 산해진미로 풍성한 돌상을 차려놓고 돌을 맞은 아이에게는 돌잡이를 하게 했다.
‘백일’날에는 음식을 풍성히 하여 백일 상을 차립니다. 그리고 ‘백일 떡’이라는 다양한 종류의 떡을 만드는데 떡마다 그 이유가 정갈했습니다. 우선 백설기는 아기의 무병장수를 뜻했고 붉은색 수수팥떡은 부정을 막아주는 주술적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송편도 백일 떡으로 빼 놓을 수 없는데 송편은 속을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으로 빚어, 속이 꽉 찬 송편은 지혜로움이 꽉 차라는 의미로, 속빈 송편은 마음에 근심이 없기를 비는 이유로 만든 것이지요. 인절미는 찹쌀로 만들어 찰지고 단단하기 때문에 아기의 몸도 건강하고 다부지게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백일 떡은 이웃집과 친척집에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고 100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아기가 100살까지 오래오래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백일 떡을 받은 집은 떡 그릇을 돌려 줄 때, 그릇을 물에 씻지 않고 그냥 되돌려 주어야 아기에게 부정이 안 탄다고 여겼으며 씻어주지 않는 대신 답례로 실이나 돈을 그릇에 담아 주었습니다. 요즘은 백일잔치에 이 사람 저 사람 부르지만 예전에는 떡을 돌리는 것 외에는 집안 식구끼리만 잔치를 했고 오히려 떠벌이지 않아야 귀신의 시샘을 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돌이라 하여 아무리 생활이 어려운 집이라도 반드시 돌상을 차려주는 것이 우리의 오랜 풍속이었습니다. 이날의 아이는 ‘돌장이’가 되어 때때옷을 곱게 차려 입고 산해진미 풍성한 돌상을 받았습니다. 돌상에는 음식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상징물을 네모난 나무 판에 담아 올려놓는데 남자아이의 경우 쌀, 붓, 천자문, 실, 돈, 활을 두고, 여자아이는 천자문 대신 국문, 활 대신 가위나 실패를 담아서 아이로 하여금 이것들을 집게 합니다.

이런 행위를 ‘돌잡힌다’라고 했는데 이는 아이의 장래를 점쳐 보는 돌날의 대표 풍속이었습니다. 아이가 돈이나 쌀을 집으면 유복하게 자랄 것이고 붓과 천자문은 문인(文人)을, 화살과 활은 무인(武人), 가위나 실패는 길쌈에 능할 것이라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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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돌날 아침에는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아이에게 덕담을 들려주며 돌상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점심 무렵부터 이웃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이들에게는 돌상 음식이 아닌 국수로 대접했는데 이를 ‘국수잔치’라 불렀습니다. 국수잔치는 아이가 국수처럼 길게 살라는 기원의 의미로 겨울에는 국수장국을 따뜻하게 말며, 여름에는 시원하게 냉면을 말아 잡채와 편육을 곁들였습니다.
한편 돌날도 백일과 마찬가지로 일가친척과 절친한 이웃 몇몇 이외에는 야단스럽게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날도 떡 돌리기 풍습이 있었는데 돌이 되면 아이가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엄마 손을 잡고 아이가 직접 돌떡을 돌렸습니다.

돌떡을 받은 집은 그릇에다 물건이나 돈을 답례로 주었습니다. 답례 물건은 대부분 실이나 의복, 돈, 반지, 수저, 밥그릇, 완구 등으로 이러한 답례품은 아이의 장래를 위한 부귀장수를 빌고 함께 축하하는 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즘은 출산도 백일도 돌잔치도 과거와 너무 많이 변해 있어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심정으로 몇 글자 적었습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 홍남일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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