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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창업주 열전] 골드만삭스를 세운 마르쿠스...사채업으로 출발, 월가를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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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의 포춘500 창업주 열전] 골드만삭스를 세운 마르쿠스...사채업으로 출발, 월가를 평정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골드만 삭스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미국에 이민 온 마크쿠스 골드만이 사채업을하면서 일군 기업이다. 삭스와의 평생우정이 돋보인다.
세계 금융을 움직이는 골드만 삭스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미국에 이민 온 마크쿠스 골드만이 사채업을하면서 일군 기업이다. 삭스와의 평생우정이 돋보인다.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골드만삭스의 창업주는 마르쿠스 골드만이다.

1821년 독일 바바리아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모두 유대인이다.

독일에서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한 농민이었다.

마르쿠스 골드만은 어린시절 부모를 도와 가축을 시장에 내다팔면서 장사에 눈을 떴다.

학력이라고는 유대인학교와 랍비 스쿨이 전부다.

이곳에서 평생의 친구를 만난다.

상대는 3살 연상인 조세프 삭스였다.
삭스가 먼저 미국 이민을 떠났다.

골드만은 부모의 목축 일을 돕다가 뒤늦게 미국이민을 결행했다.

유대인 박해가 심한 독일보다는 신대륙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

필라델피아 선착장에서 또 삭스를 만났다.

먼저 이민을 와있던 삭스와 예정에 없던 운명의 상봉을 한 것.

이후 골드만과 삭스는 서로 가족같이 지냈다.

동고동락하면서 어려운 이민생활을 함께 돌파해 나갔다.

먼저 자리잡은 삭스의 소개로 필라델피아의 한 가게에 점원으로 취업했다.

그러던 중 같은 고향 출신의 유대인 여성인 ‘버사’를 만나 결혼했다.

부인 버사는 재봉사였다.

결혼 후 함께 양복점을 차렸다.

돈을 꽤 벌었다.

만48세 되던 1869년 변화가 왔다.

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아내의 요구로 뉴욕으로 이사를 한 것.

그곳에서 새로 사채업을 시작했다.

그때 만든 회사 이름이 마르쿠스 골드만 뱅커 앤 브로커이다.

오늘날 세계최고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기원이다.

이 회사에서 고객의 차용증서나 상업어음을 전주들에게 연결해 돈을 융통해주면서 수수료를 받았다.

남북전쟁 직후 어려운 살림살이로 급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다.

갓 이민 온 사람들의 자금수요도 폭증했다.

그 바람에 골드만의 사채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1894년에는 마침내 그토록 소원하던 뉴욕증권거래소의 정식회원이 됐다.

골드만은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

그 중 막내딸인 ‘루이자’가 사무엘 삭스와 결혼했다.

사무엘 삭스는 골드만의 평생 친구인 조세프 삭스의 아들이다.

친구끼리 사돈의 연을 맺었다.

그 사위를 사업에 끌어들였다.

동시에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던 자신의 둘째 아들 헨리 골드만도 참여시켰다.

골드만 가문과 삭스 가문이 대를 이어 동업을 하는 구조를 구축한 것.

그러면서 삭스 가문과의 동업을 뜻하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오늘날과 같은 골드만삭스로 바꾸었다.

골드만삭스라는 회사명은 두 사람 우정의 결실이자 두 가문의 동업 징표이다.

사채업자로 시작하여 세계 최고의 금융제국을 건설한 골드만은 아들인 헨리 골드만과 사위인 사무엘 삭스를 공동 후계자로 지명한다.

100년 대계의 토대를 세운 것이다.

1904년 노환으로 영면했다.

그의 나이 83세였다.
김대호 연구소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