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주의 미술산책(24)] 빛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의 열정, 그리고 그들의 우정

기사입력 : 2015-10-03 11:28 (최종수정 2017-02-08 22:01)

  • 인쇄
  • 폰트 크기 작게
  • 폰트 크기 크게
공유 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구글플러스 공유하기
















center
마네, 올랭피아, 1863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청명한 하늘에 기분 좋은 햇살이 가득한 10월의 가을날이면 생각나는 그림들이 있다. 빛을 그리고 자연의 순간을 기록하는 화가들, 바로 인상파의 작품들이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등 인상파 화가들은 형식적으로도 전통적인 회화 기법들을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화나 성화의 주제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 자연, 평범한 여인을 그렸다. 당시의 기득권층과 국가권력을 위한 회화가 아닌 새로운 예술을 지향함으로써 실질적인 모더니즘의 시작과 이후 다양한 미술사조들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center
드가, 푸른 옷을 입은 발레리나들, 1893
center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1876
1863년 5월, 파리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열렸던 낙선전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작품이 있다. 바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이다. 마네는 이 그림으로 명성을 잃고 대중들과 비평가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신고전주의 회화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젊은 화가들에게는 새로운 예술에 대한 희망과 영감을 주었다. 마네의 ‘올랭피아’ 역시 피죽도 못먹은 여자의 시체를 그린 저속한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롱전에서 낙선했지만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마찬가지로 정면을 응시하는 당당한 시선의 여인, 평면적인 묘사와 원색적인 색감은 그 자체로 새로운 화풍의 시작을 알리는 과감한 도전이었다. 그렇게 마네는 모네, 르누아르, 바지유와 같은 젊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이후 ‘인상주의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프레데릭 바지유(Frederic Bazille)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의대생이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청년이었다. 모네, 르누아르와 함께 화실을 다녔던 그는 당시 인정받지 못하고 힘든 예술의 길을 걷는 친구들에게 선뜻 자신의 아틀리에를 내어주고 물감도 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모네가 그린 ‘정원의 여인들’(1866)을 할부로 매달 50프랑씩 내고 구매하여 모네의 연인 카미유가 아이를 낳고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이 훌륭한 작품에 더 많은 돈을 지급할 수 없어 미안하네”라고 했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서로 존중하며 지속적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곤 했다.

center
모네, 수련, 1899
center
모네, 해돋이 인상, 1872
바지유는 당시 새로운 화풍을 보여주던 화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싶어했지만 보불전쟁에 참여했던 그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이후 1874년 처음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가 열리게 된다. 이 전시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은 작품은 모네의 ‘해돋이:인상’(1872)으로 이 작품과 전시회를 조롱하는 비평가의 칼럼에서 ‘인상주의(Impressionisme)’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고 이후 이들 화풍을 일컫는 미술용어로 자리 잡는다.

인상주의라는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화풍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도움을 준 인물이 또 있다. 바로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이다. 카유보트는 화가이자 컬렉터로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구입하며 예술가들을 후원했고 그의 컬렉션은 모두 과거 뤽상부르 미술관에 기증되어 지금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주의 컬렉션의 모체가 되었다. 살롱전을 중심으로 한 주류 예술 그룹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들은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결국 새 시대를 열었다. 보수적인 시각에 맞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서로를 존중해주고 북돋아주는 끈끈한 우정이 없었다면 현대미술의 시발점으로서의 인상주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center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center
카유보트의 자화상
청명한 가을날, 새로운 미술을 위한 전사였던 인상파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당시 그들이 쏟았을 많은 땀방울과 힘들게 인내하며 버텼을 작업과 생존의 나날들을 상상해본다. 인상주의에 대한 모든 것이 신화가 된 지금, 그들이 화폭에 담아낸 소소한 삶의 이야기, 지나가버리는 자연과 시간의 한 순간, 그리고 간지러운 햇살의 아른거림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 강금주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오늘의 핫 뉴스

실시간 속보

금융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

가장 많이 공유 된 기사

생활경제