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의 제1호 기업으로 숱한 신기술과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정보산업의 역사를 개척해온 영웅의 쓸쓸한 퇴장이다.
이 두 회사는 곧 해산절차를 밟을 예정인 지금의 HP에서 자산과 인력을 각각 뽑아오게 된다.
상호간에 주식지분상의 계열관계는 일절 없다.
두 회사는 법률상으로 완전히 분리독립된 별도법인이다.
주식시장에서도 서로 다른 종목으로 거래된다.
기업을 둘로 쪼개면서 그 모태는 없애버리는 이 같은 방식의 분할은 흡수통합(M&A)이 만연해있는 미국에서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HP는 1939년 출범했다.
스탠퍼드대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생인 휴렛과 패커드가 스승인 터먼 교수의 지도를 받아 만든 실리콘밸리의 제1호 기업이다.
단돈 538달러로 동네 차고를 빌려 창업했다.
오로지 기술로 대업을 일으킨 벤처1호 기업이기도 하다.
음성발진기에서부터 시작하여 프린터, 전파제어기, 계측기, 계산기, 의료기기, 주파수 조절기, 복사기, 팩스머신, 가스성분분석기 그리고 컴퓨터 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10만종이 넘는 전자기기를 만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2만5000여종의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전자제품에 관한 한 가장 앞선 기술로 가장 많은 제품을 생산해온 세계 전자산업의 총본산이다.
창업한 지 22년 만인 1961년에 기업공개(IPO)를 했다.
이듬해인 1962년 포천500에 처음 이름이 올랐다.
1995년에는 포브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올해의 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그 신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패커드와 휴렛의 영향력이 워낙 컸던 탓에 그 두 사람이 은퇴한 이후에는 리더십 공백상태가 왔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거대조직을 이끌어갈 중심세력이 부재했던 것.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한 채 우왕좌왕하는 사이 후발주자들에게 밀려버렸다.
(계속)
김대호 연구소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